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털고 옹호하는 의사들…'헛짓거리' 누가하고 있나[기자의눈]
'감사한 의사' 작성·유포 피의자 구속…의정 갈등 후 첫 사례
법조계 "개인정보 제공자, 공범 내지 방조 혐의 적용 가능"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170㎝ 후반에 비쩍 여윈 체형,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 둥근 안경에 검은 모자, A4용지 수십장이 든 종이봉투'
지난 20일 의료계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를 제작·유포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는 사직 전공의 정 모 씨를 승강기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구속을 면하기 위해 나름대로 반박 자료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법원은 심사 후 유치장으로 향한 정 씨에게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해 사회에서 일시 격리했다.
의료계는 정 씨를 '순교자'로 추켜세우는가 하면 "구속할 만한 사안인가"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라며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신 구속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만큼 수사기관에서 파악한 혐의사실과 증거가 무죄 추정을 깨뜨릴 정도로 개연성을 갖출 때 가능하다. 이에 비춰보면 법원은 현재까지 수사로 드러난 정 씨의 피의사실이 일정 부분 인정된다고 판단한 셈이다.
한 변호사는 "현재까지 소명된 피의사실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고 증거 인멸 행위를 동시에 차단하는 목적에서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블랙리스트 작성자에게 신상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공범 내지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씨 구속에도 현장 복귀를 감시하는 의료계 파놉티콘(Panopticon)은 계속 작동했다. 지난 21일 밤 12시쯤 '감사한 의사' 아카이브에는 '#확인필요'라는 꼬리표가 달린 수십 명의 실명이 추가 공개됐다.
수사기관을 향해 "헛짓거리 그만하고 의사 선생님들 그만 괴롭히길 바란다"고 밝혔던 이 아카이브 제작자는 추가 공개와 함께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면서 앞으로 업데이트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이렇게 블랙리스트를 돌릴 줄 알았으면 사직했을 텐데"('감사한 의사' 피해 제보자 A 씨 문자메시지 중)
제보자 A 씨는 지난 22일 기자와 만나 "9월 인턴 모집이 저조한 데 이 블랙리스트가 영향을 준 게 분명하다"면서 "내년도 인턴 모집, 복학 신청 기간에 이런 블랙리스트가 다시 돌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A 씨와 만나는 동안 의사 익명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전공의 생활을 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자녀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가 올라왔다. '감사한 의사' 업데이트가 멈췄다고 한들 막무가내식 신상 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정 씨가 구속되자 "구속 전공의 그리고 리스트에 올라 정말 피해를 본 분 모두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발언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것은 개인 판단의 영역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항의 방법이다. 집단 사직이나 휴학에 동참하지 않은 이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그들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사적으로 수집·유포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도 생겨나고 있다. 목적이 옳다고 부정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환자에게 들일 노력을 배신자 색출과 의료계 이탈을 조장하는 데 쓰는 의사와 전공의를 보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누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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