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않겠다"더니…수사 피해 구중궁궐 틀어박힌 尹[기자의 눈]
4차례 담화, 단 한 번의 질의응답 없이 종료
비상계엄 선포 이후 거부한 출석 요구 3회, 압수수색 2회
- 이강 기자
"절대로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나와서 잘했든 잘못했든 나와서 이야기하겠다."
(서울=뉴스1) 이강 기자 = 2021년 9월 19일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꼽은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이어 윤 대통령은 "절대 혼밥하지 않겠다"며 "사람이 밥을 같이 나눈다는 게 소통의 기본이다. 야당 인사나 언론인, 국민들과 항상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마음가짐을 실천하기 위해 당선 직후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겼다. "청와대라는 곳이 구중궁궐로 느껴지기 때문에 들어가면 국민과의 접점이 형성되지 않고 소통 부재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였다. 구중궁궐은 아홉 번 거듭 쌓은 벽 안에 자리한 대궐이라는 뜻으로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자리한 궁궐을 뜻한다.
그러나 "숨지 않겠다"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구중궁궐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 이후 출석 요구와 압수수색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여태 거부한 출석 요구만 3회, 압수수색은 2회다. 이유를 묻는 말에는 "군사상 기밀, 공무상 등의 이유"라는 추상적인 답변 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압수수색을 위해 관저를 찾은 공조본 관계자는 경호처와 약 7시간의 대치 끝에 되돌아갔다. 10개가 넘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차량에 탑승하는 수사관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윤 대통령의 '혼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포고령을 선포한 대국민담화를 포함한 총 4차례의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았다. 7일 담화는 2분, 12일은 29분, 14일은 4분 만에 종료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소통하지 않았다. 12일 담화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의 담화 소식을 접한 일부 여당 의원들은 "뭐 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며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숨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실 비서관과 기자의 공개 언쟁 이후 중단됐다. 이후 대통령실 현관과 로비 사이에 가벽이 설치돼 윤 대통령 출근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계엄 이후 관저 건너편에는 차 벽이 세워졌다. 18일에는 경찰 버스 5대, 승합차 2대가 서 있었다. 오전 8시경 3대였던 버스는 10시경에 5대로 늘었고, 서로 닿을 정도로 붙여두었다. 9시경에는 버스와 버스 사이에 옷가지를 끼워 넣었다. 오직 길 건너편에서 관저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차 벽은 보안과 안전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지만 관저는 '쳐다도 볼 수 없는' 궁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던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 "잘했든 잘못했든" 구중궁궐에서 나와야 할 때다.
thisriv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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