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지 않으려 채권자 살해…'강도 살인'일까 '단순 살인'일까
채권자 숨져도 빚 상속, 이득 없어 '살인죄' 판결[사건속 오늘]
술 먹은 뒤 술값 갚지 않으려 살인…재산상 이득 '강도 살인죄'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빚쟁이만 없어지면 빚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2010년 10월 6일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이와 관련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강도살인·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당시 41세)와 그의 형 B 씨(48세)에 대해 '강도 살인'이 아닌 '살인죄'를 적용한 2심 결정이 옳다며 주범 A 씨에 대해선 무기징역, 범행 가담 정도가 낮은 B 씨에겐 징역 20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살인죄는 기본적으로 형량이 징역 5년 이상인 반면 강도 살인죄는 최하 징역 10년형에 처하는 등 처벌이 훨씬 엄하다.
대법원 2부는 "강도살인이 인정되려면 재산상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강도살인으로 볼 수 없는 이유로 △ 채무 존재가 명백한 점 △ 피해자 즉 채권자의 상속인이 있는 점 △ 상속인이 A 씨에게 행사할 채권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방법이 있는 점 △ 피해자가 숨져도 채권이 그대로 남지 A 씨에게 옮겨가지 않는 점 △ 따라서 A 씨가 재산상 이득을 취할 수 없는 점을 들었다.
채권자가 숨졌어도 A 씨가 갚아야 할 빚은 그대로 남는 등 A 씨가 금전적 이득을 보지 않았기에 강도살인이 아닌 살인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A는 2008년 5월부터 2009년 5월에 걸쳐 부동산을 담보로 16억 6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을 빌렸다.
이자 갚기에도 급급해지자 A는 2009년 5월 형과 짜고 "돈을 갚겠다"며 피해자를 유인, 둔기로 살해한 뒤 야산에 암매장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1심은 강도살인죄를 적용해 A, B에게 나란히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강도살인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범행을 계획하고 주도한 A에겐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B는 단순히 실행으로 옮긴 점 등을 참작, 징역 20년형으로 감형했다.
만약 술을 먹다가 술값을 내지 않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면 강도살인일까, 단순 살인일까.
1984년 가을 C는 D가 경영하는 소주방에서 3만5000원어치 술과 안주를 먹은 뒤 술값 지불을 요구받자 D를 살해했다.
이에 대해 1985년 10월 22일 대법원은 "강도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 술값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C와 D 두사람만 아는 점 △ 따라서 D의 상속인이 있더라고 C의 채무 사실을 알 수 없는 점 △ C는 D를 살해하면서 재산상 이득을 취한 점, 즉 빚을 갚지 않아도 된 점을 들어 '강도살인이 맞다'고 했다.
2004년 6월 24일 대법원은 채권자를 살해한 채무자 E에 대해 강도살인이 아닌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E는 빚 독촉에 시달리자 피해자를 찾아가 "얼마간 말미를 더 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하자 살해했다.
검찰은 E가 차용증을 쓰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강도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법원은 "강도살인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재산상 이득이 E에게 이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 피해자에게 상속인이 있는 점 △ 차용증을 쓰지 않았지만 피해자의 부인이 'E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남편의 말을 들어 받을 빚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점 △ 살인은 일시적으로 빚 독촉에서 벗어난 것일 뿐 결국 빚이 남아 있는 점 등을 들어 강도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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