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딸 죽일게" 문자 보낸 아빠…딸은 진짜 죽었는데 '무죄'

평소 '딸바보'…구조대 도착 때 "대성통곡했다" 증언[사건속 오늘]
부검 동의도 유리하게…1심 징역 22년형, 상급심 "결정적 증거없다"

2019년 8월 8일 서울 모 호텔 욕조물에 숨진채 발견된 7살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국인 아버지가 1심에서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20년 12월 29일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 풀려났다. 일부 법의학자는 사고사 가능성을 이유로 2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키 130cm, 몸무게 27kg 어린이가 깊이 24cm 욕조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했을까라며 재판 결과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SBS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키 130㎝, 몸무게 27㎏으로 7살 여자아이치고는 컸던 어린이(2017년 소아청소년 신체발육표준치· 7살 여자아이 키 120.8㎝, 체중 23.4㎏)가 깊이 24㎝에 불과한 욕조에 빠져 죽을 수가 있을까.

1심은 '사고사가 아니라 외력에 의한 죽음' 즉 살인으로 보고 친딸을 죽인 혐의(살인)로 기소된 중국인 A 씨(1979년생)에 대해 징역 22년형을 내렸다.

하지만 2020년 12월 29일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는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 A 씨를 석방했다.

2심은 일부 미심쩍은 면이 있지만 평소 A 씨가 '딸 바보'로 불릴 만큼 딸과 관계가 좋았고 특히 사고 직후 출동한 119 대원이 'A 씨가 대성통곡하더라, 비슷한 사고 때 여느 아버지 모습과 같았다'고 한 점을 들어 A 씨가 범인이라는 검찰 주장을 물리쳤다.

동거녀, 돌싱남 딸 '마귀'라며 지독하게 미워해…"둘 중 하나 택하라, 나 죽는다" 위협

중국에 사는 A 씨는 B 씨와 결혼, 2012년 딸을 낳고 살다가 잦은 마찰로 2017년 5월 이혼하면서 양육권을 B 씨에게 넘겼다.

두 달 뒤 새로운 여자친구 C 씨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 A 씨였지만 딸에 대한 애정은 끔찍했다.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시간을 내 딸과 보냈고 1년에 2~4차례 휴가를 내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이 모습을 본 C 씨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A 씨의 딸을 '마귀'라고 부르고 남친이 딸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여기에 C 씨는 두차례나 유산을 하자 모두 다 "A의 딸 때문이다"며 A 씨의 딸을 원수 보듯 했다.

그토록 싫다는 티를 냈음에도 A 씨가 딸을 애지중지하자 C 씨는 "걔(딸)는 재수 없는 애로 우리의 아이를 잡아먹었다"고 딸과 만남을 말렸다.

그럼에도 A 씨가 말을 듣지 않자 "당신은 딸을 이용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냐, 딸이냐 나냐 택일하라. 내가 죽어야 하냐"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 News1 DB

딸과 함께 한국 여행…동거녀 "딸을 한강에 던져 죽여라" 요구, A 씨 "오늘 밤 반드시 성공" 답장

비극은 2019년 8월 8일 일어났다.

C 씨의 닦달에 견디다 못한 A 씨는 '한국으로 놀러 간다'며 8월 6일 딸을 데리고 서울을 찾았다.

8월 7일 저녁 딸과 함께 한강 유람선을 탄 A 씨는 C 씨와 범행을 모의하는 듯한 문자를 주고받았다. C 씨가 "딸을 강에 던져 죽여버려라"고 하자 A 씨는 "딸을 한강에 밀어버릴 수도 있다. 중요한 몇 군데는 카메라가 있다", "오늘 저녁 호텔에 가기 전 필히 성공시키겠다"고 답했다.

8월 7일 밤 11시 58분 호텔로 돌 온 A 씨가 8월 8일 새벽 0시 42분 맥주를 들고 방을 나오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담배 피우고 돌아와 보니 딸이 죽어 있더라" 대성통곡

A 씨는 58분여가 흐른 8일 8일 새벽 1시 40분쯤 객실로 돌아왔다.

이어 호텔 프런트에 "내 딸이 욕조에 빠져 숨을 쉬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119가 도착했을 땐 딸은 심정지 상태가 오래된 듯 사체경직과 시반이 형성됐다. 출동한 119 대원은 "A 씨가 대성통곡했다.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딸은 병원으로 옮겨져 심페소생술 등을 받았지만 8월 8일 새벽 3시 9분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 씨 동의를 얻어 부검을 실시했다.

부검결과, 목졸림 흔적· 눈 주위 점출혈 '외력에 의한 질식사 의심'…법의학자, 심폐소생술로 증거 훼손

부검결과 목졸림 흔적, 눈주위 점출혈 등을 볼 때 '외력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딸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관계로 A 씨가 경부압박을 가했는지, 경부압박이 의료진에 의한 것인지 뚜렷한 구별이 힘들었다.

이점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A 씨가 무죄로 풀려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일부 법의학자는 키 130cm, 몸무게 27kg의 어린이가 미끄러져 욕조에 빠졌더라도 제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고 심폐소생술로 결정적 증거가 훼손돼 아쉽다며 A 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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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동거녀와 문자, 호텔 방에 드나든 외부인 없었던 점" 들어 징역 22년형

1심인 서울남부지법 형사 12부(부장 오상용)는 2020년 5월 31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 대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금지옥엽같은 딸을 내가 죽일 동기가 전혀 없고 정신질환을 앓는 여자친구 C 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살해 계획에 호응하는 척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 동거녀 C 씨와 주고받은 메시지 △ 목졸림 흔적 △ 법의학자가 '외력에 의한 살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 등을 들어 A 씨 범행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있었던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사랑하던 아버지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사망했을 것"이라며 "소중한 생명을 뺏은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A 씨가 딸을 극도로 증오했던 동거녀의 지속적 요구에 응하여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그나마 선처한 형량임을 알렸다.

2심 "부검에 응한 점, 딸과의 관계 등을 볼 때 범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무죄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 1심과 달리 A 씨를 범인으로 볼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 친모 B 씨가 '딸을 사랑한 A 씨가 죽였을 리 만무하다'고 일관되게 말한 점 △ 사고 현장에서 A 씨가 딸을 잃은 전형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인 점 △ 법의학자가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점 △ 친모의 반대에도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는 부검에 동의한 점을 볼 때 "A 씨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A 씨와 C 씨가 주고받은 문자를 볼 때 공모 여부에 대해 "의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며 나름 고심끝에 죄없음 판단을 했다고 알렸다.

A 씨는 2021년 6월 8일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에 의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