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밝혀라"…'외부 개입' 의혹에 대학가 '대자보 실명제' 논란
동덕여대 사태 이후 학내 의견 표현 활동에 비판 제기돼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성숙한 '표현의 자유' 무너져"
- 남해인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남녀공학 전환 문제로 촉발된 동덕여대 사태에 '외부 단체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대학가에 대자보 출처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게시되는 '대자보'가 재학생의 의견이 아닌 외부단체의 주장일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자보 작성자는 소속을 정확히 밝히는 이른바 '대자보 실명제'를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특정 단체가 개입할 경우 학내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4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서울 일부 대학들에는 동덕여대 학생들을 지지하거나 '시국선언'과 같은 정치적 의견 표명하는 대자보가 활발하게 게시되고 있다.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대자보 작성자의 소속을 밝히라"는 취지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지난 2일 올라온 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정치적 의견을 적은 특정 대자보 내용을 언급하며 "작성자가 ○○단체 소속으로 의심된다, 학교에서 서명 운동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어떤 단체와 연루돼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까지 이 게시글은 A 대학 자유게시판 조회 순위 상위권에 올라와 있었지만, 현재 삭제된 상태다.
대자보를 비롯해 정치적 문구가 적힌 스티커나 동아리 활동 등 여러 의견 표현을 비판하는 글도 적지 않다. 여러 대학 에브리타임에는 "외부 세력 개입 의심된다, 대자보 좀 적당히 붙이자", "고발하고 싶다", "토론회 열지 말라", "단체 활동하지 말고 취업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열어주는 활동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동덕여대 학생들의 건물 점거, 기물 파손 등이 외부 단체의 개입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본격화했다. 지난달 18일 최현아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외부 단체 개입 등 외적인 부분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달 2일 서울경찰청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언론 보도가 있던데 고소인 조사 등을 통해 수사가 필요한지 검토해 보겠다"며 외부 개입 의혹에 대해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대학가에선 외부단체 개입으로 학내 여론이 선동 또는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서울 소재 B 대학에 재학 중인 김현진 씨(23)는 "벽에 붙은 대자보들이 계속 노출돼 있으니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계속 어떤 주제에 대해 한쪽으로만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반대로 학생들의 정당한 활동을 비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소재 C 대학 재학생 이승연 씨(24)는 "누구나 자기 의견을 밝히고 싶으면 밝힐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 혐오 표현이나 욕설까지 써가면서 비난하는 건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유현재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의견도 존중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룰'(규칙)이 있는데 이런 성숙한 표현의 자유가 무너진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양극화하며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고 상대를 판단하려 하는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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