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절친 잘 살자 질투…남편 유혹해 잠자리, 일가족 3명 몰살
3살, 10개월 아이를 있는 힘껏 밟고 목 졸라 살해[사건속 오늘]
6개월간 살인 연습…손등에 난 밧줄 자국 본 형사 눈썰미에 들통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3년 세밑인 12월 31일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31살 이 모 씨(1972년생)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이틀 전인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모 아파트에서 절친한 여고 동창생 A 씨와 A 씨의 아들(3살), 딸(10개월) 등 일가족 3명을 죽인 혐의를 받았다.
이후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 범행의 끔찍함 △ 대담성 △ 노련한 형사의 육감 △ 치정에 얽힌 살인 △ 절친의 남편과 불륜 △ 내연 관계 △ 완전범죄를 노리고 6개월여에 걸친 준비 등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으며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 수사관, 프로파일러 교육 때 주요 사례로 활용됐다.
2003년 12월 29일 퇴근한 A 씨의 남편 B 씨는 거여동 모 아파트 7층의 자기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리 눌러도 인기척이 없자 평소 아내와 왕래가 잦았던 아내의 절친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내 아내와 같이 있나, 아내를 봤냐"고 물었다.
이 씨는 "오늘 만난 적 없다. 무슨 일이 있냐"며 놀란 목소리로 답한 뒤 "잠깐 기다려라, 내가 가겠다"며 달려왔다.
이 씨는 복도식 아파트 작은 방 창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창문을 밀쳤다. 이어 작은방 책상 위의 친구 A 씨 핸드백에 손을 뻗어 백을 집어 들었다.
백을 열어 본 이 씨는 "집 열쇠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 뒤 현관문을 열고 B 씨와 함께 들어갔다.
B 씨는 거실에 아내와 아들, 딸이 목이 졸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 송파경찰서에 "식구들이 죽어 있다"며 다급하게 신고했다.
출동한 형사들은 숱한 강력 사건을 겪었음에도 끔찍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신고자 B 씨의 아내 A 씨는 치마를 얼굴에 덮어쓴 채 목이 올가미에 조여 숨진 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들 목에는 졸라맨 보자기, 10개월 된 딸 얼굴에는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경찰은 아파트가 7층으로 외벽을 타고 침입하기 힘든 점, 창문이 닫혀 있고 방범 창살도 훼손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내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강력 사건을 수없이 경험한 형사들은 A 씨가 자식을 앞세운 뒤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도 않았고 통상 어린 자식을 죽인 뒤 부모가 그 뒤를 따라갈 때는 자식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살해 방식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다.
3살배기 아들, 10달 된 딸은 목 졸림은 물론이고 가슴 부위가 함몰될 정도로 심하게 밟혔고 침입 흔적이 없어 A 씨와 안면이 있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형사들은 A 씨와 아들 딸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우선 남편 B 씨를 추궁했다.
하지만 B 씨가 댄 알리바이가 완벽히 성립,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형사들은 A 씨, B 씨의 원한 관계, 채무 관계 여부를 캐는 한편 B 씨와 함께 사건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이 씨를 12월 30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단순 참고인으로 여겨 불렀던 형사는 이 씨의 왼손등에 '밧줄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죽인 A 씨 목에 난 밧줄 자국을 떠 올렸다.
육감적으로 뭐가 있다고 여긴 형사는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 씨 집을 뒤졌다.
이때 나온 결정적 단서가 잘린 패트병.
이후 이 패트 병은 이 씨가 안방 문 위에 밧줄을 걸 때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30일 이 씨를 범인으로 특정, 긴급 체포했다.
이 씨는 처음에 범행을 부인했으나 피해자 목에 난 밧줄 자국과 자신의 손등 밧줄 자국이 일치한 점을 추궁하자 "내가 그랬다"고 손을 들었다.
이 씨가 털어놓은 범행 수법에 형사들도 깜짝 놀랐다.
우선 이 씨는 A 씨가 없는 틈을 노려 "먼저 집에 가 있겠다"며 A 씨 집으로 들어가 안방 문 위에 자른 패트병을 걸쳐 놓은 뒤 다시 그 위에 올가미 모양을 한 밧줄을 걸어 놓았다.
이어 A 씨가 오자 우선 A 씨의 아들을 작은 방으로 불러 보자기로 목을 졸랐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이 씨는 옷장에 집어넣었지만 '신음'소리가 나오자 다시 끄집어내 가슴을 발로 마구 짓이겼다.
밖으로 나온 이 씨는 딸을 A 씨에게 안긴 뒤 "잠깐 안방 쪽으로 와 보라"고 손짓했다.
A 씨가 딸을 안고 안방 문턱을 넘자 걸쳐놓은 밧줄을 있는 힘껏 당겨 버렸다. 왼손 등을 지렛대로 사용한 까닭에 고무장갑을 꼈지만 손등에 밧줄 자국이 깊숙하게 새겨지고 말았다.
A 씨는 발버둥 치면서도 딸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 바람에 밧줄을 벗겨낼 생각조차 못 했다.
A 씨가 쓰러지자 이 씨는 딸을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뒤 발로 가슴을 밟았다.
이 씨는 살인 동기를 묻는 경찰 말에 "고등학교 때 뭐하나 나보다 못한 친구가 잘 사는 것이 속상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날 무시했다"며 질투에 의한 살인이라고 했다.
이 씨는 2001년 당시 한창 열풍이었던 동창생 찾기 사이트(아이러브 스쿨)를 통해 고교 졸업 후 처음 A 씨를 만났다.
미혼이었던 이 씨는 고등학교 짝꿍이었던 A 씨의 집으로 가 기쁨의 재회를 했지만 곧 질투심이 발동했다고 밝혔다.
분명 고등학교 때 자신이 A 씨보다 월등했는데 10년이 흐른 지금 A 씨는 잘생긴 남편과 결혼, 아들 딸 낳고 사는 모습에 배가 아팠다고 했다.
경찰은 잔인한 범행수법을 볼 때 살인 동기로는 약하다고 보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이 씨와 친구 남편 B 씨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사람 사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신용카드 사용처에 '모텔'이 등장했고 두 사람이 드나든 장면까지 확보했다.
결국 이 씨와 B 씨는 A 씨 몰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줄곧 유지해 왔다고 실토했다.
이 씨는 A 씨와 그 자식들만 없애면 B 씨가 완전히 내 차지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사건 발생 6개월 전부터 완전범죄를 꿈꾸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뼈대는 우울증을 앓던 A 씨가 자식들을 죽인 뒤 목을 맸다는 것이었다. 실제 이 씨는 경찰 조사 때 "친구가 우울증을 호소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이 씨는 도르래 원리를 활용한 밧줄 올가미 그림까지 그려가며 연구에 연구를 했다.
범행 완성 뒤 열쇠를 A 씨 핸드백에 집어넣고 작은 방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도 다 각본에 들어 있었다. B 씨가 분명 자신을 찾을 것이며 그때 우연히 집 열쇠를 찾아낸 것처럼 하려고.
이 씨는 시나리오에 따라 두 차례나 범행 기회를 노렸으나 '아이가 산만해 불러도 오지 않았다'는 등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막혀 무위에 그치다가 2003년 12월 29일 끔찍한 일을 실행에 옮겼다.
2004년 7월 검찰은 이 씨에 대해 "사형 외 다른 처벌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씨가 참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극형을 고려함이 마땅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점, 개전(改悛)의 가능성이 미약하나마 남아 있는 점을 참작했다"며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와 상소를 거듭하며 '사형'을 요구했으나 2005년 3월, 대법원에 의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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