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살해된 포장마차 여주인…'집성촌'에 범인 있었다

몸 속 자창 56개 잔인…DNA로 특정 성 파악[사건속 오늘]
집성촌 뒤져 29일 만에 체포…합의 고려 '징역 6년' 선고

(KBS 2TV '스모킹 건'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08년 8월 23일, 경북 김천의 한 실내 포장마차 여주인을 살해한 범인이 범행 한 달 만에 검거됐다. 용의자는 47세 남성 A 씨였다. 2005년 베트남 여성과 재혼한 그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중학생 아들과 재혼 후 낳은 8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A 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재혼한 부인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가족 문제로 평소 술을 자주 마시던 와중에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

명백한 증거에도 범행을 부인하던 그는 "피해자의 술집에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날 가게 주인이 국제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바람에 분노를 참지 못해 살인했다"고 자백했다.

흉기와 깨진 맥주병을 휘둘러 여주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A 씨는 징역 6년 형을 받았다. 초범이고 유족과 합의를 봤던 점, 직장 동료들이 낸 탄원서가 감형의 이유였다.

◇지병 앓던 남편 대신 쪽잠 자며 24시간 일했던 포차 여주인 사망

피해자인 50대 여주인 B 씨는 지병이 있는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게를 24시간 열어두고 영업했다. 손님이 없을 때 잠깐 집에 가서 식구들을 돌보고 쪽잠을 자며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초 신고는 7월 26일 오전 7시쯤 접수됐다. 신고자는 "사람이 죽은 것 같다. 사방이 피로 난리인데 빨리 와달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에 형사팀뿐만 아니라 과학수사대까지 함께 출동했다.

(KBS 2TV '스모킹 건' 갈무리)

현장 상황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의자와 테이블이 마구 흐트러져 있고 술병과 술잔이 깨져 있었다. 주방 쪽 싱크대 수도꼭지는 최대치로 틀어져 있었고 개수대에서 흘러넘친 물은 바닥까지 흥건하게 고여 혈흔과 뒤섞여 있었다.

앉은 채 뒤로 쓰러져 있던 B 씨의 몸에는 56개에 달하는 자창이 발견됐다. 흉기와 깨진 맥주병으로 수십 차례 공격당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 일부가 노출된 상태였다. 콧구멍에는 담뱃불로 인한 화상 자국이 발견됐으며 침과 물이 뿌려진 흔적도 있었다.

◇"검은색 작업복, 빳빳한 직모 특징인 40대"…목격자 진술 확보

경찰은 현장 감식 및 피해자 부검을 통해 유력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의 DNA를 확보한 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가게 주변을 탐문했지만 주변 CCTV가 전무했고, 외진 골목에 있던 탓에 목격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한에 의한 범죄로 추정하고 주변인도 조사했지만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은 없었다.

수사팀은 시신이 발견된 오전 7시를 전후로 인근 기지국 통신 내역 3만 건을 확보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B 씨가 매일 작성해 오던 장부가 있었다. 손님 이름, 특징, 판매 메뉴, 외상값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당일 기록은 없었지만 장부에 적힌 이름과 통신 내역을 일일이 대조해 단골손님을 추려냈고, 당일 포장마차에 방문했던 손님으로부터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손님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가 알리바이가 금방 확인돼 용의선상에서 배제된 인물 C 씨로, 사건 당일 밤 12시 이후까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는데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다른 손님 1명이 본인이 귀가할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사장 D 씨도 비슷한 남성을 봤다고 말했다. 새벽 2시 45분쯤 술 취한 손님을 배웅하던 중 B 씨의 가게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 걸 봤고,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하며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늦은 시간까지 포장마차에 남아 있던 손님은 왜소한 체격에 검은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짧지만 직모가 특징인 40대 남성이었다.

경찰은 작업복을 입었다는 목격자 진술에 따라 인력시장의 인부 명단을 확인하고 유사 사건 피의자 DNA와 대조했다. 그러나 일치하는 인물은 없었다.

◇유력 용의자 DNA 분석, '특이 성 씨'로 판단…인근엔 집성촌도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는 사이 국과수는 신생 수사 기법을 제안했다. 부계로만 유전되는 Y염색체를 이용해 범인의 성 씨를 확인하는 것인데, 특정 성 씨뿐만 아니라 본관과 항렬까지 특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일선 형사들은 신뢰할 수 없었다. 양자나 혼외자의 경우 확인이 불가하다는 변수도 있었지만, 범인을 검거하겠다는 의지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국과수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성 씨는 특이성이었다. 2008년 통계청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2만 8675명에 불과했다. 수사팀은 국과수가 제안한 성 씨와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하는 특이성을 가진 인물을 특정했다.

(KBS 2TV '스모킹 건' 갈무리)

기지국을 통해 추려낸 인물 중에서 일치하는 성을 가진 사람은 단 50명뿐이었다. 공교롭게도 사건 현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해당 성 씨의 집성촌이 존재했다.

경찰은 해당 성 씨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범인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물 2명을 우선 소환해 DNA를 채취해 분석했고 1명과 범인의 DNA가 근접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체포된 용의자 "분 풀리지 않아 침 뱉고 담뱃불로 지졌다"

경찰은 기지국 통신 명단과 일치하는 16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했다. 한 형사가 DNA를 채취하러 가는 길에 목격자가 진술했던 인상착의와 동일한 인물과 마주했다.

형사는 그에게 "특이성을 가진 DNA를 채취하려고 한다. 협조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남성은 "이거 하면 범인도 잡을 수 있냐"고 떠보듯 물었다.

형사는 그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긴급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와 일치했고 사건 29일 만에 검거에 성공했다.

체포된 A 씨는 자신은 절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진술 자체를 거부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DNA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부인했다. 알고 보니 DNA에 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경찰은 정황과 DNA 증거로 A 씨를 재차 압박했고 결국 자백을 끌어냈다. 당시 A 씨는 "피해자를 흉기로 찌르고 손을 씻으러 싱크대에 갔다가 대야가 있어서 홧김에 물을 뿌렸고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아 피해자에게 침을 뱉었고 담뱃불을 비벼서 껐다"고 진술해 충격을 안겼다.

r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