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 판결 일단락…유·무죄 '이것'에 갈렸다

김광호 전 서울청장 '무죄', 이임재 전 용산서장 '금고형'
"보고 제대로 못 받아 과실 없다고 판단…실무자 책임 떠안아"

10·29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 치안 총책임자였던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의 핵심 쟁점은 '사고를 어느 정도 예견했느냐'였다. 김 전 청장의 혐의인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사고 가능성을 예견했는데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정황이나 증거가 있을 경우 인정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사고(이태원 참사)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 결과 17일 재판에서 그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권성수)는 이날 오전 10시 44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김 전 청장의 선고 공판을 시작했다. 판사는 선고 직전 무죄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법정은 술렁였고 유가족은 반발했다. "형법상 사전 예견 가능성이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발언이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핵심 기준은 '사고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다. 요컨대 경찰관이나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주의 의무 등 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형법 제268조에 따르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청장의 경우 참사 발생 직전인 2022년 10월 두 차례 화상 회의를 했다. 인파 집중 위험성이 있어 시민 안전 대책을 모색하는 회의였다. 그는 참사 발생 10여 일 전 화상회의에선 '인파 집중'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핼러윈 축제의 대규모 인파 밀집 가능성과 안전 대책 필요성이 담긴 정보보고서가 참사 2주 전 김 전 청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파가 몰리니 위험하다'는 통상적인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과 '사망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참사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다.

후자임에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반면 전자일 경우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크다. 김 전 청장 측은 전자를, 검찰 측은 후자를 주장해왔다. 1심 법원은 김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받은 이태원 인파 대응 계획 보고 등을 살펴봤을 때 단순 다수 인파 집중을 넘어선 대규모 사고 발생 우려 및 대비 필요성과 관련된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청장의 조치는 당시 인식한 위험성에 비춰봤을 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지시에 불과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고 발생 이후 혼잡 경비를 위한 경비 기동대 배치 등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관해선 재판부는 당시 김 전 청장에게 올라 온 보고를 감안할 때 주의 감독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전 청장이 보고받은 내용만으로는 대규모 인파 사고를 예상하기 어려웠고, 보고받은 내용을 고려하면 그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본 것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판단하는 세월호 참사 재판에서도 비슷한 판례가 나왔다. 당시 현장 지휘관은 처벌을 받았고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지휘부 10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장 지휘관 등 현장과 관련 깊은 사람일수록 사고를 예견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재판부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또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금고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전 서장의 혐의도 김 전 청장과 같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였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재판에서 "안전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 모든 위험 요소를 검토해 정보·경비·교통 계획을 적절히 수립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이 전 서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김 전 청장과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의 '과실'을 판단할 때 그의 업무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청장의 업무 범위를 '일선서와 서울청 일부 부서의 보고를 받는 것', '보고를 바탕으로 대비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 수준으로만 봤다는 의미다.

판사 출신인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김 전 청장이 보고를 제대로 못 받았다고 판단해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무를 담당하는 일선 서에만 과실 책임을 집중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상황이 위중했는데도 김 전 청장이 실무를 담당하는 일선서의 보고에만 의존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변호사는 "당시 일선 서에서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도 서울청장에게는 비상 상황에서 구체적인 보고를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고 체계를 평상시 만들어놨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의무의 범위가 추상적이라고 해서 상급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항상 일선에 있는 실무자만 처벌받는 결과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대비에 관한 보고를)구체적으로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응 상황을 사후에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에 과실이 있다고 본다"며 "이런 체계로는 실무를 하는 하급자가 모든 책임을 다 떠안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2022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 골목의 폭을 재고 있다.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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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