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마라톤 수능' 끝낸 시각장애 수험생들 "얼른 쉴래요"

서울맹학교선 4명 수능 치러…점자·음성 시험지 제공
"힘들지만 홀가분"…"점역 교재 없는 것이 제일 힘들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인 국립서울맹학교. 14일 이곳에서 수능을 치른 중증 시각장애인 수험생은 총 4명이다. 2024.11.14 / 뉴스1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홍유진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4일 저녁 8시가 지나자 서울시교육청 제23고사장인 서울 용산구 국립서울맹학교 정문 앞에 학부모들의 발길이 슬슬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중증 시각장애인 수험생 4명이 수능을 치르고 있었다.

수험생 A 양(19)의 어머니는 "원래 안 떨렸는데 지금 나올 때 되니까 조금 긴장된다"고 했다. 허재혁 군 어머니는 "시간만 많이 준다고 공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일반 책을 읽어도 12시간씩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손으로 읽으면 감각이 없어지지 않을까. 손이 얼얼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허 군과 같이 중증 시각 장애가 있는 수험생은 시험 편의제공 대상자로 분류된다. 점자로 된 문제지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시험 기간이 연장돼 저녁 8시 15분에 4교시 탐구영역까지 모두 종료된다.

저녁 8시 35분쯤 되자 시험을 다 치른 수험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허 군은 "생각했던 느낌대로 (시험이) 나온 것 같다"며 "컴퓨터로 들을 수 있게 (문제를) 제공해 줬는데 오랫동안 하고 있으니까 귀가 너무 아프더라"고 말했다.

컴퓨터공학과를 지망한다는 허 군은 "면접이 남았는데 다 끝나면 골볼(시각장애인 구기 스포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 군 옆에서는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수험생 박성준 씨(21)는 피곤한 모습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일단 힘들면서도 홀가분한 느낌"이라며 "국어는 조금 망한 것 같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학과나 역사교육학과를 지망한다는 박 씨는 탐구영역 선택과목으로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봤다고 했다. 박 씨는 "점심만 먹고 저녁을 아직 못 먹었는데 피곤해서 얼른 쉬고 싶다"며 "수시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데 (입시가) 다 끝나면 코딩이나 엑셀을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중증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이 학부모 팔짱을 끼고 고사장을 나오고 있다. 2024.11.14 / 뉴스1 홍유진 기자

이어 어머니 팔짱을 끼고 나온 수험생 A 양과 B 양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회학과와 법학과를 지망한다는 A 양은 "국어는 평상시에 비해 더 엄청 어렵지는 않았고 보통 정도였던 것 같다"면서도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A 양은 인터뷰가 끝난 후 '무엇을 먹고 싶냐'는 어머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기사식당! 돼지불백이랑 김치찌개랑 갈치"라고 대답했다.

A 양 어머니는 "수업에 필요한 교재가 있어도 점역이 빨리 안 되니까 교재가 없는 것이 제일 힘들다"며 "급한 문제는 풀어봐야 하는데 점역이 대기자가 많아서 요청한 건 한 달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맹학교 교사인 C 씨(30대·남)는 "시각장애인 학생은 매체에 접근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어서 (비장애) 학생들보다 배 이상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학생들이 삶의 개척 의지가 굉장히 강해서 준비 과정도 의미 있을 뿐 아니라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게 학교생활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인생 자체가 시험의 연속이지 않나"라며 "(수능이) 사회로 나가기 전 예방주사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