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모녀 성폭행 사건, 담임의 절규

7가구 동네 남성들, 지적장애 알고 '몹쓸 짓' 지속[사건속 오늘]
경찰 교육청 청와대 여성회 등에 호소했지만 대부분 외면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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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

'제2의 나영이 사건'이 18년 전 경북 포항에서 발생했다. 지적장애를 앓는 여자아이가 2년 동안 동네 주민들에게 성폭행당했다. 당시 허술한 사회안전망과 무관심에 이 사건을 공론화하던 피해자의 담임 교사는 "성폭행당한 제자를 돕다 지쳤다"고 할 정도였다.

◇"성폭행인지 몰랐다" 지적장애 모녀에 손 뻗은 악마들

마을 주민이라고는 일곱 가구가 전부인 경북 포항시 외곽의 한 오지 마을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모녀가 끔찍한 범죄에 노출됐다.

어머니 A 씨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탓에 받은 '벌'이었다고. A 씨는 당시 그게 성폭행인지 모를 정도로 무지했고, 주변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A 씨가 결혼 후 딸 은지 양을 낳고,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 은지 양이 범죄의 표적이 됐다. 2006년 당시 11세였던 은지 양은 동네에서 아저씨와 오빠로 불리던 남자들로부터 2년간 몹쓸 짓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성폭행 사실을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은지 양을 협박하며 폐가와 집, 시내 여관 등에서 성폭행했다.

결국 은지 양은 "오빠들, 아저씨들이 날 너무 괴롭혀서 아파서 못 참겠다"고 피해를 털어놨다. 그렇게 은지 양의 성폭행 피해가 처음 알려진 건 2008년 1월 30일이었다. 인근에 사는 숙모가 검찰청에서 운영하는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하지만 은지 양이 병원에 가서 진료받은 건 신고한 지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당시 센터는 "지금 당장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며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담임 선생님 김 모 씨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성폭행을 수차례에 걸쳐 당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 씨가 학교와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사건이 처리되길 기다렸으나, 학교 측은 "도 교육청에서 함구령이 내려왔으니 입 다물어라. 이게 계속 소문 나면 김 선생님부터 다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제가 다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않겠느냐"며 경찰의 수사를 믿었다. 그러나 경찰 역시 사건을 최초로 신고하고 제일 잘 알고 있는 숙모는 조사하지 않고 번호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사건이 접수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참고인 조사로 김 씨를 불렀다.

이후 은지 모녀의 사건은 2008년 6월 KBS '추적 60분'을 통해 공개됐다. 방송을 통해 40대 남성 버스 기사의 만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평소 A 씨를 겁탈해 왔던 버스 기사는 A 씨를 성폭행한 뒤 "재미없다"며 A 씨가 보는 앞에서 은지 양을 성폭행했다고. A 씨가 사정해 가면서 남성을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지 양을 성폭행했다.

참다못한 김 씨는 같은 해 7월 30일, 은지 모녀 사건을 인터넷에 올려 법적, 제도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아울러 은지 사건을 알고도 직무 태만한 공무원과 복지기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듣지 않고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김 씨는 쓴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발 벗고 나선 담임 교사 "전자발찌라도 채우면 다행" 울분

약 1년 뒤인 2009년 9월 30일, 김 씨는 다시 온라인에 "나영이를 보고…성폭행당한 제자 돕다 지쳐 있는 초등 교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2008년 초부터 성폭행당한 반 아이를 돕다가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무관심에 절망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도 꺾여간다"며 "오늘도 친부에게 10세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하는 여중생을 만나고 오면서 도대체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하고 버텨야 하는지 심한 회의가 밀려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성폭행당한 우리 반 아이를 보호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다 했다"며 "여성회, 아동보호센터, 경찰서, 각종 성 상담소, 해바라기센터, 전교조, 장애인 부모 연대 등 심지어 창원에서 열린 세계 인권대회에 가서 성범죄에 중요 사명을 띤 여성 단체들도 만나보고 청와대에 민원도 올리고 방송까지 나왔으나 해결이 안 되더라"라고 토로했다.

또 김 씨는 "법적 신고 의무자로서 역할을 한 제게 교육청이나 학교는 '문제 교사'라고 낙인찍었다. 교권을 침해당한 제가 호소해도 전교조는 구경만 한다"며 "대구의 안전한 쉼터에 아이를 맡기고 도와줬다는 사실에 위로를 삼고 견뎠는데 아동보호기관에서 상의도 없이 아이를 다시 성폭행당한 지역으로 데려오더라"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 경험으로 보면 이번 조두순 사건은 불행 중 다행으로 증거가 남아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기에 12년 형이라도 받은 거다. 전자발찌라도 채울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범인을 잡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고 바닷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처럼 많은 성범죄 사건이 피해자만 울리고 없던 일로 사라지는 여러 사례를 봤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김 씨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데 왜 우리는 늘 이렇게 말이 안 되고 기본 생존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지금 고치지 않으면 부메랑이 돼 훨씬 무섭게 돌아올 거다. 많은 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후 김 씨는 10월 5일 다음 '아고라'에 '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다. 서명 목표 인원은 1만 5000명이었으나, 1만 4300여 명이 서명하면서 실패로 마감됐으나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은지 모녀 사건이 알려졌다. 당시 누리꾼들은 '은지 사건'이라고 부르며 진상 조사 촉구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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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동시 성폭행한 버스기사만 구속…경찰 "은지 상처 덧난다"

한편 관할 경찰은 2008년 이 사건을 신고받고 수사에 들어가 모녀를 동시에 성폭행한 버스 기사 1명만 구속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5~6명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대면 조사 등을 실시했으나, 성폭행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상황을 토대로 용의자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으나 정작 피해자의 인지능력 부족으로 가해자를 식별해 내지 못하는 데다 당사자들도 부인으로 일관해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재조명되자, 담당 경찰관은 "은지가 현재 모 보호센터에서 보호받으며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그때 일은 모두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다시 거론하는 건 어린 마음에 상처만 덧나게 할 뿐, 도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은 당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항변하며 피해자가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지만, 당장은 아이를 보호하고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