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전기차 포비아'…"전기차 아닌 스프링클러·초기진압이 관건"
지하 주차장 출입 금지 등 전국서 '전기차 공포증'…지자체 차원서 지하 주차 제한도
전문가들, 스프링클러 주요 원인으로 지적…소방청, 관련 화재안전 기준 강화 예정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인천 청라국제도시 지하주차장에서 1일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전국에 전기차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소방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피해가 커진 원인이 전기차보다는 스프링클러 작동 등 화재 대응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1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청라 전기차 화재로 전국에 '전기차 포비아(두려움증)'가 확산하고 있다.
광주 동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7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지하주차장에 설치하려던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도 입주자대표회의 결과 지하 주차장의 전기차 출입을 금지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아예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경남도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을 지상 또는 출입구 근처에 설치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경북도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전용주차구역의 화재예방 및 안전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화재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포감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화재 당시 발화 차량이 내연차였어도 피해 규모가 비슷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화재의 경우 원인이 어떻든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하에서 화재가 났을 때 스프링클러 등 '초기 진압'이 되지 않으면 전기차든 내연차든 똑같이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이번 화재는 전기차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화재라기보다 지하에서 소방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스프링클러 등 초기 진압이 화재 진압의 기본이며 그런 기본을 다지는 일 없이 전기차 전용 첨단 장비만 늘리는 것은 기초도 안 된 상태에서 고급 수준의 문제를 풀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백동현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내연차든 전기차든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기차 시설에 대해서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4월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실제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때 스프링클러만 작동해도 불이 번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기관이 발표한 '지하 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연구진이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팩 화재 발생 실험을 진행한 결과 차량 상부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불이 난 차량은 모두 타더라도 인접 차량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여기에 건물 내 하부 스프링클러도 작동시키자 전기차의 열폭주 현상도 50%가량 경감됐다.
이에 소방청도 12일 범정부 대책회의에서 전기차 관련 시설에 스프링클러를 더욱 촘촘히 설치하고 방수 압력도 높이도록 하는 화재 안전 기준 강화 방안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스프링클러를 촘촘히 설치할 경우 배터리 자체 화재는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인근 차량으로의 연소 확대는 충분히 예방 가능할 것으로 소방청과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alicemun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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