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히기 싫어 목 꺾어 산채 묻었다"…지존파·조양은 동경한 '막가파'
외제차 모는 여성 납치 살인…"잘 사는 사람 다 살해"[사건속 오늘]
두목 최정수, 조직원 8명 거느려…행동강령엔 '최고의 깡패 된다'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1994년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며 전국을 큰 충격에 빠뜨린 시기. 경기도 화성에 살고 있던 20살 최정수는 당시 개봉한 영화 '보스'를 보며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에 대한 동경에 빠졌다.
부유층 5명을 연쇄 살인한 지존파 같은 살인 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키워 조폭 조양은 같은 전국적인 보스가 되겠다는 허황한 꿈을 꾸게 된 최정수는 1996년 9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박지원(20), 정진영(20) 등과 만나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를 결성하게 된다.
이제는 막무가내로 언동을 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쓰이는 '막가파'는 그렇게 '쓰레기'들을 존경한 객기 어린 스무살의 치기에서 시작됐다.
28년 전 오늘. 스산하게 비가 내리던 토요일 새벽, 주점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여사장 A 씨(41)는 일찍 가게 문을 닫고 귀가를 하기 위해 자신의 외제차량으로 이동했다.
이때 여성의 등 뒤론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여성이 달리던 차량은 집 앞에 멈춰 섰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남성들 무리가 뒤에서 그녀를 덮쳤다. 그리곤 남성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에 여성을 밀어 넣은 뒤 청테이프로 손발을 결박했다.
여성은 '살려 달라'는 비명을 질렀지만, 깊은 새벽 그녀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범행 3일 전 우연한 기회에 외제 승용차(혼다 어코드)를 몰고 가던 A 씨를 보게 된 이들은 범행 대상으로 삼고 며칠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범행 당일인 10월5일 이들은 논현동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던 A 씨를 집 앞에서 흉기로 위협해 훔쳐 타고 다니던 쏘나타 승용차로 납치했다.
일당은 A 씨에게 현금 40만 원과 신용카드 4개를 빼앗았고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수원으로 이동해 신용카드에서 900만 원을 인출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막가파 일당은 A 씨를 차 트렁크에 옮겨 실은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와 A 씨의 외제차량으로 갈아탄 뒤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염전지대에 있는 소금 창고로 끌고 왔다.
차 한 대도 쉽게 들어가기 힘들어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던 그곳은 '지존파'가 그랬던 것처럼 '살인 창고'로 만들기 위해 준비한 그들의 비밀 아지트였다.
일당은 미리 준비한 삽으로 너비 3m, 깊이 1.5m의 구덩이를 파고 A 씨의 옷을 칼로 모두 찢어 나체 상태로 만든 뒤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A 씨는 애원했다. 이 모습에 두목 최정수는 담배 두개비를 꺼내 A 씨에게 건네며 "돈이 더 있냐?"고 물었다.
A 씨가 고개를 가로젓자, 일당은 더 이상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뒤 A 씨를 수직으로 세워 살아있는 상태로 생매장했다. 그들은 구덩이의 깊이가 생각보다 얕아 A 씨의 상반신 전체를 흙으로 덮을 수 없게 되자 A 씨의 목을 꺾은 뒤 다시 산채로 구덩이에 묻었다.
검거 후 흉기를 쓰지 않고 살해한 이유에 대해 묻자 이들은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그랬다' '신고할까 봐 두려워서 죽였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증오하며 잘 사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싶었다'라고 진술해 더 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일당은 A 씨를 살인한 전후로 범죄 자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이 저지른 대부분의 범죄는 일명 소매치기와 퍽치기였고, 주로 취객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한 뒤 이같은 범행을 일삼았다. 또 부녀자들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풀어주는 일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헛된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이들은 경기도 광주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후 14만 원 갈취, 서울 양재동에서 같은 방법으로 70만 원 갈취, 분당의 한 주유소에서 회칼로 위협한 뒤 93만 원 갈취까지 총 3번 주유소를 대상으로 강도 사건을 저질렀으며, 이는 3년 뒤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의 모티브가 됐다.
당시 이들은 자신들의 치졸한 행위들에 대해 남자다웠다며 추켜세워주며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등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희생된 A 씨는 대구가 고향으로 3남 1녀 중 맏딸이었다. 1986년 상경한 뒤 변을 당한 1년여 전부터 주점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교통사고를 당한 남동생이 분식집을 내도록 도와주고 돈을 벌 때마다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며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 노릇을 하던 딸이었다.
또 A 씨가 몰고 다니던 혼다어코드 차량은 직업 특성상의 이유로 친구에게 2500만 원의 돈을 빌려 구입해서 타고 다닌 것이었고, 살고 있던 집도 9평짜리 원룸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이 아니었다.
막가파 일당이 범행 대상으로 삼은 소위 '부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A 씨가 연락이 두절되자 가족들은 실종 일주일째가 되던 12일 저녁 경찰에 신고를 했다.가족들이 신고를 한지 불과 2주일여 뒤인 28일 새벽 3시30분쯤 두목 최정수와 일당은 너무도 간단하게 경찰의 검문에 걸리게 됐다.
당시 일당이 A 씨에게 탈취했던 차량을 몰고 다니는 허술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인근에서 범죄 용의 차량으로 신고된 차량을 확인한 경찰은 당시 차량에 탑승해 있던 일당 중 세 명을 경찰서로 끌고 와 추궁을 시작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장 어린 이 모 군(17)이 겁에 질려 생매장 사건에 대해 모두 실토하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일당 소탕에 나선 경찰은 수원의 '비밀 아지트'를 습격해 막가파 조직원 9명을 모두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계속된 자백으로 살해당한 A 씨의 주검도 이내 수습됐고, 그렇게 이들의 모든 범죄 행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두목 최 씨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4살 때 어머니가 가출해 홀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뒤 청소년기부터 집을 나와 생활했다.
범죄의 늪에 빠져든 최 씨는 폭력 등 전과 8범이 됐고, 그 외 조직원들 역시 대부분 중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절도·폭행 등의 전과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모두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함께 뜻을 모으며 결탁하게 됐고, '최고의 깡패가 된다' '배신하는 사람은 죽인다' '화끈하고 멋있게 살다가 죽는다' '경찰에게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기로 맹세한다' 등 이전 지존파처럼 조직 내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꿈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믿은 이들 9인의 헛된 소망은 한 달여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살인과 시체유기, 밤죄단체 결성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두목 최정수는 사형, 박지원과 정진영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조직원 6명의 경우에는 가담 정도에 따라서 징역 7년 형에서 1년 6개월 및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이 끝난 후 행동대장 정진영은 재판부를 향해 "×새끼야, 네가 판사냐. 나가면 너부터 죽여 버리겠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을 가하는 등 일관되게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범행 당시 소극적으로 행동했고 나이가 매우 어렸다는 점을 감안해 징역 1년을 살고 다음 해 출소한 조직의 막내였던 이 군은 두 달만에 또 다른 폭력조직에 가담해 돈을 뜯다가 다시 경찰에 잡혀 감옥살이를 했고, 두목 최정수는 2017년 한 방송을 통해 간증하는 모습이 공개되는 등 종교에 귀의한 상태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사형수로 현재까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khj80@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