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 극장이었는데"…개관 66년 대한극장과 아쉬운 '작별'
학창 시절 떠올리며 기념사진 '찰칵'…"데이트하러 많이 왔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충무로 시대…인근 자영업자 "매출 타격 커"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많이 봤죠.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 많이 왔어요."
30일 폐업하는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만난 60대 중반 여성 이정화 씨는 "공교롭게 오늘 모임이 있었는데 (대한극장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장소를 여기로 정했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 학부모 모임이라는 이 씨 일행은 이날 오전 대한극장 앞에 모여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씨는 "지금 남편과도 여기서 데이트했던 기억이 난다"며 소녀처럼 웃었다.
1980년대 인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 씨는 "그때는 여기가 만남의 장소였다"며 "명동이 가까우니까 데이트 장소로 많이 찾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대한극장은 1958년 개관한 후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중심지 '충무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벤허', '사운드오브뮤직' 등 당대 최고의 영화를 상영했고 2000년 재건축한 이후 상영관을 늘리며 대기업 소속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경쟁했다.
대한극장의 폐관 소식에 많은 시민들은 "시대가 변화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도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40대 남성 오 모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와 친구 어머니를 따라가 영화 '후크'(1992년 개봉)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며 "추억의 장소였는데 없어지니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유 모 씨(75·남)는 "중학교 1학년 때 '하늘에서 별이 내리다' 영화를 봤다"며 "그땐 대한극장이 우리나라 최고 극장이었는데 지금은 팔려서 없어진다니 좀 아쉬운 것 같다"고 전했다.
바로 옆 골목에서 22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 씨(64·여)는 "대한극장 때문에 많은 권리금까지 내고 들어왔는데 없어진다니 서운하다"며 "코로나 때도 손님이 없어서 놀았는데 자영업자한테는 바로 타격이 크다"고 아쉬워했다.
식당주 이 씨는 "아무래도 젊은층에는 맞지 않았던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대한극장을) 많이 찾았다"며 "작년만 해도 '서울의 봄' 보러 많이 왔는데 할머니들은 '요즘 볼 게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20여년간 대한극장에서 일했던 직원들 역시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이날 마지막 출근하고 퇴사하게 됐다는 직원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인 대한극장을 보고 있었다.
과장급 직원이라는 한 모 씨(60·남)는 "2000년도에 건물 새로 지은 후엔 주말 하루 최고 1만 5000명, 평일에도 3000~4000명 관객이 기본이었다"며 "해리포터 시리즈도 인기였고 한국 영화로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도 상영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1983년부터 극장 영사실에서 일했다는 이 모 실장(64·남)은 "예전에 안양에서 일했을 때는 필름 가지러 항상 충무로로 왔다"며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에서 하는 영화는 그냥 무조건 흥행이라는 공식이 있었다"고 당시 대한극장의 위상을 설명했다.
24년 전 대한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이 실장은 "우리나라 최고 극장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지금은 다 35㎜ 필름만 돌리는데 대한극장은 70㎜ 필름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70㎜ 필름은 화면도 커야 하고 사운드도 웅장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대한극장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인극장이었는데 이제 남은 건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메이저(멀티플렉스)밖에 없다"며 "메이저 영화관도 사정이 어렵다던데 넷플릭스가 생기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영화관을 안 찾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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