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미프진에 여성들 인생 거는데…정부는 "법령 없어 못 막는다"
[1㎝ 약 삼킨 여자들]③차단 시스템에 구멍…불법 거래 사이트·SNS '횡행'
'사이트 차단' 방통위 법령 좌초 위기…'위원장 탄핵' 혼돈에 무기한 중단
- 장성희 기자, 서상혁 기자, 김예원 기자,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장성희 서상혁 김예원 홍유진 기자 =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 불법 거래가 온라인 사이트·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횡행하는데도 정부의 관리·감독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흔히 '꾼'이라 불리는 온라인 판매업자들의 미프진은 심각한 부작용 위험이 있지만 사각지대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담당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미프진 불법 판매 사이트·SNS를 차단하는 내용의 법령을 마련하려던 중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좌초 위기에 놓인 상태다.
◇방심위 차단 결정 1년 3개월 지났지만 버젓이 영업
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주요 미프진 거래 창구인 A 사이트에는 하루 10여 건의 구매 신청 글이 올라오고 있다. A 사이트만큼 유명한 B 사이트에는 올해 미프진 후기 글이 50건가량 게시돼 있다. 한 달에 6건꼴이다.
A 사이트와 B 사이트의 판매 행위 모두 불법이다. 국내의 모든 미프진 판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해 약사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다. A·B 사이트 메인 화면에 나온 것처럼 미프진을 광고·상담할 경우에도 약사법에 저촉돼 재판에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뉴스1>은 기획 취재 과정에서 A 사이트와 B 사이트 두 곳의 불법 판매 영업을 파악했다. 이 사이트들이 지난해 5월 이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접속 차단 대상이 된 점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영업을 계속해 올해 식약처가 A·B 사이트의 차단을 방심위에 요청했다.
8일 오전 0시 30분 현재도, A·B 사이트는 모두 불법 영업 중이다. "식약처 요청에도 두 사이트를 왜 차단하지 않았느냐"라는 <뉴스1>의 질의에 방심위 관계자는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서비스에 기반한 사이트라 차단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5월 해당 사이트에 대해 '약사법' 위반으로 접속 차단을 결정했으나 해당 사이트가 해외 CDN 서비스를 사용해 차단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한 채로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둔 CDN 서비스를 차단하는 내용의 시행령이 아직 입법 예고되지 않아 조치가 힘들다는 의미다.
◇표류하는 방통위…음지에서 훨훨 나는 미프진
지난 1월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기는 했다. CDN 기반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방통위는 구체적인 방식과 절차를 담은 관련 시행령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령이 방통위 의결을 앞두고 대내외 악재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과반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지난해부터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잇달아 추진하면서 '언론 장악을 막겠다'는 탄핵의 명분과 무관하게 시행령 입법예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진숙 현 방송통신위원장은 민주당의 탄핵안 발의로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위원장의 직무는 헌재의 결정 전까지 정지된다. 여기에 국회 몫으로 부여된 3명의 상임위원도 공석이다. 상임위원 2인 이상의 의결 정족수를 요구하는 5인 합의제 기구 방통위의 의사 결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음지에서는 미프진이 훨훨 날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임신중절의약품 불법 판매·알선 게시물 적발 건은 491건이었다. 미프진 판매 적발 건은 2019년부터 감소하다 2021년부터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단속·차단만으로 한계…"미프진 합법화 논의해야"
무엇보다 온라인 사이트·SNS에서 거래되는 미프진이 가짜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했던 J 씨는 <뉴스1>의 취재에 "국내에서 유통되는 미프진의 정품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고 했다. 온라인 판매업체마다 제시하는 권장 복용량과 주의 사항도 다르다. 구매 여성들은 인생을 걸고 미프진을 복용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정부의 불법 사이트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프진의 합법화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텔레그램 등 SNS에서 확산하는 마약 거래 범죄가 검경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근절되지 않는 것처럼 미프진 사이트 단속·차단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난 2021년 낙태죄 폐지로 임신 중단이 더는 '범죄'가 아닌 만큼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음지에 있는 미프진을 양지로 끌어 올려 검증된 약물의 유통만 허용하자는 의견도 많다. 임신 중단과 관련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부작용 우려가 큰 불법 거래 약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려면 정부와 국회가 미프진 합법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프진을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미프진 도입을 미룰수록 암시장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위험성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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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료계는 여전히 임신 중지 수술에 소극적이며, 일부는 진료조차 거부한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체불명의 판매자를 만나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을 구매한다. 가짜 약인지, 진짜 약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지름 1㎝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꾸역꾸역 삼킨다. 정부와 국회는 뒷짐 진 채 여성들의 '목숨 건 임신 중단'을 관망 중이다. 뉴스1은 지난 2개월간 전국 산부인과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고, 전국 곳곳에 있는 미프진 판매자들과 구매자 여성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 임신 중지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