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로 2000대, 30대 아들 때려 죽게 한 엄마…그 절에선 무슨 일이?

"스님이 폭행" 아들이 외부 알리자 주지 "나가라" [사건 속 오늘]
성추행 뒤집어쓴 아들 매질…검찰 압수수색 후 주지도 극단선택

2020년 8월 28일 경북 청도의 한 사찰에서 60대 어머니가 휘두른 막대기에 2000여대를 맞고 숨진 30대 아들 권 모 씨.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4년 전 오늘 경북 청도의 한 사찰에서 60대 여성 A 씨가 주지 스님에게서 건네받은 대나무 막대기로 30대인 둘째 아들 권 모 씨를 2시간 30분 동안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A 씨는 무려 2167회의 폭행을 가한 후 한시간가량 아들을 방치한 뒤에야 119에 신고했고, 구조대원이 출동했을 때 권 씨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인은 연피하 조직 쇼크사였다. 온몸에 멍이 든 채 폭행으로 인한 쇼크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

권 씨의 친부는 아내가 사망한 아들을 누구보다 예뻐했다며 폭행의 원인으로 사찰을 지목했다. 그는 절에 들어간 지 70여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아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 아들이 쓴 자술서엔 성추행 자백 가득했지만…

권 씨는 공무원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고 어머니 A 씨가 공부를 시키기 위해 권 씨를 절에 데리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사찰에서 생활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며 "아들이 보살님들 방에 다니면서 자위하고 속옷에 정액을 묻혀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직접 쓴 자술서를 보여줬다. 권 씨는 자술서에 '200회의 성매매를 했다', '어머니께 성욕 해소를 시도했다' 등의 내용과 A 씨가 말한 그대로 보살들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권 씨가 성매매했다는 여관과 인근 주민들은 권 씨를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 권 씨의 지인들도 "절대 이럴 친구가 아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어이가 없다. 100% 누가 쓰라고 해서 받아적은 거다. 택배 상하차 알바하면서 공부하던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다", "제가 아는 그 형이라면 어머니가 매질하면 맞을 사람이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전문가들도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자술서의 진위를 의심했다.

권 씨는 사망하기 전날에도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자술서를 썼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같은 패턴으로 가족과 절연한 피해자 있었다

권 씨가 쓴 자술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억지로 써 내려가게 한 건 누구였을까.

그알 제작진은 권 씨가 숨진 사찰에서 권 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B 씨를 만나 사찰의 비밀에 대해 들었다.

아버지, 누나와 8년간 그곳에 다녔다는 B 씨는 늘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B 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신도들도 주지 스님에게 폭행당하는 걸 목격했고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B 씨가 권 씨처럼 성폭력 가해자로 몰린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주지 스님은 "누나 속옷으로 욕구 해소하지?", "네 누나한테 사정한 적 있지?"라며 B 씨를 몰아세웠다. B 씨가 부인하면 폭력을 썼다. B 씨의 누나와 아버지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으나 언제부터인가 B 씨가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며 같이 B 씨를 추궁했다.

당시 B 씨도 권 씨와 같은 거짓 자술서를 썼는데, 가족들이 "네가 한 일을 인정하면 원하는 대로 연을 끊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아버지가 쓰라는 대로 자술서를 썼다는 B 씨는 권 씨 역시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을 매질해 숨지게 한 친모 A 씨.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주지 스님에 맹목적이었던 母 "아들이 그렇게 했다고 믿고 싶다"

B 씨의 아버지와 누나는 주지 스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끝까지 B 씨를 성추행범으로 몰았다.

권 씨의 어머니 A 씨도 마찬가지였다. A 씨는 "아들이 진짜 자술서 내용에 있는 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렇게 믿고 싶다"고 답했다.

권 씨와 B 씨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증거는 이들이 억지로 쓴 자술서 말고는 없으나 그들의 가족은 주지 스님의 말을 더 신뢰했다.

판결문에 적힌 공소 사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사이비 승려, 검찰 압수수색 직후 사망

해당 사찰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이 아닌 유사 조계종 이름을 단 어느 종단 소속의 사찰이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권 씨는 사찰에 들어간 이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상하다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영적인 치료 등을 목적으로 폭행이 자행됐고, 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종교의식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권 씨는 '주지 스님에게 폭행당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어머니 A 씨에게 들켰는데, 주지 스님은 권 씨가 사찰의 비밀을 외부에 알릴까 봐 걱정돼 A 씨에게 아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이에 A 씨가 아들을 훈육하겠다며 2시간 넘게 매질했던 것이었다.

검찰 압수수색 직후 주지 스님은 사찰 운영에 문제가 없었음을 증명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사망해 버렸다. 주지 스님의 아내는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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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상해치사 혐의만 인정돼 7년 선고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아들이 사찰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훈육할 목적으로 때렸으며, 살해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해치사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가 150분에 걸쳐 2200회 정도의 폭행을 가했기는 하나, 주된 폭행 및 상해 부위가 등과 양팔, 엉덩이로 치명적인 부위가 아니다"라며 "체벌의 강도와 방법을 보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의 판단을 유지했고, 이후 대법원도 상해치사 부분만을 유죄로 본 원심의 판단에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