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건물주 살해…"사람 죽일 위인 못 된다" 범인 옹호 나선 주민

모텔 임대업자 지적장애인 가스라이팅…수급비도 꿀꺽[사건속 오늘]
주인과 재개발 갈등. "말하지 말고 죽여라 "살인 교사…징역 27년형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23년 11월 1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이 건물의 주인인 80대 남성 A 씨가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목 쪽에는 날카로운 흉기로 깊게 찔린 상처가 있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건너편 모텔 주차장 관리인 지적장애 2급 김 모 씨(당시 32)를 피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인근 상인은 "김 씨는 저렇게 (옥상에) 올라가서 그럴 위인이 못 된다. 지적장애인이 거기까지 올라가서 살인한 게 이해가 되냐"고 주장했다.

동시에 상인은 "김 씨는 조 씨 말이라면 그냥 껌뻑 죽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면서 모텔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조 모 씨를 언급했다.

"지적장애 김 씨는 상관없다"…건물주 살인사건의 전말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

김 씨는 이날 건물 6층에 있는 A 씨 사무실 앞에서 흉기를 들고 기다리다가 출근하던 A 씨를 옥상으로 데리고 가 살해했다.

김 씨는 범행 이후 주차장에 돌아와 평소처럼 청소하고 모텔에서 샤워한 뒤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출동한 수많은 경찰 사이를 태연하게 빠져나갔고, 여러 차례 주차장과 모텔을 반복해서 오갔다.

그러다 김 씨는 오후 5시 30분쯤 용산역으로 가 강릉행 KTX에 탑승했다가 도주 4시간 만인 오후 9시 32분쯤 역사 앞에서 긴급 체포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A 씨가 나를 무시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 씨를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하다가 그가 김 씨 동선이 찍힌 모텔 CCTV 영상을 모두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실을 알게 돼 조 씨도 긴급 체포했다.

두 사람의 체포 소식에 A 씨의 지인은 "김 씨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혀 상관없는 애다. 김 씨는 A 씨와 아무 원한 관계가 없다. 오히려 조 씨가 A 씨와 원한 관계"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은 조 씨가 김 씨를 때린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도 주장했다. 김 씨의 단독 범행이었다기엔 미심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재개발 분쟁 갈등' 건물주 살해할 결심…지적장애 가스라이팅했다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

김 씨의 배후에 조 씨가 있었던 것일까.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한 지적장애 2급 김 씨와 조 씨가 처음 만난 건 2019년 5월이었다. 부친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던 김 씨는 영등포역 쪽방촌 인근에서 조 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조 씨는 김 씨를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고 "나는 네 아빠로서, 형으로서 위하는 사람이다"라며 김 씨가 전적으로 자신을 따르게 했다. 조 씨는 2020년부터 약 3년 4개월간 김 씨에게 모텔·주차장 관리 일을 시켰다.

하지만 조 씨는 김 씨에게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김 씨가 모텔에서 지내지 않는데도 모텔 방세 명목으로 매달 장애인 수급비 50만~60만 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 씨는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가족처럼 여겼다.

이렇게 조 씨는 김 씨에 대한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이어오며 범행 전면에 그를 내세웠다.

검찰은 조 씨가 최근 재개발 분쟁으로 갈등이 생긴 A 씨를 살해하려고 별다른 접점이 없던 김 씨가 A 씨에게 반감을 갖도록 심리적으로 조종했다고 판단했다.

조 씨는 A 씨와 영등포 공공주택 재개발 관련 부동산 컨설팅 계약으로 다투기 시작했고, 조 씨가 노리던 해당 재개발 사업 조합장 선출에 A 씨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갈등이 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차장 부지를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조 씨는 2020년 7월부터 A 씨 소유의 주차장을 빌려 사용했는데 재개발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자 월세 150만 원을 30개월간 내지 않았다고.

이에 A 씨는 범행 발생 약 3개월 전 주차장 임대차 해지를 최종 통보했고, 한 달 뒤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흉기 휘두르는 연습 시키고 CCTV 포맷…"내가 바본가?" 범행 부인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

이 과정에서 조 씨는 사건 발생 약 1년 5개월 전부터 "A 씨가 네 여자친구를 강간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네 장애인 수급비를 받지 못하게 할 거다" 등 거짓말로 김 씨에게 그에 대한 적대감을 심었다.

또 조 씨는 범행 3개월 전부터 김 씨에게 복면, 우비, 흉기 등 범행도구를 구매하게 한 뒤 이를 쇼핑백에 담아 모텔 카운터 아래에 두게 했다. 조 씨는 김 씨에게 무전기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흉기를 휘두르는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범행 사흘 전엔 범행 직전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도록 CCTV 방향을 돌려놨으며, 당일에는 김 씨에게 "피해자가 녹음할 수도 있으니 말하지 말고 그냥 죽여라", "목격자 있으면 목격자도…", "우비 등엔 피가 묻으니 가방에 담아 내 차 트렁크에 실으면 된다"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조 씨는 김 씨 도주 장면이 찍힌 모텔 CCTV를 초기화하면서 증거 인멸 작업에도 용의주도한 면모를 보였다. A 씨를 살해하고 돌아온 김 씨가 모텔 내부에 흘린 피를 닦을 때, 조 씨 역시 모텔 출입문의 손잡이와 바닥 등을 닦았다. 아울러 다른 직원을 시켜 모친과 공동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소재 숙박업소에 범행 도구가 담긴 쇼핑백을 버리게 했다.

이와 관련 조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CCTV 아예 없애버리면 되잖아. 깨부수거나 새로 샀다고 하면 되잖아. 증거 인멸하려고 포맷했겠냐? 내가 그 정도로 바보겠냐?"라고 주장했다.

청소에 대해서는 "숙박업소에 고객이 왔는데 코피가 두 방울 있었다. (당신 같으면) 그걸 지우냐, 안 지우냐? 그걸 안 지우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저는 (김 씨를) 제 가족처럼 대했다. 지금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혔는데 이 아이의 삶이 기구해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조 씨의 모친은 "우리 아들 죄 없다. 너무너무 분하다"며 "CCTV는 한 달에 한두 번씩 포맷한다. 비만 오면 흐리고 안 보이니까. 우리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공교롭게 엮여버린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공범으로 몰렸다" 억울…살인교사 혐의 1심서 징역 27년

영등포구 한 건물에서 80대 남성을 숨지게 한 30대 주차관리인에게 살인을 교사한 혐의를 받는 40대 조모씨가 서울남부지법에 영장실질심사(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15일 출석하고 있다. 2023.12.13. ⓒ 뉴스1 홍유진 기자

당초 조 씨는 김 씨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입건됐다. 그러나 살인 혐의를 받는 김 씨가 경찰 조사에서 "조 씨가 '건물주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며 범행을 지시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조 씨에게 살인 교사 혐의가 추가됐다.

조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이후 모텔 CCTV를 포맷하고 혈흔을 닦았지만, 김 씨의 범행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일"이라며 "김 씨는 경찰의 회유로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조 씨는 첫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자신의 SNS에 "말도 안 되는 근거와 정황만으로 공범으로 몰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A 씨를 살해할 만한 동기나 살해를 통해 얻을 이익이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조 씨에게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수사를 이어온 끝에 조 씨를 살인 교사,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위반, 준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 6월 4일 김 씨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반감만으로 잔인하게 살해했고, 그로 인해 유족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며 김 씨에게 징역 15년과 보호관찰 5년을 선고했다.

한 달 뒤인 7월 9일, 서울남부지법 제15형사부(양환승 부장판사)는 살인 교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씨에 대해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지적장애를 가진 김 씨를 험담·이간질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교사해 살해하기에 이르렀다"며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도 수차례 거짓말을 하고 이 법정에서도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조 씨는 지적장애인 김 씨를 악용하고 편취하는 데 이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인 범행을 하도록 해 김 씨보다 더욱 무거운 형을 받았다.

피고인들과 검찰 모두 1심 결과에 불복했다. 조 씨와 김 씨는 선고를 받고 각각 이틀, 사흘 뒤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자신을 가족처럼 신뢰하는 지적장애인을 교사해 고령의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하였음에도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은 점,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더 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조 씨 판결에 대해 항소장을 냈다. 김 씨에 대해서도 "구형한 20년보다 형량이 적은 데다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기각됐다"고 항소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27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새로 참작할 만한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과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조 씨에 대한 2심 공판은 진행 중이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