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공간 없는 '고층 빌딩' 지하 5·6층 전기차 충전소 괜찮나

오피스 빌딩·대형 쇼핑몰, 지하 전기차 충전소 지상 이전 불가능
전문가 "스프링클러 임의 조작 금지, 소화 용수 20분 이상 의무화"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12일 대전 동구청 지하주차장에서 관계자가 전기자동차 충전을 금지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조유리 김민재 기자 =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대형 오피스 빌딩과 복합쇼핑몰 등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는 전기차 충전소를 이전할 지상 공간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지하 전기차 충전소 위치를 소방대원들이 접근하기 쉬운 차량 출입구 쪽으로 배치하거나 불이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화벽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전기차 화재의 경우 오랜 시간 지속되는 만큼 20분인 스프링클러 소화용수 기준도 40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 도심 주요 빌딩, 지하 주차장 층마다 전기차 충전소

13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잠실 롯데월드몰, 여의도 더현대서울, 종각 그랑서울 빌딩 등 많은 인원이 모이는 복합쇼핑몰과 초고층 빌딩은 지하 주차장 곳곳에 전기차 충전 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자 대형 쇼핑몰인 애비뉴엘 잠실과 롯데월드몰, 롯데면세점이 모두 들어서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는 지하 4층까지 40여칸 규모의 전기차 충전 구역이 설치돼 있었다.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지하 6층까지 전기차 충전 구역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하 6층의 경우 전기차 충전 구역 앞 평행 주차(일자 주차) 칸이 있어 더 많은 차량이 밀집된 구조였다.

지상 24층, 지하 7층 총 31층 규모의 서울 도심 대형 오피스 빌딩인 중구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도 지하 5층에 20여칸 규모의 전기차 충전 구역을 운영 중이다.

문제는 이들 전기차 충전 구역이 화재 진압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소방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대원이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차량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전기차 충전 구역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열폭주 현상이 심해지기 전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는 열폭주가 일어나서 발생하는 물질도 많고 연기도 많이 발생해 소방대가 직접 지하로 진입하기 힘들다"며 "실외에서 물을 뿌리면서 불을 끄더라도 40분 이상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런 건물들은 화재를 진압할 때 건물 내부 소화설비로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완벽하게 진압이 안 되니 소방대가 투입돼야 한다. 그런데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시설이면 차량을 외부에 두고 호스만 펼쳐 내려갈 경우 화재 구역에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면 전기차 충전 구역은 가급적 지상과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게 안전한 셈이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전기차 충전 구역을 지상과 가까운 층에 몰아놓을 경우 일반차량 차주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주차장 약도. 지하 4층까지 전기차 충전구역(원 표시된 부분)이 운영되고 있다.ⓒ 뉴스1

◇ 소방 전문가 "스프링클러 작동·20분 이상 소화 용수 강제 필요"

대형 빌딩들은 지상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충전시설을 지하 주차장에 설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스프링클러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는 지상처럼 초기 소화 자동 장치가 아닌 연소 확대 방지용으로 설치된다"며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도 이런 연소 확대 방지용 스프링클러를 잠가서 피해가 컸는데 스프링클러가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지난 4월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실제로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때 스프링클러만 작동해도 불이 번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팩 화재 발생 실험을 진행한 결과 차량 상부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불이 난 차량은 모두 타더라도 인접 차량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방화벽을 설치하고 소화 용수 등 설비를 강화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 교수는 "소방시설을 신축하는 건물은 전기차 구역에 3칸마다 방화벽을 쌓도록 해야 한다"며 "보통 20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소화 용수도 훨씬 긴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갖추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전기차 충전 기반 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전기차 충전 구역은 지하 3층까지만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안이 마련되더라도 기존 건물까지 소급 적용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