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의심 "성병 검사지 보내라"…아내 살해한 금수저 변호사
'너 같은 여자 널렸다', 딸에겐 '엄마와 살면 루저' 학대[사건 속 오늘]
대형로펌서 증권투자 담당…의처증 심해 툭하면 폭언, 우발적 범행 주장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3년 12월 3일 밤 119에는 '아내가 머리를 다쳐 쓰러졌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119 구급대가 신고자인 서울 종로구 사직동 A 씨 집에 도착, 쓰러져 있는 아내 B 씨를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119 협조 요청에 따라 A 씨 자택에 출동해 현장을 살피던 경찰은 변호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A 씨를 밤 9시 50분 긴급체포했다.
이후 A 씨가 금수저 출신 초대형 로펌 변호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A는 사건 당일 오후 7시 50분쯤 직경이 35cm나 되는 큼지막한 금속 파이프로 아내 머리를 마구 때리고 목을 졸랐다.
아내가 쓰러지자 119가 아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A의 아버지는 특수부 검사를 거쳐 5선 국회의원, 노태우 정부 시절 장관급 공직, 박근혜 정부 시절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계 거물이었다.
A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에야 119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나 유족은 "살릴 기회까지 날렸다"고 격분했다.
A는 모 외국어고를 나와 곧장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금수저 출신.
국제금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UCLA 로스쿨을 나왔다.
이어 회계학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국제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뒤 귀국해 초대형 로펌에서 증권투자 담당 국제변호사로 일했다.
죽은 B 씨는 S대를 나와 정부 산하 기관 팀장으로 근무 중 변을 당했다.
2023년 11월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 딸을 데리고 별거에 들어간 B 씨는 사건 당일 오후 6시 45분쯤 '딸의 옷가지와 가방을 가져가라'는 A의 전화를 받고 잠시 집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A는 '금전 문제로 말다툼하던 중 흥분, 파이프를 휘둘렀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지만 이후 재판 과정에서 B 씨 핸드폰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우발적인 아닌 고의 살인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사람들을 경악게 한 건 남편 폭행에 의해 엄마 B 씨가 죽어가는 소리를 다른 방에 있던 어린 아들이 들었다는 점.
당시 A는 공포에 질린 아들을 달래기보다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질타를 받았다.
B 씨 유족은 딸이 2013년 결혼한 뒤부터 A의 의처증과 정서적 학대를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A는 △ 왜 월급이 이렇게 적냐 △ 너 같은 여자는 서울역에 가면 널려 있다 △ B 씨 직장에 전화해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 △ 성병 검사를 받은 뒤 그 결과지를 보내라 △ 누구와 전화했는지 알아야겠다, 3개월 치 통화목록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또 △ 뉴질랜드 여행 도중 B 씨만 남기고 가버리는가 하면 △ B 씨 몰래 아들, 딸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 별거에 들어간 뒤 B 씨와 함께 사는 딸에게 '가난한 엄마 집에 있으면 너도 루저가 된다' 발언 △ 장모에게 '딸에게 이혼을 조장하지 말고 참는 법을 가르쳐라'고 말했다는 것.
이에 격분한 B 씨가 2021년 10월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A는 '다시는 그러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엎드리자 B 씨는 그해 11월 소송을 취하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A에게서 별다른 변화 기미가 없자 B 씨는 2년 뒤 이혼소송을 다시 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A는 1심 재판 기간 중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살해의 의도를 가지고 폭행한 것이 아니라 때리다 보니까 죽었다는 것으로 검찰은 A가 살인죄(징역 5년 이상)보다 형량이 낮은 상해치사(징역 3년 이상) 판단을 받으려는 의도라며 재판부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청했다.
A의 주장은 4월 23일, 1심 5차 공판에서 검찰이 회심의 증거를 내놓으면서 퇴색됐다.
검찰은 '딸이 이혼 소송을 낸 뒤 사위와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녹음해 왔다'는 유족의 말에 따라 B 씨 휴대폰 녹음내역을 알아보려 잠금장치를 풀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5개월여가 지난 4월 초 드디어 비밀번호 해독에 성공,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B 씨는 A가 파이프를 휘두르자 "미쳤나 봐"라며 남편을 달래려고 안간힘을 썼다.
A는 폭행에 지친 듯 2분가량을 쉰 뒤 다시 파이프를 들었다.
그러자 B 씨는 "오빠 미안해"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쓰러졌다.
법정에서 통화녹음을 튼 검사는 B 씨의 신음, 마지막 숨소리를 지적하면서 "정말 잔인하다"며 울먹였다.
검찰은 지난 5월 3일 1심 결심 공판 때 A에 대해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5월 24일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면서도 "계획적 살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때린다는 건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범행 수법의 잔혹함을 넘어서 아들이 지근거리에 있는 데서 엄마가 죽어가는 소리를 들리도록 범행을 했다"며 "아이들이 커서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고 질타했다.
검찰과 A 측 모두 항소,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검찰은 지난 11월 20일 A에게 다시한번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A의 2심 선고 공판은 오는 18일 열린다.
buckba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