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외도, 자식들은 무시"…일가족 4명 몰살한 40대 가장

"의붓딸 성추행" 신고한 아내 이혼 요구에 증오[사건 속 오늘]
출소 열흘 뒤 집 찾아가 살해…"형체 못 알아볼 정도로 참혹"

아내, 의붓딸, 두 명의 친자식까지 4명을 살해한 미결수 김중호. (MBC 갈무리)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01년 12월 13일 오전 잠실3파출소의 전화기가 울렸다. 분당의 한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들어왔는데 보호자와 연락이 안 된다"며 가정 방문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경찰은 병원으로부터 환자의 정보를 넘겨받고 40대 남성 김중호의 자택인 서울 잠실주공 4단지 418동 301호로 출동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범죄 사실이 확인된 바 없어 문을 강제로 개방하지 못하는 경찰은 소방에 도움을 구했다.

곧 옆집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간 소방대원은 충격적인 광경을 맞닥뜨렸다. 처참하게 피를 흘린 채 숨진 일가족 4명이 발견됐기 때문.

분노에 가득 찬 범인…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훼손된 시체들

경찰이 집에 들어가서 보니 부엌에는 아내 이 모 씨가, 작은방에는 고등학생 큰딸, 그리고 안방에는 초등학생인 작은딸과 아들이 숨져 있었다.

특히 아내와 큰딸은 머리가 거의 함몰돼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범인은 살해 의지가 확고한 이였고, 밖에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범인이 가장인 김중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에 들어갔다. 이웃집에서는 전날인 12일 새벽 2~3시쯤 부부가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아빠! 아빠!"하고 아이들이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으나 평소에도 수시로 싸우는 집이라 따로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이웃은 설명했다.

일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난 김중호의 자택. (MBC 갈무리)

"내가 죽인 거 맞다"…순순한 자백

김중호는 길바닥에서 자신의 팔과 배에 스스로 자해해 병원에 옮겨진 상태였고, 경찰은 곧장 병원으로 가 수술 전의 김중호를 만났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김중호는 "내가 가족들을 죽였다"며 바로 범행을 시인했다.

김중호는 살해 이유에 대해 "아내가 애들만 데리고 나가서 따로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며 "아내는 나를 범죄자로 내몰고 바람을 피웠다, 자식들도 나를 왕따시키고 참을 수가 없어서 홧김에 다 죽여버렸다"고 진술했다.

살해 현장을 감식 중인 형사들. (MBC 갈무리)

의처증 김중호, 의붓딸 성추행하다 나중엔 친딸까지

개인택시 기사인 김중호는 1989년 아내 이 씨와 결혼했다. 미혼이었던 김중호는 당시 다섯 살 딸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던 아내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이후 1990년 작은딸이 태어났고, 이어 1992년에는 아들이 태어났다.

지인들 증언에 따르면 평소 아내는 "남편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많이 호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갈등이 커지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자 아내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김중호는 일도 잘 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고의로 수입을 끊자,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아내는 낮에는 요구르트 배달을 했고 야간에는 단란주점 주방일을 했는데 아내가 주점이 끝나는 시간 늦게 귀가하자, 김중호의 의처증 증세가 시작됐다.

주방일을 하는 아내가 접대 일을 한다고 의심한 김중호는 1995년부터는 아내에 대한 불만을 큰딸에게 풀었다. 의붓딸을 지속해서 성추행한 김중호는 1999년부터는 급기야 친딸에게도 손을 댔다.

김중호 자택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형사가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MBC 갈무리)

'이것들이 가장인 나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살려고 하네?'

2001년 9월, 고등학교 2학년인 큰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진실을 털어놨다. "어려서부터 아빠가 자꾸 나를 만진다"며 6년간의 성추행을 밝히자, 충격받은 아내 이 씨는 남편을 고소했다.

같은 달 22일 김중호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및 상습 폭행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김중호는 재판 내내 자신은 성추행하지 않았으며 아내가 바람을 피운 뒤 나를 무고했다고 우겼다.

법원은 김중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김중호는 구속기소 두 달 만인 11월 30일에 구치소에서 나왔다.

김중호는 자신을 고소한 아내와 피해 사실을 진술한 아이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그는 출소 열흘 뒤인 12월 11일 밤 11시에 집으로 찾아갔다.

ⓒ News1 DB

반성 없이 끝까지 아내 탓

김중호는 아내 이 씨가 위자료로 택시를 압류해 놨기 때문에 압류를 풀기 위해 찾아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주 다섯 병을 먹고 찾아갔다고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사정했는데도 아내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언성이 높아져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딸들이 함께 달려들어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며 순간적으로 격분해 안방 침대 아래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고 주장했다.

망자는 말이 없기에 재판은 수사 보고서와 김중호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진행됐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저항하지 않은 여자와 어린이를 살해한 점과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김중호는 미집행 사형수로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