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깨려고요"…수능 한 달 전, 전자담배 입에 문 수험생들
'학업 스트레스' 내세웠지만, 손 쉬운 구입에 냄새까지 '더 손이 간다'
가짜 신분증으로도 'OK'…전문가 "니코틴은 오히려 수면의 질 방해" 우려
- 이강 기자,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이강 김예원 기자 = "수능 공부하면서 잠 깨려고 자주 피워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A 군(19)은 공부하다 졸음이 밀려올 때면 커피 대신 '전담'(전자담배)을 피운다. 조금이라도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연기를 빨아들이면 잠이 빨리 깨고, 전자담배의 경우 냄새도 나지 않아 부모와 교사로부터 숨기기도 쉽다는 이유에서다.
A 군은 "연기를 흡입하면 느낌은 안 좋지만 잠은 확실히 달아나니 애용하고 있다"며 "수능이 다가오니 다들 지속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한 번씩 입에는 대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능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일부 수험생들이 졸음을 쫓기 위해 전자담배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냄새가 심하지 않고 주위 무인 기기 등으로부터 구하기도 쉬워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전문가들은 니코틴 흡입 등을 통해 잠을 깨우는 건 일시적 각성 효과에 불과하다며 흡연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오히려 숙면의 질 저하, 폐 손상 등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담배 피우면 노는 학생 '옛말'…학업 스트레스에 손댄다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소위 '노는 학생' 위주로 담배를 핀다는 세간의 인식도 이젠 '옛말'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잠을 깨우거나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자담배를 피웠다는 재수생 장 모 씨(20)는 "모의고사 날만 되면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손이 간다"며 "당시 전자 담배를 피우고 바디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들어갔다. 부모님께 안 들키고 휴대하기 편해서 애용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B 군(19)은 "친구 아는 형이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해서 피우고 있다"며 "여러 가지 맛이 나서 담배 같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서 부모님도 잘 모르신다"고 했다.
서울 중구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C 양(19)은 "친한 오빠를 통해 호기심에 피운 게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며 "주위 여자애들 10명 중 4명 정도는 피울 정도로 많이 접해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자담배에 대한 청소년들의 접근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해 3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을 기점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2020년엔 흡연 경험이 있는 청소년 비중이 남학생의 경우 전체의 2.7%, 여학생은 1.1%였지만 지난 2023년엔 각각 3.8%, 2.4%로 1.5~2배가량 늘었다.
냄새가 나지 않고 연기도 없으니 일선 현장에서 계도하기도 어렵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장 모 씨(28)는 "쉬는 시간에 별관 화장실에서 피다가 걸리기도 한다"며 "냄새가 안 나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이 모 씨(27)는 "전자담배 등은 냄새가 안 나니 학교 안 구석에서도 피우고 온다"고 지적했다.
◇'가짜' 신분증으로도 손쉽게 인증…전문가들 "복사본으로도 되더라"
전자 담배 구매가 쉬운 것도 한몫한다. 무인 판매기 등에서 별다른 제재 없이 쉽게 살 수 있을뿐더러 SNS를 통한 대리구매도 성행하는 탓이다.
무인 판매기의 경우 '가짜' 신분증으로도 구매가 가능할 정도로 허술하다. 자판기에서 전자담배를 구매하려면 제품 선택 후 신분증을 인증한 뒤 결제 버튼을 누르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날 기자가 서울 종로구의 한 자판기에서 직접 시도해 본 결과, 유효기간이 지난 '가짜' 신분증으로도 구매가 가능했다.
가게 내부에는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었지만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한 인증 절차나 차단기 등 미성년자 출입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올해 8월 시민단체 시민공론광장이 서울 마포구와 강남구의 전자담배 무인 판매점 4곳을 조사한 결과, 면허증 복사본만으로도 인증이 되는 등 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SNS 구매도 어렵지 않다. '댈구(대리구매)'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100개가 넘는 글이 쏟아져 나온다. 성인이 전자담배를 사서 미성년자에게 전달한 후 개당 수고비를 받는 식이다. 해시태그에는 '#미성년자'가 버젓이 걸려 있었다. '잘 받았다'는 후기도 쉽게 발견된다.
시민공론광장 대표인 이경훈 수원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엄마 신분증만 복사해서 가져가도 인증되는 수준"이라며 "아파트 상가, 학교 앞 편의점 인근에도 들어오고 별다른 제재 없이 온라인 구매도 가능해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청소년들의 조기 흡연이 단기적으론 잠을 쫓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는 일시적으로 몸이 놀라는 것일 뿐, 장기적으로는 불면 유발 등 몸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2010년부터 수도권 청소년을 대상으로 금연 교육을 진행 중인 나우보건소의 박종관 교육본부장은 "'잠이 깨는 게 아니라 합성 물질에 몸이 놀라는 것"이라며 "(전자담배에 쓰이는)합성 니코틴의 경우 유해성 검증이 제대로 안 된 경우가 많아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2020년 한국보건간호학회에 실린 '청소년의 흡연과 건강행위 및 건강 수준과의 관련성: 궐련담배와 전자담배 비교'에 따르면, 수면이 불충분할수록 흡연 경험이 1.4배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는 등 청소년 수면과 흡연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은실 강북삼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에선 청소년과 전자담배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청소년이 장기간 흡연할 경우 수면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성인보다 폐 손상의 정도가 심각할 가능성이 커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thisriv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