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빨리 진행하게"…'감전사' 20대 유족에 '처벌불원서' 강요한 대표

(JT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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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대 청년이 건설 현장에서 감전사했으나, 하청업체 측은 원청을 감싸며 유족에게 '처벌불원서' 서명을 요구해 유족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3일 JTBC에 따르면 23세 건설노동자 김기현 씨는 지난달 12일 오후 4시쯤 서울 천호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김 씨는 꼭대기 층인 34층에서 타설 장비 전원을 직접 끄라는 지시를 받았다. 리모컨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전원 장치 문을 열고 손을 갖다 댄 김 씨는 그 순간 고압 전류에 감전돼 몸을 떨다가 약 20초 만에 힘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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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30분쯤 방치됐을 무렵 그를 비추던 CCTV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김 씨 쪽을 확대했다. 그러더니 김 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각도가 돌아갔고 40분쯤 흐른 뒤 다시 숨진 김 씨 쪽으로 CCTV 각도가 돌아왔다. 여전히 김 씨는 혼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소방에 신고가 접수된 건 CCTV 각도가 다시 김 씨 쪽으로 돌아왔을 때쯤인 오후 5시 26분이었다. 김 씨가 쓰러진 처음 30분 동안 아무도 CCTV를 보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고도 40분이 더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 씨를 고용한 하청업체 대표는 "김 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원청에 CCTV를 살펴달라고 부탁했다"며 "CCTV를 통해 김 씨를 발견한 뒤 신고가 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CCTV를 관리하는 원청 건설사가 왜 확인이 늦었는지, CCTV가 갑자기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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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을 더 화나게 한 건 원청 감싸기에 급급한 하청업체의 태도였다. 하청업체 대표는 유족과의 통화에서 "저는 처벌을 받지만 원청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고, 원청은 유족에게 아무런 사과도 연락도 없었다.

2주 뒤 하청업체 대표는 유족에게 '사망한 김 씨의 부모입니다'로 시작돼 '하청과 원청 최고 경영자, 임직원 등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 빨리 공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적혀있는 서류를 건넸다. 원청의 책임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처벌불원서에 서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씨의 어머니는 "공사를 빨리 진행하게 조치해달라는 문구가 너무너무 화가 났다. 보자마자 그 사람들하고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냥 저희는 합의 못 한다고 하고 나왔다"며 목메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 씨의 부모는 아들의 유골을 아직 방안에 두고 있다. 김 씨의 어머니는 "(그날) 아들이 집에 올 줄 알았을 거 아니에요. 아들이 너무 놀라고 무서웠을 것 같고. 제가 좀 집에 안전하게 데리고 오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