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수능에 '난해한' 한강 작품 나온다"…도 넘은 사교육 마케팅

"노벨상 수상으로 출제 가능성↑…한강 작품 난해 사교육 필요"
전문가 "억지로 독서, 흥미 잃게 해…꾸준함 중요"

주요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책 판매량이 계속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의 한 제본업체에서 관계자들이 제주 4.3 사건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제본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대입 논술에 한강 작품이 출제될 게 아주 유력하다""독해 수준이 올라 대입 논술 등 국어 관련 시험 난도가 상당히 높아질 것"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독서·논술 학원들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내년 대입에 한강 작품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한강 작품을 수업에 활용해 왔다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반적인 국어 관련 시험의 난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초등학교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런 마케팅이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오히려 독서에 대한 반감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한강의 저서들을 수업에서 다루고 있다고 홍보하는 독서·논술 학원들이 대거 등장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A 독서논술학원은 홈페이지에 "우리 학원은 2021년부터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를 필독서로 지정해 운영해 왔다"며 "대비가 필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대입 논술 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한강 작품이 포함될 수 있다고 홍보하거나, 한강 작품의 난도를 강조하며 사교육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원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B 논술학원은 네이버 블로그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대입 논술에 한강 작품이 출제될 게 아주 유력하다"며 "출제 예상 도서를 파악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홍보글을 적었다.

이 학원에 전화를 걸어 '수업에서 한강 도서를 어떻게 다루는지' 문의하자 "독후감을 먼저 시키고,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해설 강의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치동 소재 C 논술학원은 블로그에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이후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국민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대체로 독해 수준이 올라 대입 논술 등 국어 관련 시험 난도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며 "초·중등 학생들이 더 난도 높은 독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서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이용한 사교육 업계의 이런 마케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불필요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는 데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억지로 독서하면 오히려 흥미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매우 큰 업적이고 수능이든 논술이든 시험에서 그의 작품이 나올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작품을 접한다고 해서 나중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고 평소에 문학 작품 등 책을 꾸준히 읽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지역의 한 중학교 국어 교사 이 모 씨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 학생들이 '선생님은 왜 국어를 전공했냐', '왜 문학을 좋아하냐'고 물으며 관심을 갖는 모습이 보이는데 사교육으로 떠밀리는 계기가 돼 이런 관심이 거부감으로 바뀔지 걱정"이라며 "문해력, 독해력도 일상 속 자연스러운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 마케팅을 하는 사교육 업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 교수는 "학생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가 생긴 시점에 이를 사교육 업체에서 이익을 위해 홍보 수단으로 삼는 것은 학부모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줄 위험성이 있다"며 "학원 지도 권한이 있는 교육청 등에서 꾸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 사교육 열풍은 한강이 밝혔던 유년 시절 독서 경험과는 정반대다. 한강은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사교육이 없는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내서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은 책과 시간이었다"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글자가 안 보여서 얼굴을 드니 해가 져 있었다. 그래서 일어나서 불 켜고 또 책 읽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