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청색 두루마기 입은 외국인도 '일필휘지'…"자랑스러운 한글"
광화문광장 육조마당서 '휘호대회' 개최…300명 참가
외국인 50명도…"한국 문화 관심, 케이팝에서 서예로"
- 남해인 기자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시집에서 본 문구예요. 제게 의미 있는 말이라 썼어요."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한글날인 9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 육조마당에서 열린 '휘호대회'에 참가한 일본인 시노하라 리에(49) 씨는 검은 먹물에 적신 붓으로 한지에 쓴 한국어 문구를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시노하라 씨가 이날을 위해 일본에서 3달 동안 연습해 온 문구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었다.
세종대왕상 뒤편에 앉은 참가자들은 한지, 붓, 먹, 벼루 등 문방사우를 갖추고 써 내려가는 한글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을 재현하기 위해 청명한 가을 하늘색을 닮은 푸른색 두루마기도 입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글에 대한 사랑과 자랑스러운 마음을 글자에 담았다.
서예를 해온 할머니와 함께 대회에 참가한 김시우(12) 양은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이라 적은 작품을 보여주며 "한글날 때문에 우리 한글을 누가 창조하셨는지 생각해 보게 됐는데 우리가 쓰는 문자를 직접 만드셨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이 문구를 썼다"고 말했다.
'한글날,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사랑합니다'라고 쓴 조이현(16) 양은 "한글날은 원래 집에서 쉬는 휴일이었는데 이렇게 대회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경일을 기념해서 너무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참가자들이 서예에 열중하면서 대회장에는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지만, 대회 막바지에 이르러 실수로 작품을 망친 일부 참가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완성된 작품에 실수로 먹물을 잔뜩 묻혀 씁쓸하게 웃어 보인 황선호(18) 군은 대회를 앞두고 하루에 1시간씩 두 달을 연습했다고 아쉬워했다. 그의 작품에는 '훈민정음'이라는 문구와 '한글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황 군은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또 한글을 지켜주신 순국선열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적었다"며 "조선시대 사람처럼 두루마기를 입고 경복궁 앞에서 서예를 하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외국인 약 5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의 국적은 일본, 타이완, 케냐, 멕시코, 프랑스, 러시아, 인도네시아, 네팔, 우크라이나 등 다양했다.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온 고려대 학생 에바 씨(21)는 "러시아에서 케이팝(K-POP)과 같은 한국 문화가 인기가 많아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며 "지금은 국악, 서예 같은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생겨 대회에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다 같은 마음'이라는 문구가 깊은 울림을 줘서 붓글씨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578주년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날, 세상을 열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휘호대회에는 총 300명이 참가했다. 수상작은 11일 한국예술문화원 웹사이트에 게시된다. 수상작들은 11월 1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한글갤러리에 전시된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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