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흡연자 너도나도 '길거리흡연'…도심 골목 '너구리굴'

17일부터 금연 구역 확대로 대형 빌딩 흡연장 상당수 폐쇄
간접 흡연 무방비 노출…비흡연자도 '흡연 부스' 확대 공감

19일 서울 시내 거리에서 한 시민이 흡연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 경계 30m 안에서 흡연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원래 회사 흡연장 가서 피웠는데. 이제 여기서 피우고 들어가려고요."

19일 낮 12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일대 빌딩과 빌딩 사이 골목길에서 만난 직장인 서 모 씨(32)는 최근 회사 흡연장이 폐쇄된 이곳에서 흡연하고 있었다.

이 골목길 곳곳엔 '금연구역', '식당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와 힘듭니다',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세요' 등 흡연 구역이 아님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었지만 30명가량이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흘러나온 냄새에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문밖을 나서던 한 시민은 얼굴을 찌푸리며 골목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기도 했다.

지난 17일부터 금연 구역 확대로 오피스빌딩 흡연구역이 폐쇄되면서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집 등 교육시설 경계선으로부터 30m 안쪽은 모두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입주해 있는 대형 빌딩들에는 직장 어린이집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대로 인근 흡연장은 대부분 폐쇄됐다.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 금연 구역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시설 경계선 10m에서 30m 이내로 확대됐다. 또 초중고교 시설 경계선은 30m 이내로 신설된다. 해당 구역에서 흡연 시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난주까지 매일 점심시간마다 붐비던 종각역 인근 한 빌딩 옆 흡연장은 사람 한 명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금연구역 지정 안내문'이 붙어있는 채로 세워져 있던 푯말이 입구에 놓여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19일 서울 시내 골목길에서 한 시민이 흡연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 경계 30m 안에서 흡연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2024.8.19/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이처럼 기존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들이 주변 골목길, 빌딩 옆 거리 등으로 흩어지며 간접흡연에 노출된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흡연자들도 매일 이용하던 흡연장이 사라져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 씨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하루아침에 가까운 흡연장이 사라져 어디서 담배를 피워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근처 길 한쪽에서 흡연하고 들어가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광화문 일대 또 다른 빌딩 앞 대로변에서 만난 40대 남성 흡연자는 "여기도 원래 금연 구역인데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치가 보이지만 근처에 흡연장이 없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흡연 부스가 가까운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피우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누가 흡연장을 찾아 멀리까지 다녀올까 싶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은 흡연자들을 지나치며 담배 연기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기존 흡연장을 대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나타냈다.

손에 들고 있던 전단으로 코를 감싸며 이곳을 지나던 신 모 씨(29)는 "여기 따릉이 거치대도 있고 누가 봐도 흡연장이 아닌 일반 보도인데 간접흡연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서도 "이분들도 직장인인데 멀리 가서 흡연할 수는 없으니,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서라도 흡연 부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거리 앞 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 모 씨(49)는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흡연 부스라도 설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잠깐 담배를 피우러 10분, 15분씩 걸어갔다 돌아올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