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이삿짐 속 부패한 시신…피해자는 이혼한 50대女
빚 5000만원 신용불량 50대, 전세금 1.2억에 눈 멀어 살해[사건속 오늘]
"연인 사이 다투다 우발 범행" 주장…시신 유기 치밀 계획, 무기징역형
- 신초롱 기자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9월 26일 오후 10시 40분 부산항 부두에서 천에 싸인 변사체가 떠올랐다. 최초 신고자는 밤낚시를 하던 낚시꾼이었다. 흰색 침대보 같은 천에 싸여 바구니에 담긴 물체가 떠올라 호기심에 들췄다가 이를 목격했다.
이불 속 피해자는 여성이었는데 휴대전화, 지갑 등 신분을 증명할 소지품이 없어 신원을 바로 파악할 수 없었다. 지문 채취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온몸이 퉁퉁 붓고 부패가 많이 진행된 탓에 장장 10시간 만에 채취에 성공했다.
피해자는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50대 여성 A 씨로 밝혀졌다. 부검 결과 목이 졸려 질식한 것으로 확인됐다. 얼굴과 몸에는 여러 개의 멍 자국이 확인됐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이 유기 장소일 가능성을 열고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은 CCTV, 은행 기록, 통신내역 등을 신속히 확보했다.
우선 피해자의 집 수색, 최근 행적을 쫓아 탐문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집은 누군가 뒤지거나 강제 침입한 흔적이 없었지만, 안방 침대보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과학수사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수사 결과 침대 좌측에서 발견된 낙하혈과 방안 곳곳에서 발견된 접촉혈은 피해자의 DNA로 밝혀졌다.
A 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인 19일 평소처럼 일터에 출근했다가 갑자기 퇴근한 다음 날부터 무단결근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가족처럼 지내왔던 가게 사장은 21일 A 씨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어 문 앞에 쪽지를 남기고 돌아왔다. 다음 날 그는 A 씨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 한 통을 받았는데, 존댓말을 하던 평소 말투와 달라 즉시 전화를 걸었지만 꺼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장이 22일 오전 4시 35분쯤 받은 문자에는 "애들 때문에 애 아빠 만나고 할 일이 많고 해서 당분간 아무에게도 얘기않고 쉬고 싶어 바람 쐬러 감"이라고 적혀 있었다.
실종 기간 다른 지인들도 A 씨의 문자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낮 12시 58분쯤 친구에게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진료받고 감기 몸살 자는 중"이라고 보냈다. 21일 오후 3시 26분 또 다른 지인한테는 "괜찮고 이사와 애들 때문에 많이 바쁘다"라고 했다.
경찰이 통신 내역을 확인한 결과 A 씨의 휴대전화 기록에서 새벽 시간대에 특이한 발신 내역이 발견됐다. 20일 오전 6시 15분을 시작으로 이틀간 무려 14번이나 은행 ARS에 전화를 걸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
수사 과정에서 A 씨가 이사를 앞두고 살던 집 전세금 약 1억 2000만 원 정도를 미리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전을 목적으로 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부산 각 은행마다 A 씨의 계좌 인출 시도 내역을 확인하고 해당 계좌 비밀번호를 잘못 누른 기록까지 요청했다. 돈을 인출했던 CCTV에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A 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19일을 기준으로 약 한 달 보름간 통화량이 많은 순서대로 조회했다. 알리바이가 밝혀진 사람을 제외하고 나니 10명으로 압축됐다. CCTV에 확인된 사람이 그중 1명이었다.
CCTV에는 인출자는 A 씨의 통장에서 여러 번에 걸쳐 340만 원 정도를 인출한 뒤 곧장 은행 바로 옆에 있는 트럭으로 가서는 누군가와 돈을 나누는 정황이 찍혀 있었다. 공범 얼굴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출자는 40대 남성 B 씨로 밝혀졌다. B 씨는 자기는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진술하면서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인출된 돈을 건네받은 인물은 50대 C 씨였다.
경찰은 C 씨 집 앞에서 잠복하다 집에 들어가는 C 씨를 붙잡았다. C 씨는 커피를 딱 한 잔만 마시게 해주면 다 말하겠다고 했고 경찰은 그의 집 싱크대 밑에서 피해자 휴대폰을 발견했다.
C 씨는 조사실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머리를 박고 구르고 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리고 갔더니 갑자기 변기에 머리를 박고 피가 나서 정말 막 난리를 다 치고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잠시 자리를 비우려는 사이 C 씨는 또다시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달래자 C 씨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우더니 A 씨를 사랑했다고 주장하며 말다툼하다가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목을 졸랐다고 했다.
경찰은 애초에 연인 관계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C 씨가 피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지 채 한 달이 안 됐고, 살인 이후에 A 씨의 카드로 21일에는 횟집에서 22일에는 고깃집에서 결제한 내역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C 씨는 보름 전부터 범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C 씨에게 종종 일거리를 받은 적 있던 B 씨는 C 씨가 사건 발생 보름 전 '지인 개 몇 마리가 곧 죽을 것 같으니 같이 좀 처리하자', '조만간 부를 테니 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B 씨는 20일 오후 2시에 C 씨가 부르는 곳으로 갔더니 노란색 이삿짐 바구니에 무언가 묵직한 게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C 씨네 집으로 옮겼는데 나흘쯤 지나서 새벽에 또 연락이 왔다. 물에 버리러 가자 그러면서 하는 말이 냄새가 많이 나니까 악취가 심한 다리 밑에 가서 버려야 되겠다고 얘기를 했다고.
형사는 현장으로 바로 출동했고, 진술과 딱 맞아떨어지는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상에는 B, C 씨가 다리 앞에 트럭을 세우고 바구니를 들어 하천 밑으로 던지는 장면이 담겼다.
이삿짐 바구니는 바로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맴돌았다. 다시 건져서 모래주머니를 달고 또 건져서 달고 2~3번 하다 보니까 답답했던 B 씨가 C 씨한테 '형님 그만 신고하고 벌금 조금 내'라고 말했더니 C 씨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진짜 개로 알았던 B 씨는 C 씨가 불같이 화를 내자 개가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결과 황 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약 5000만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고 공과금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그는 A 씨가 이사를 앞두고 전세보증금을 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C 씨는 20일 새벽 4시쯤 퇴근하는 A 씨를 데려다주겠다면서 접근해 집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때부터 몇 시간동안 폭행하며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 씨의 지갑 속에 있던 신용카드, 통장 등을 훔쳐 간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전세금은 통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A 씨는 통장 속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버텼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C 씨는 연인 사이의 다툼으로 벌어진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주범 C 씨는 강도 살인, 시체 유기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공범인 B 씨에게는 시체 유기 혐의로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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