"'계엄 트라우마' 당신도 그런가요?"…병무청 문자에도 '화들짝'

"수면장애 생겨", "헬기 소리에 심장 두근두근"…걱정에 밤잠 설쳐
트라우마 시민들 호소…전문가 "혼자보다 타인 도움 통해 극복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계엄군 진입을 막아서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병력동원 소집 통지서 날아온 거 보고 흠칫했어요. 이 시국에 병무청에서 연락이 오니까 괜히 식겁하게 돼요."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 모 씨(28)는 24일 병무청의 '병력동원 소집 통지서' 카카오톡 알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의례적으로 오는 통지서지만 혹시 또 무슨 일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았다"고 토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불면에 시달리거나 우울·무기력 등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계엄 후폭풍에 탄핵 정국까지 덮치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도 실종된 모습이다.

직장인 김 모 씨(29·여)는 계엄 사태 이후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김 씨는 "혹시나 또 밤에 계엄이 터질까 봐 깊이 자기가 어렵고 자꾸 깬다"며 "수면장애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때도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계엄이 어디 도망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키우는 반려동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 A 씨(23)도 "계엄 이후에 헬기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군복 입은 사람만 봐도 괜히 경계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20여일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계엄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24일 '병력동원 소집 통지서' 관련 키워드 검색이 140% 급증했다. 온라인에는 "동원령이라니 간 떨어질 뻔했다", "전쟁 난 줄 알았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직장인 김 모 씨(30)는 "아무래도 군대를 경험했다 보니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이 딴 나라 얘기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가끔 울리는 재난 문자에 (계엄과 관련된 일일까)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비군 8년 차인 직장인 윤 모 씨(31)도 "계엄으로 인해 시민에 총부리를 겨누는 일은 전시 동원보다도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탄핵 정국 여파로 고용 시장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취업·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취업준비생 전 모 씨(28)는 "이직을 결심하고 얼마 전 퇴사했는데 이렇게 비상계엄이 터질 줄은 몰랐다"며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내년이 두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 이후 시민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를 일종의 '트라우마'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광주 5.18을 겪은 세대에서는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원을 찾아온 분들이 몇 분 계셨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 또는 공포감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심한 경우 혼자 있기보다는 타인의 도움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는 집단 우울과 불안이 만연한 상태고, 그중 일부는 심리적 어려움이 깊어지며 트라우마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스스로 너무 불안감을 유발하는 자극을 스스로 회피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cym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