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안전한 임신중지 위한 의료 서비스·의약품 도입 권고"

"모자보건법 '허용한계' 삭제 방향으로 개정 추진 필요"

임신중지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 불합치'로 결정되자 지난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국가가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여성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약품을 도입하라고 26일 권고했다.

국가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국가가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침해되고 있다"는 취지로 제기된 진정사건을 조사하고 이같이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이 진정 사건이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사안이라 각하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이 지속됐고, 2020년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약품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책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낙태', '중절' 등 부정적 의미의 용어를 '임신중지' 또는 '임신중단'으로 정책용어를 정비할 것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공공보건의료 전달 체계 내에서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 △의약품을 사용한 임신중지를 포함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 종사자를 교육하고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을 권고했다.

아울러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 임신중절 수술의 허용한계'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 '인공 임신중절 수술의 허용한계'를 삭제해 포괄적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청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는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차별시정위원회는 '임신을 중지할 권리'는 유엔여성차별철폐 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서 여성의 주요 권리로 명시되고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 여성은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찾기 어렵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봤다.

또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한 유산유도제를 2023년 기준 96개국에서 도입했지만 국내에는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아 수술적 방법에만 의존하거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의약품을 구매해야 해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아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자기결정권을 저해했고, 남성과 비교해 여성에게만 필요한 의료 개입을 거부하거나 방치해 성별을 이유로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임신중지권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이번 권고 결정의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