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고, 불법 도축"…용도폐기된 퇴역마, 마지막 삶 '참혹'
퇴역마 열악한 복지 실태 상황 드러나
동물자유연대 "말 이력제 의무화해야"
- 한송아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굶주린 채 방치되고, 불법으로 도축되는 삶. 오늘날 한국에 사는 퇴역마들이 겪는 현실이다.
동물·환경단체들의 실태조사로 열악한 말 사육 실태가 연이어 폭로되면서 퇴역마 복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비글구조협회(비글구조네트워크, 이하 비구협)는 충남 공주시의 무허가 불법 축사에 23마리 말들을 방치하고 학대한 마주를 지난 18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마주는 무허가 불법 축사에 23마리 말들을 방치했다. 그 결과 두 달 만에 8마리가 폐사했다. 토지 소유주와는 소송 중이다.
비구협 관계자는 "죽은 말들의 사체가 오물에 뒤엉켜 있고, 살아있는 15마리 말들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는 등 어느 동물학대 현장보다 참혹했다"며 "마주가 퇴역마들을 싸게 사거나 처리 비용을 받고 데려와 일부는 불법으로 도축하고, 사체는 땅에 묻은 정황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전기 쇠톱과 잘려있는 말꼬리 등 사체 일부분이 함께 발견됐다. 심지어 마주는 지난해 10월에도 말 밀도살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퇴역마들이 겪는 고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주마로 길러지다 퇴역하는 말들은 쓸모를 다하면 이곳저곳 팔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최후에는 도축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지난 8일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제주자치경찰 기마대(이하 기마대)의 창단 후 말 31마리 중 21마리가 질병 등으로 폐사·방출되고 지난 5년간 5마리가 제골염 등을 이유로 안락사된 사실이 밝혀졌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기마대에서 매입한 대부분의 말 역시 경주마에 이용된 이력이 있다.
기마대 말은 제주도의 치안 유지, 관광 활성화, 응급환자 이동 봉사 등을 담당한다. 기마대는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 운영 등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 따라 수의사 진단 후 3∼5개월 동안 휴양 기간을 두고 다시 수의사와 기마대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안락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제주비건 등 12개 동물·환경단체들은 제주자치경찰 기마대의 무분별한 말 안락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안락사된 말들은 제주도수의사회 자문 결과 치료와 휴식을 통해 호전될 수 있음에도 무분별하게 안락사됐다는 지적이다.
동물·환경단체들은 "제주도민을 위해 헌신하는 말들이 적절한 치료는커녕 렌더링돼 대부분 반려동물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며 "말들의 복지와 건강 관리를 최우선으로 현역 및 퇴역 후 관리 체계를 구축해 도민을 위해 헌신한 말들에게 합당한 복지와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경찰청이 경찰기마대 폐지를 결정하며 기마대에 속한 말 10마리를 매각했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5월 소유권이 이전된 말들의 행방을 확인했지만, 10마리 중 6마리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 팀장은 "은퇴한 경주마가 방치돼 굶어 죽고 잔혹하게 도살당하는 사건이 여러 번 밝혀졌음에도 아직도 관리를 위한 말 이력제 의무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면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당하는 말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