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할아버지 앞에서 할머니 살해한 10대 손자 형제
이혼 부모 대신 키워 준 할머니 잔소리 많다며 범행[사건속 오늘]
"비명 시끄러우니 창문 닫자"…할아버지도 죽이려 하자 동생 만류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1년 10월 28일 고교 3년생 A 군(18)과 1학년 B 군(16)은 포승줄에 묶인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판사 앞에 섰다.
이날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일)는 존속살해 혐의, 존속살해 방조 혐의로 각각 기소된 A, B에 대한 1차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에서 동생 B는 그해 8월 30일 새벽 대구시 서구 비산동의 자기 집에서 할머니(77)를 살해할 당시 형 A가 "칼로 찌를 때 비명이 새어 나갈 수 있으니 창문을 닫아라"는 말에 따라 창문을 닫았다며 고개 숙였다.
다만 형이 "이제 할아버지도 할머니 따라가야죠"라며 할아버지(93)마저 찌르려 할 때 "할아버지는 죽이지 말자"며 형을 만류했다고 진술했다.
A는 별다른 반응 없이 동생 진술을 듣고만 있었다.
A와 B는 일요일이던 8월 29일 오후 할머니로부터 "왜 너희는 급식카드를 가지고 편의점에 가서 먹을 것도 사 오지 않느냐"며 잔소리를 들었다.
2012년 아들 부부가 이혼한 뒤 '기초생활수급비'와 딸이 주는 용돈으로 손자 형제를 돌봐왔던 할머니는 손자들이 휴대전화 게임에 매달리자 "게임만큼 공부를 했으면 장원 급제했겠다"고 자주 야단쳤다.
또 할머니는 "20살이 되면 집에서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할머니는 열심히 공부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라며 형제들을 독려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A는 "할머니 말에 '어디서 살아가지'라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와중에 A는 할머니가 창피하게 급식카드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오라고 한다며 그날 오후 10시 26분쯤 동생 B에게 "할머니를 죽이자"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A는 인터넷에서 '사람 한 번에 죽이는 법'을 검색한 뒤 8월 30일 오전 0시 10분쯤 샤워를 마친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흉기를 들이댔다.
할머니가 "그래 찔러봐라"면서 휴대전화를 잡으려 하자 A는 "소리가 새어 나가니 창문을 닫으라"고 동생에게 시킨 뒤 무려 61차례에 걸쳐 흉기를 휘둘렀다.
하반신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힘 없는 소리로 "안 돼"라고 외쳤지만 손자들을 말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내가 잘못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자"고 애원했다.
이 모습에 A는 "할아버지도 할머니 따라가야죠"라며 흉기를 들고 할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이때 B가 "할아버지는 죽이지 말자"고 만류하며 등을 떠밀었다.
손자들이 방에서 나가자 할아버지는 112에 "손자가 흉기로 아내를 여러 번 찔렀다. 아내 옆에 못 가게 한다"며 신고했다.
할머니를 살해 한 A는 동생과 함께 거실에 낭자한 할머니 핏자국을 닦은 뒤 향수를 뿌렸다.
이어 '피 냄새가 난다'며 샤워까지 했다.
그사이 도착한 경찰과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할머니는 다발성 장기 손상, 과다출혈로 30일 새벽 1시 25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검찰은 존속살인 혐의를 받는 A에게 무기징역형, 방조 혐의의 B에겐 장기 12년, 단기 6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인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일)는 2022년 1월 20일 "심리분석 결과를 보면 우발적 범행 성격이 더 큰 점, 범행을 인정한 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한 점 등을 볼 때 충분히 교화개선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A에게 장기 12년, 단기 7년형을 선고했다.
B에 대해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폭력 및 정신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선고 뒤 김정일 부장판사는 이들 형제에게 "이 책을 꼭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 편지도 함께 넣어 뒀으니 꼭 한번 읽어보라"며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을 각각 건넸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어른들 속에서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이다.
B는 항소를 포기했지만 검찰과 A가 나란히 항소, 동생 B도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2020년 4월 11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형 A는 "동생은 아무 잘못 없으니 선처해 달라"고 청했다.
동생 B는 "형에게 형량을 높이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2012년 자식들을 시부모에게 맡긴 뒤 떠났던 친모는 증인신문에서 “지금 둘째(B군)와 같이 살고 있으며 큰아들과도 서신, 면회 등을 통해 연락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선처해 달라"고 빌었다.
아울러 "시부모에게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며 용서를 구했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A에게 무기징역, B에게 장지 12년-단기 6년형을 구형했지만 2022년 5월 12일 대구고법 형사 1부(재판장 진성철)는 1심과 같이 A에게 징역 장기 12년-단기 7년형, B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신들을 정성으로 키워 준 할머니를 살해한 범죄로 죄질이 극히 나쁘지만 초범이고 범행을 머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고 원심판결이 합리적인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1심 형량을 유지한 이유를 밝혔다.
형이 확정돼 옥살이 중인 A는 추가로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2028년 8월 31일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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