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서 차 얻어 탄 20대, 삼척 노파 살해…죽음 후 밝혀진 '진범'
쪽지문 남겨…DNA분석기술 발달로 16년 만에 덜미[사건속 오늘]
이듬해 절도, 몸싸움하다 사망…'공소권 없음'에도 유족 한풀이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DNA 감식 기술이 국내 수사에 도입된 것은 1992년이다. 경찰은 2010년부터는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오랫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5000여 강력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삼척 노파 살인 사건 역시 발달한 DNA 기술이 망자의 한을 풀어준 경우다.
2004년 10월 2일 강원 삼척 근덕면의 한 주택가에서 70대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온몸에는 폭행의 흔적과 목이 졸린 자국이 남아 있었고, 날카로운 흉기가 복부 깊숙이 박혀있었다.
현장에는 용의자가 할머니의 집을 뒤진 흔적이 있었으나 피해자는 독거노인이었고 범인이 무엇을 훔쳐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비밀 공간에 숨겨둔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현장에는 범인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있었고, 피해자의 손톱 밑에서는 범인의 살점이 발견돼 범인의 DNA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30~4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기에 수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수사 범위를 넓혀 약 3000명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DNA 대조 작업을 했음에도 당시의 DNA 분석 기술로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또 사건 당일 범행 현장 근처 7번 국도에서 차를 얻어 타고 이동했다는 남성이 있어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끝내 범인을 찾을 수 없었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2019년 경찰이 미제 사건 전담팀을 꾸리면서 형사들은 삼척 노파 살인 사건을 우선순위에 올렸다.
광수대 12명과 미제사건 전담수사팀 3명 등 15명의 형사는 37권의 수사 기록을 근거해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을 사건 당일 오후 8~10시로 봤다.
또 인적 드문 시골 어두워진 시간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와 범행을 저지른 만큼 용의자가 동네 지리에 밝을 것이며, 범행 후에는 차로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근 거주자를 다시 조사한 결과 경찰은 피해자의 집에서 약 1.5㎞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주민의 친척 A 씨(사건 당시 25세)를 주목했다. A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으며 이사한 후에도 친척 집에 종종 방문했고, 무엇보다 절도 전과가 있었다.
경찰은 사건 당일 7번 국도에서 한 남성에게 차를 태워줬던 차주를 다시 찾아내 A 씨의 인상착의가 차를 얻어 탄 남성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행히 최초 수사팀은 해당 차에서 차를 얻어 탄 남성의 쪽지문(일부만 남은 지문 자국)을 채취해 남겨뒀고, 이는 A 씨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현장에 남아 있던 담배꽁초와 피해자의 손톱 밑에 있던 살점에서 나온 DNA 역시 A 씨의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경찰은 A 씨에게 죗값을 물을 수 없었다. A 씨는 삼척에서 노파를 살인한 이듬해인 2005년 6월 17일 도내 다른 지역에서 절도를 저지르던 중 피해자에게 발각됐고, 몸싸움을 벌이다 사망했다. 당시 국과수가 A 씨의 시신을 부검하며 채취한 혈액이 남아있었고 이는 A 씨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척 노파 살인 사건'은 살인 용의자가 사망했으므로 '공소권 없음' 처리됐으나, 유가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찾아낸 경찰에 큰 위로를 얻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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