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나온 일병 "한 번만…" 애원 안 통하자 이별 통보 여친 살해
서울서 안성까지 쫓아가 화장실 숨어있다 범행 [사건속 오늘]
하루에만 전화 111통 집착, 부대서 '살인 안 들키는 법' 검색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0년 11월 25일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육군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여자 친구를 살해해 '살인 및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일병(22)에 대해 "과도한 집착과 의심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며 "범행 동기, 전후 정황, 피해자 유가족 등의 엄벌 탄원 등의 고려해 사회에서 장기간 격리해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던 시절이었기에 마스크를 낀 채 피고인석에 선 A 일병은 재판장의 "엄벌 필요성"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A는 2019년 10월, 동갑내기 여자 친구 B 씨를 뒤로한 채 입대했다.
그해 말 A는 일병으로 진급했지만 여자 친구와의 관계는 썩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전국을 덮쳐 국방부는 2월 22일부터 전 장병 휴가·외출·외박·면회 통제를 실시했다.
이에 애를 태우던 A는 4월 20일 여자 친구로부터 '우린 안 맞는 것 같다, 이제 그만 끝내자'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4월 20일은 공교롭게도 국방부가 장병들의 스트레스를 감안해 휴가 통제를 일부 완화키로 결정, 세부 지침을 준비 중이던 그날이었다.
A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곧 휴가 나가겠다"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때도 아니라면 끝내자"고 매달렸다.
B 씨가 단호히 거부했지만 A는 집착에 집착을 거듭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만 111통의 전화를, 60건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하루 종일 B 씨를 괴롭혔다.
B 씨는 몇몇 주위 친구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알리며 하소연했다.
A는 여자 친구에게 매달리는 한편 부대 PC를 이용해 '전 여자 친구 죽이기' '살인 안 들키는 법'을 검색했다.
범행 후 A는 "이성 문제로 여자 친구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인터넷 검색기록을 드러나는 바람에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됐다.
A는 부대 상관들에게 호소에 호소를 거듭한 끝에 5월 19일 2박 3일간 휴가를 얻었다.
휴가 출발에 앞서 A는 B 씨에게 '서울 강남 ○○에서 만나자'고 애원, B 씨는 A의 면전에서 '끝났음'을 통보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5월 19일 서울 강남에서 B 씨를 만난 A는 '헤어질 수 없다' '마음을 돌려라'고 매달렸지만 B 씨는 '이미 끝난 사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 뒤 고속버스를 타고 거주지가 있는 경기도 안성으로 돌아갔다.
이에 A는 바로 다음 고속버스를 타고 B 씨 뒤를 따라갔다.
A는 B 씨 집을 밤 10시까지 기웃거리다가 방에 불이 꺼지자 도어락을 풀고 무단침입했다.
깜짝 놀란 B 씨가 '나가 달라'고 하자 A는 '너 없는 세상은 살 의미가 없다, 죽어 버리겠다'며 여자 친구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면서 '너도 같이 죽자'는 등 B 씨를 위협했다.
A는 밤새 B 씨에게 애원했다, 협박했다를 되풀이했다.
지친 B 씨는 아침이 되자 '일단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며 집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못 나간다'는 A의 강압에 결국 회사에 오전 반차를 냈다.
점심때가 다 되도록 A가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자 B 씨는 낮 12시쯤 문자 메시지로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간 A와 B 씨는 스토킹 경위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A에게 'B 씨에게 떨어져야 한다'는 경고와 함께 분리 조치하고 B 씨를 택시 정류장까지 태워주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이때 경찰이 단순 스토킹이 아님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면 22살의 아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B 씨가 경찰서에서 회사로 출근한 뒤 A는 경찰로부터 '떨어져라' 경고를 들었지만 이를 무시, 흉기를 구입해 B 씨 집으로 들어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오후 근무를 마친 B 씨는 두려운 마음에 자기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직장 동료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 순간 화장실에서 뛰쳐나온 A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B 씨의 비명에 직장동료는 B 씨 집으로 달려왔다.
집안에서 요란한 소리에 직장동료는 '문 열라'며 문을 두들겼지만 A가 말을 듣지 않자 다급하게 112에 신고했다.
오후 9시 15분쯤 출동한 경찰도 '문을 열라'고 요구했으나 A는 듣지 않았다.
경찰이 119의 협조를 받아 9시 45분, 강제로 문을 따고 집안에 들어갔으나 이미 B 씨는 숨진 상태였다.
A는 군사경찰 조사 때 "여자 친구에게 벌을 내렸다"고 횡설수설했고 흉기는 "내가 죽으려고 준비한 것", "이성 문제로 말다툼 끝에 일어난 우발적인 일"이라며 변명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 범행 직전 흉기를 구입해 집안으로 무단 침입한 점 △ 흉기의 종류를 볼 때 타인을 해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점 △ 직장동료가 '문을 열라'고 요구한 순간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은 점 등을 들어 A의 주장을 물리쳤다.
무기징역형을 구형한 군 검사의 항소로 사건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으로 넘어갔다.
2021년 4월 1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면서도 "2심에 이르러 유족이 피고인의 사죄를 받아들여 합의했고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30년형을 선고한 1심 판단을 깨고 징역 25년으로 5년 감형했다.
현재 A는 병역처분변경(1년 6개월 이상의 실형 확정시 제2국민역 처분)을 받고 일반 교도소로 이감돼 옥살이하고 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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