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마라톤 수능' 끝낸 시각장애 수험생들 "얼른 쉴래요"
서울맹학교선 4명 수능 치러…점자·음성 시험지 제공
"힘들지만 홀가분"…"점역 교재 없는 것이 제일 힘들어"
- 박혜연 기자,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홍유진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4일 저녁 8시가 지나자 서울시교육청 제23고사장인 서울 용산구 국립서울맹학교 정문 앞에 학부모들의 발길이 슬슬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중증 시각장애인 수험생 4명이 수능을 치르고 있었다.
수험생 A 양(19)의 어머니는 "원래 안 떨렸는데 지금 나올 때 되니까 조금 긴장된다"고 했다. 허재혁 군 어머니는 "시간만 많이 준다고 공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일반 책을 읽어도 12시간씩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손으로 읽으면 감각이 없어지지 않을까. 손이 얼얼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허 군과 같이 중증 시각 장애가 있는 수험생은 시험 편의제공 대상자로 분류된다. 점자로 된 문제지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시험 기간이 연장돼 저녁 8시 15분에 4교시 탐구영역까지 모두 종료된다.
저녁 8시 35분쯤 되자 시험을 다 치른 수험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허 군은 "생각했던 느낌대로 (시험이) 나온 것 같다"며 "컴퓨터로 들을 수 있게 (문제를) 제공해 줬는데 오랫동안 하고 있으니까 귀가 너무 아프더라"고 말했다.
컴퓨터공학과를 지망한다는 허 군은 "면접이 남았는데 다 끝나면 골볼(시각장애인 구기 스포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 군 옆에서는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수험생 박성준 씨(21)는 피곤한 모습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일단 힘들면서도 홀가분한 느낌"이라며 "국어는 조금 망한 것 같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학과나 역사교육학과를 지망한다는 박 씨는 탐구영역 선택과목으로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봤다고 했다. 박 씨는 "점심만 먹고 저녁을 아직 못 먹었는데 피곤해서 얼른 쉬고 싶다"며 "수시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데 (입시가) 다 끝나면 코딩이나 엑셀을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 팔짱을 끼고 나온 수험생 A 양과 B 양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회학과와 법학과를 지망한다는 A 양은 "국어는 평상시에 비해 더 엄청 어렵지는 않았고 보통 정도였던 것 같다"면서도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A 양은 인터뷰가 끝난 후 '무엇을 먹고 싶냐'는 어머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기사식당! 돼지불백이랑 김치찌개랑 갈치"라고 대답했다.
A 양 어머니는 "수업에 필요한 교재가 있어도 점역이 빨리 안 되니까 교재가 없는 것이 제일 힘들다"며 "급한 문제는 풀어봐야 하는데 점역이 대기자가 많아서 요청한 건 한 달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맹학교 교사인 C 씨(30대·남)는 "시각장애인 학생은 매체에 접근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어서 (비장애) 학생들보다 배 이상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학생들이 삶의 개척 의지가 굉장히 강해서 준비 과정도 의미 있을 뿐 아니라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게 학교생활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인생 자체가 시험의 연속이지 않나"라며 "(수능이) 사회로 나가기 전 예방주사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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