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끄럽게 작업해" 밧줄 절단…12층 외벽 수리 40대 가장 추락사
음악 틀며 일하자 아침잠 깨웠다며 옥상 올라 '툭'[사건속 오늘]
일곱 식구 돌보던 가장 참사…야구 박석민 1억 기부 등 온정 물결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7년 12월 15일 재판장인 울산지법 형사12부 이동식 부장판사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 씨(41)를 불러 세운 뒤 "피고로 인해 피해자 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가장을 잃고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고 질타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가 저지른 살인 범죄는 어떤 방법으로도 피해를 복구할 수 없다"며 "피고인을 사회와 무기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검찰의 청대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5개월여 뒤인 2018년 4월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는 "가정에서 적절한 훈육을 못 받아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점, 고정 일자리를 가지지 못해 가족의 외면을 당해온 점, 범행 당시 양극성 정감 장애, 조증 에피소드 증세, 알코올 장애 증상 등이 있어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1심의 형량이 다소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이에 2심은 선처한 형량이라며 징역 35년형의 내렸다.
2심은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A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지만 사실상 무기징역형이나 다름없는 35년형을 내린 건 A로 인해 최선을 다해 착하게 살았던 피해자 B 씨(사망 당시 46세)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워 A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B 씨는 2017년 6월 8일 오전 8시 13분쯤 작업용 밧줄에 매달린 채 경남 양산시 덕계동의 한 아파트 외벽 수리 작업을 하던 중 A가 옥상에 올라가 작업줄을 끊는 바람에 12층 높이에서 추락,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A의 만행도 만행이지만 B 씨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B 씨는 작은 집에서 노모와 아내, 고등학교 2학년· 중2· 유치원생· 27개월 된 딸,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등 4녀 1남을 먹여 살리던 가장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일 정도로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자기 손으로 7명의 식구를 먹여 살리겠다며 기꺼이 밧줄에 몸을 맡겼다.
A가 선량한 시민 B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개인적 화풀이 때문이었다.
사건 당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으나 일거리를 찾지 못하자 아파트 15층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A는 화풀이 술을 마신 뒤 해가 한참 밝아 온 뒤에야 잠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던 A는 아침 8시 무렵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을 보니 B 씨와 동료 C 씨(당시 36세)가 밧줄에 의지해 아파트 외벽 수리 작업 중인 모습을 발견했다.
A는 "시끄럽다, 음악 꺼라"고 신경질을 냈고 C 씨는 즉시 휴대폰 음악 재생을 중단했다. 하지만 외벽의 갈라진 틈을 실리콘으로 메우고 있던 B 씨는 미처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음악에 맞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 분개한 A는 공업용 커터칼을 꺼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도착한 A는 밧줄 4개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우선 가까운 쪽 밧줄을 커터칼로 자르기 시작했다. C 씨의 작업줄이었다.
그때 음악소리가 다른 줄 쪽에서 나자 A는 자리를 옮겨 그쪽 작업줄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이 바람에 11층과 12층 사이에서 작업 중이던 B 씨는 그대로 추락해 사망했고 C 씨는 황급히 간당간당한 줄을 조절해 밑으로 내려와 목숨을 건졌다.
B 씨 바로 옆에는 사촌동생 D 씨(41세)도 밧줄을 타고 함께 작업 중이어서 찰나의 순간에 사촌의 생사가 엇갈렸다.
일곱 식구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B 씨 사연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에서 온정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B 씨가 살고 있는 부산 진구는 자녀들의 학비, 후원처 발굴 등 앞장서 피해자 돕기에 나섰다.
창원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박석민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뒤 그해 7월 23일 1억 원을 유족에 기부했다. 이에 B 씨 부인은 "아이들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눈물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업체가 안전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B 씨 생명을 살릴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층 작업의 경우 작업용 본밧줄과 구명용 예비 밧줄 2개를 옥상에 고정하고, 이를 지켜봐야 하지만 당시 작업용 밧줄 하나만 걸어 놓았고 관리자도 1층에 머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잘못은 A에게 있다. 사건 당시 B 씨가 음악을 틀었지만 '아주 시끄러울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1심 재판부도 "범행 당시는 늦은 밤이나 새벽도 아니었고 피해자가 튼 음악 소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았음에도 피고는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꾸짖었다.
A가 2심에서 징역 35년형으로 감형받자 검찰이 즉시 상고했지만 2018년 6월 29일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징역 35년형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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