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지퍼 사이로 사람 엉덩이가 보여요"…여행용 가방 속 할머니 시신
술 먹다 욕정 발동, 평소 '엄마'로 부르던 할머니 성폭행 [사건속 오늘]
저항하자 머그컵으로 머리 내리쳐…서울로 도주, 신용카드 사용하다 덜미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오후 정형근(당시 55세 1959년생)은 술 생각이 나 평소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던 A 씨(당시 71세)가 야채를 파는 인천 부평구의 한 시장을 찾았다.
오후 4시부터 소주를 걸치던 정형근은 한 병을 비울 무렵인 오후 4시 50분쯤 "엄마, 이러지 말고 날도 추운데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며 A 씨를 부추겨 택시를 타고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자신의 오피스텔로 왔다.
A 씨는 아들과 같았던 정형근의 호의를 믿고 딸에게 "잔칫집에 다녀오겠다"며 시장을 벗어났다가 끔찍한 비극을 맞았다.
집으로 와 소주 2병을 더 비우자 정형근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정형근은 "갑자기 A 씨가 여자로 보였다. 욕정이 발동해 덮쳤다"고 했다.
아들처럼 대했던 정형근이 성폭행을 시도하자 A 씨는 가슴을 물고 뺨을 때리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화가 치민 정형근은 머그컵으로 A 씨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려 실신시켰다.
순간 정신이 든 정형근은 A 씨가 숨진 것으로 판단, 시신을 유기하기로 마음먹고 집에 있던 여행용 가방(가로 60㎝· 세로 40㎝· 두께 30㎝, 기내용 가방보다 조금 큰 사이즈)에 A 씨를 집어넣었다.
이때 A 씨가 꿈틀거리자 혼비백산한 정형근은 흉기를 들고 마구 찔러댔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정형근은 시신 처리를 놓고 고민하다가 다음 날인 21일 어둠을 틈타 집 근처 빌라 주차장 담벼락에 가방을 버리고 서울로 도주했다.
정형근이 가방을 버린 곳은 사람 통행이 잦지 않은 곳인 탓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이를 보고도 '주인이 있겠지' '누가 몰래 헌 가방을 버렸겠지'라며 그냥 지나쳤다.
그러던 중 2014년 12월 22일 오후 3시 7분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남고생 2명이 미처 다 잠그지 않은 여행용 가방 지퍼 사이로 "사람 엉덩이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한 게 보인다"며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가방 속에서 오른쪽 옆구리와 목 등 다섯 군데가 흉기에 찔렸고 머리 일부가 함몰된 할머니 시신을 발견, 즉각 강력반 전원을 소집해 수사에 나섰다.
주차장 부근 CCTV를 통해 정형근이 가방을 버리고 손에 낀 장갑을 벗는 장면을 찾아냈다.
지문 감식 결과 피해자가 A 씨임을 확인한 경찰은 시장 상인들에게 CCTV를 보여준 결과 '정형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정형근 집을 압수수색 해 A 씨의 혈흔과 피 묻은 정형근의 바지를 확보한 경찰은 정형근을 용의자로 특정, 24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정형근이 휴대전화를 끈 사실에 따라 공개수사로 전환, 25일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21일 밤 서울로 도망친 정형근은 갖고 있던 현금이 떨어지자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5가의 한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로 담배를 구입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정형근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통보를 받은 인천 남동경찰서는 서울 중부경찰서에 협조를 의뢰, 을지로 5가 주변을 뒤진 끝에 오후 7시 정형근을 체포해 인천으로 압송했다.
A 씨가 정형근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살해됐다는 말에 두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헛소문이 일부 나돌았다.
이에 경찰은 "정형근이 할머니와 연인 관계는 결코 아니다" "피해자가 정형근 집에서 술을 마신 건 그날 처음이었다" "정형근이 술 마시다 욕정이 생겨 성폭행을 시도했다"며 엉뚱한 말로 피해자 명예를 훼손시키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정형근은 재판 내내 "술에 취해 저지른 행동이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5년 3월 25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신상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형근에 대해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반인륜적이다"며 무기징역형 선고와 함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을 명령했다.
당시 사실상 사형제도가 사라진 상태이기에 법원은 가장 엄한 무기징역형을 내리는 것으로 정형근의 죄를 물었다.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도 그해 5월 21일 "범행 전후의 행동, 범행 과정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는 점 등에 볼 때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정형근의 주장을 물리치고 무기징역형을 유지했다.
2015년 9월 3일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며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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