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무하는 정치권 고소·고발, 범죄 피해자의 피눈물[기자의눈]
반려권 없는 경찰, 접수되면 수사해야…민생 범죄 수사력 약화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최근 공천 개입 의혹으로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명태균 씨와 강혜경 씨에 대한 형사 고발이 경찰에 접수됐다. 명 씨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강 씨는 국회에서 위증했다는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로 고발됐다.
하지만 명 씨와 강 씨를 고발한 사람들은 윤 대통령 부부도, 대통령실도 아닌 제삼자인 시민단체와 지방의회 의원이다. 이들은 두 사람을 잘 아는 위치에 있거나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명 씨와 강 씨 발언을 허위라고 판단할 근거를 갖고 있을까. 경찰에 제출된 고발장에는 의혹만 나열돼 있을 뿐 해당 발언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물론 고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나오는 각종 발언과 의혹 제기에 대해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범죄 행위에 대한 단죄 형식이지만 실상은 소수 고발인들이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않은 논란을 사법 당국에 떠넘기는 것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고발장을 반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단 접수한 이상 정식 입건해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발언의 진위를 파악하고 책임을 지우는 작업은 사법 당국 몫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런 방식으로 현실이 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정치나 국정 운영 자체가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며 "하지만 경찰의 고소·고발장 반려 재량권이 인정되지 않는 수사 제도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은 쌓여가는 고소·고발 건을 처리하느라 정작 전세 사기나 가상자산 사기 등 중요한 민생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접수된 우리나라의 고소·고발 건수는 48만여 건인 데 비해 일본은 1만 4000여 건으로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통계도 있다.
정치적 논란을 형사 고발을 통해 사법적으로 해결하려 할수록 정쟁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결국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수사력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무분별한 고발이 범죄 피해자의 피눈물로 연결되는 이유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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