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막 산 네 책임"…낙태죄 사라져도 여성에만 드리운 굴레

'36주 낙태' 유튜버 사건 이후 우려스러운 현상
'낙태죄 폐지' 시대 흐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

ⓒ News1 DB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36주 낙태' 유튜버 사건 이후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에게 쏠리는 비난 여론이 도를 넘었다. 지난 2019년 낙태죄가 폐지됐는데도 임신에 따른 책임의 굴레를 여성에만 드리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36주 낙태 유튜버' 관련 기사의 댓글 공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신했거나 중단한 여성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살인 혐의로 입건된 20대 유튜버 A 씨와 사실상 아무 관련 없는 일반 여성들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 상당수다.

요컨대 "여자들은 왜 그런 남친(남자친구)을 만나냐" "저질러놓고 책임도 안 지려고 한다" "막 산 책임이다" "아이 가질 생각 마라" "도덕을 우습게 보는 여자들" 등이다.

A 씨는 물론 임신중지 수술을 한 병원장까지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임신 중단에 관한 관심이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여성 혐오 정서가 재현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형법상 낙태죄를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낙태죄 규정이 효력을 상실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상당수 시민의 인식이 낙태죄가 폐지된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임신의 원인이 된 상대 남성과 관련한 비판을 찾기 어려워 시대착오적인 성별 차별이 남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임신중지를 범죄와 연관시켜 A 씨를 질타하는 여론에는 불이 붙었지만 임신에 관여한 책임이 있는 남성은 법적 책임과 비난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 남성은 A 씨의 임신중지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6주 낙태' 유튜브 영상에서도 남성 파트너는 직접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았다. A 씨가 임신중지 수술 병원을 알아볼 때도 남성이 아닌 '지인'에게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단체들은 여성과 남성 모두 임신에 관여한 당사자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내용이 정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임신중지와 관련해 법을 개정하는 동시에 남성들에 대한 공동 책임이나 피임, 성교육 등에 관한 지원 방안을 정부가 종합 계획 차원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여성과 남성이 의사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보건당국이 하루빨리 임신중지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의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영 대표는 "앞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책임의 주체로서 결정할 수 있게 상담 체계를 갖추는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했다.

2022년 4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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