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 간병비 없다"…'굶어 죽기' 택한 아버지 모르는 체한 아들
장아찌 반찬으로 한 달 버티며 아버지 수술비 댄 효자[사건 속 오늘]
너무 가난해 포기…법원도 눈물 흘렸지만 '살인은 살인' 징역 4년 형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늦가을을 재촉하는 쌀쌀한 바람이 불던 2021년 11월 10일,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고등법원 법정을 찾았다.
바로 '대구 간병 살인사건' 항소심 결과를 듣고 보기 위해서였다.
대구고법 형사2부(재판장 양영희)는 부작위에 의한 존속살인 혐의로 기소된 A 씨(1999년생)에 대해 "아버지를 퇴원시킨 다음 날부터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살인의 고의성이 없다는 A 씨 측 항소를 물리쳤다.
재판장은 침통한 표정과 함께 "피고인이 어린 나이로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 부담을 홀로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운 사정은 넉넉히 헤아릴 수 있지만 '살인은 살인'이라며 1심과 같이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쌀 사 먹게 2만 원만 빌려 달라'던 효자 아들의 아픈 사연에 눈물을 흘렸던 많은 이들이 '법에도 눈물이 있어야 한다'며 상고를 권해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2022년 3월 31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원심이 법리를 잘못 해석하지 않았다"며 징역 4년 형을 확정했다.
A는 초등학교 1년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아버지 B 씨(1965년생)와 단둘이 살아왔다.
B 씨는 아들을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B 씨는 직장에서 해고당하자 자신보다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 걱정이 앞섰다. A도 아버지의 사정을 눈치채고 다니던 대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입대 길을 택했다.
A는 120kg에 이르는 과체중, 집안 사정 등이 감안 돼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던 B 씨는 2020년 7월 어렵사리 자동차 부품회사에 재취업, 200만원가량의 적은 월급이었지만 아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재취업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던 2020년 9월 13일 뇌출혈(심부 뇌내출혈 및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119에 의해 대형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
119로부터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A는 '큰돈이 든다'는 수술을 주저없이 택하고 보호자란에 사인했다.
A는 수술을 택한 뒤 병원비, 간병비, 재활 비용을 대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치웠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아버지 병원비 마련을 위해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뚜렷한 기술이 없는데다 과체중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시급 6500원짜리' 편의점 야간 알바 정도로 그것도 주2일만 근무하는 자리였다. 밤을 새가면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에 쥐는 돈이 월 30만원이 조금 넘어 병원비는커녕 월세 30만원 내기도 빠듯했다.
몇 만원이라도 모으려면 A는 굶을 수 밖에 없었다.
A는 집주인, 막내 삼촌(1979년생)에게 손을 내밀어 받은 몇만 원으로 쿠팡에서 장아찌를 구입, 한 달간 반찬으로 삼는 등 허리를 졸라맸다.
삼촌에게 '쌀이 떨어졌다. 쌀 먹게 2만 원만 빌려달라"고 사정한 날도 있었다.
밀린 병원비 1500만원을 독촉받자 A는 삼촌에게 호소, 삼촌이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A는 2021년 2월 비용, 재활치료비가 조금 줄어드는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겼지만 역시 병원비를 내지 못했다.
형과 조카를 대신해 2000만 원에 이르는 입원비, 치료비 내던 삼촌은 2021년 봄 "더 이상 여력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A는 '조금만 더 치료하면 큰 차도를 보일 수 있다'는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그 당시 A가 주민센터, 사회복지기관을 찾아 도움을 호소했더라면 '생활비 지원'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등을 통해 최소한의 치료와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느냐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를 2층 월세방으로 옮겨온 A는 '콧줄을 이용해 유동식 공급' '대소변 치우기 '욕창 방지를 위해 2시간마다 자세 바꾸기' '마비된 팔다리를 주무르기' 등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버지 간병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아버지 병세가 나빠지자 A는 5월 2일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면서 편의점 사장에게 "15일 나오는 월급을 미리 받을 수 없냐"며 가불을 부탁했지만 사장은 "사정은 딱하지만 본사 규정에 따라 곤란하다 미안하다"고 했다.
당시 심정에 대해 A는 탐사보도 매체 셜록에 보낸 편지에서 "당장 기저귀와 소변줄 교체 등 나갈 돈은 많았는데 막막하고, 좌절감, 또 무능력한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컸다"고 캄캄했던 그 순간을 털어놓았다.
2021년 5월 1일 밤 아버지는 아들의 짐을 덜어야겠다고 결심, "내가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며 아사(餓死)를 택했다.
이 말을 들은 A는 울면서 방을 나온 뒤 5월 3일 잠깐 아버지 방에 들어갔을 뿐 방 밖에서 꼼짝하지 않고 5월 8일 저녁까지 5일을 지냈다.
어버이날인 5월 8일 오후 8시 무렵 A는 부패한 냄새가 나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아버지의 주검.
서둘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119에 연락한 A는 구급대원과 경찰이 올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현장을 파악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의 사연이 알려지자 사회는 들끓었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사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고 A를 돕겠다는 정치인들이 줄을 이었다.
A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이런 노력에도 '살인은 살인'이라며 징역 4년 형을 확정받은 A는 형기만료를 9개월여 남기고 지난 7월 30일 가석방, 대구의 친구 집에 머물고 있다.
buckba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