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턱 대학생 '공장식 수술' 받다 사망…'거리의 투사' 된 엄마
혼자 의료 지식·법 공부 7년 소송…병원장 징역 3년 [사건 속 오늘]
수술실 CCTV 의무화 '권대희법' 제정 계기…피해자 돕기 단체 활동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16년 9월 8일 25세 대학생 권대희 씨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 수술대에 누웠다. 권 씨는 고등학교 때 돌출된 입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집단 왕따를 당했고, 이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서울로 대학을 가면 제일 먼저 성형수술부터 받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권 씨는 TV에도 출연한 유명의사가 하는 안면윤곽수술 전문병원에서 상담받았다. 실력과 명성을 갖춘 무사고 경력의 병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수술을 집도한다고 했고 이를 믿은 권 씨는 수술대에 누워 몸을 맡겼다.
◇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되는 제품처럼 수술받은 환자
낮 12시 30분에 수술이 시작된 후 11시간이 지난밤 11시 30분, 119에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환자 권 씨의 출혈이 심해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11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술 과정이 담긴 영상에는 병원장 장 씨가 오후 1시쯤 수술실에 들어와 수술을 시작하는 모습이 담겼다. 20여분 후 장 씨가 권 씨의 턱뼈를 잘라내기 시작하자마자 머리 아래로 피가 후드득 쏟아져 내렸고, 간호사는 1시간 동안 6차례 밀대로 바닥에 고인 피를 닦아냈다.
그런데 수술 시작 1시간 후 뼈만 잘라내고 봉합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 씨가 수술실을 빠져나갔고, 누군가가 대신 들어와 수술복을 입었다. 수술 기록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유령 의사 신 씨였다. 그는 나머지 수술 과정을 맡았고 권 씨의 출혈은 계속됐다. 약 1시간 뒤 신 씨마저 수술실을 나갔고 남은 간호조무사 전 씨가 30여분간 지혈을 했다. 옆에 의사는 없었다.
해당 병원은 공장식 수술을 행하고 있었다. 마취 전문의 이 씨가 환자를 마취하고 다음 환자를 마취하러 나가면 병원장 장 씨가 들어와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뼈를 잘라낸 뒤 다음으로 신 씨가 들어와 수술 부위를 세척하고 봉합해 수술을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 아들 시들어가는 중환자실에 찾아온 병원장이 한 말, 엄마는 대성통곡했다
수술 날 권 씨가 흘린 출혈량은 약 3500㏄로, 이는 45㎏인 여성의 전체 혈액량이다. 권 씨 몸속의 피 70%가 빠져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권 씨가 있는 중환자실로 찾아온 병원장 장 씨는 뻔뻔했다. 장 씨는 권 씨의 어머니인 이나금 씨에게 "제가 변호사와 얘기해 봤는데 결과는 두 가지라더라. 첫째는 법으로 판정받는 거다. 형사소송은 하시면 (어머니가) 무조건 진다. 병원이 이기게 돼 있다. 형사소송은 '고의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잖나. 형사에서는 의사가 이긴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합의다. 저는 합의는 하는데 조건이 있다. 대학병원 책임까지 저한테 다 물어서 합의하라고 하면 저는 억울한 부분이 있다. 제가 합의금 100%를 드릴 순 없다. 대학병원도 (과실이) 있으니까"라며 이 씨에게 자기가 원하는 조건으로 합의하기를 종용했다.
뇌사상태에 빠진 권 씨는 턱 수술 49일 만인 2016년 10월 26일 끝내 숨을 거뒀다.
◇ 아들 한 풀어주려 생업 전폐…처절하게 매달린 어머니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 이 씨는 성형외과 의료진을 고소했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소송에만 매달렸다.
이 씨는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의미를 알기도 어려운 의무기록지 감정 결과를 수십번 정독했고,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초 단위로 분석해 기록했다.
의료진을 고소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인 2019년 11월 27일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였다. 검찰은 장 씨의 업무상 과실 치사만 인정하고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의사 면허에는 영향이 없어 의사가 의료행위를 계속할 수 있다. 의사 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가 의료행위를 했고 이를 지시한 의사들도 모두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담당 검사는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 병원장이 고용한 변호사, 검사 동기였다
알고 보니 원장 장 씨의 변호사와 담당 검사는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였다. 심지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했다.
이에 이 씨는 검찰의 불기소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불합리하게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 법원에 검찰의 결정이 타당한지 판단해달라는 제도다.
하지만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희박하다. 기소는 검찰의 고유권한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로 전 해인 2019년에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확률은 0.3%였다.
이 씨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거리로 나가 국회, 검찰청, 법원 앞에서 416일간 1인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법원은 피고인들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판단, 피의자에 대한 공소 제기를 명했다. 이 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것.
이 씨는 거리에서 "판사님께서 유족의 피눈물을 닦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한 많은 어미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눈물을 쏟았다.
◇ 대법, 병원장 징역 3년 확정
1심은 장 씨의 마취기록지 거짓 작성 혐의를 제외한 다른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3년과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은 장 씨의 혐의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3년과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유령 의사 신 씨는 1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2심에서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간호조무사 전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선고가 유예됐다.
어머니 이 씨는 결과를 받아들였으나 피고인들은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며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대법원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형량이 턱없이 부족해 많이 아쉽지만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 "아들 이름 단 '권대희법' 더 보완돼야"
7년간 소송을 거친 어머니 이 씨의 머리는 새하얗게 셌고, 그동안 그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돕는 사회단체인 의료정의실천연대의 대표가 됐다.
권 씨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인 일명 권대희법이 지난해 9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 씨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해 7년 전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버킷리스트에 대해 말했다. 이 씨는 "대희의 버킷리스트 중 15번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 남기기'였다. 저는 대희가 엄마한테 남기고 간 숙제라고 생각했다"며 "권대희법으로 아들의 이름이 남았다. 원래는 본인이 훌륭하게 성공해서 이름을 남기려고 한 거지만 버킷리스트가 이렇게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아직은 많이 부실하다"며 "허용 범위나 보존 기간과 같은 부분이 개정돼 피해자들이 권대희법의 도움을 받았다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syk1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