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3자녀 있는데, 계속 임신…갓 낳은 아이 2명 살해
형편 어려워 키울 수 없다 판단, 시신 냉동실 보관[사건속 오늘]
남편 피임 협조 안 해, 재판장 이례적 꾸중…구치소서 넷째 출산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년 전인 2023년 9월 11일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황인성) 심리로 열린 30대 여성 A 씨의 2차 공판에서 변호인은 증인을 향해 "너무 무책임해 화가 난다"고 했다.
이 말에 증인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판사와 검사는 이 모습을 말없이 쳐다봤다.
증인석에 앉은 이는 살인 및 시체은닉 혐의 등으로 기소된 A 씨의 남편 B 씨.
변호인이 너무 기가 막혀 화가 난다고 한 건 B 씨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미 남편과 사이에 1남 2녀를 둔 A 씨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B 씨가 피임에 협조하지 않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급기야 갓 낳은 아이 2명을 살해해 냉동고에 보관까지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여기에 아내가 임신 15주 차라는 사실을 "교도소 접견을 통해 들었다"는 B 씨의 말에 변호인도 분노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 제왕절개 비용 부담에 위험 무릅쓰고 V백…남편 "몰랐다"
이날 변호인은 B 씨에게 "아내가 3차례나 제왕절개를 통해 1남 2녀(2011년생 딸, 2013년생 아들, 2015년생 딸)을 낳았다. 세 번이나 제왕절개를 해 자연분만이 위험하다고 산부인과에서도 말렸지만 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으로 2018년과 2019년 아이를 낳았다"며 "이 사실을 아냐"고 물었다.
B 씨는 "몰랐다"고 했다.
또 변호인은 "왜 그랬겠는가, 제왕절개 비용이 많이 들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 남편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아냐"고 했다.
B 씨는 "몰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어떻게 남편 되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피임도 신경 쓰지 않았나 싶어 변호인으로서 화가 난다. 책임감은 느끼냐"고 떨리는 목소리를 묻자 B 씨는 "제가 똑바로 행동했으면 아내가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 1심 재판장 "세 아이가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울먹이며 선고
지난 2월 8일 1심 재판장인 황 부장판사는 주문을 읽기 전 "피고인은 세 아이가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이라며 울먹거렸다.
2~3초간 말을 잇지 못하던 재판장은 "세 아이의 동생이 됐을 생명을 사라지게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두 자녀 모두 태어난 지 29시간 만에 분만 직후 비정상적 심리 상태 등으로 살해한 건 살인죄가 맞다"라면서도 "무능력한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었던 점, 세 자녀마저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정이 있는 점,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태도를 참작했다"며 참작 동기 살인으로 판단, 나름 선처한 형량임을 알렸다.
◇ 재판장 "수감생활 잘해 아이 잘 키울 수 있도록 준비하시라" 이례적 당부
재판장은 "한창 크는 세 아이와 (피고인이) 반성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숨진) 두 아이, 앞으로 새롭게 기회를 부여받아 책임감을 느껴야 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을 잘 돌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감 생활을 잘해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준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수원 구치소 측이 2024년 2월말 출산을 앞두고 있는 A 씨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구치소 보호 아래 연계된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산을 위해 일시 풀어줄 경우 넉넉하지 못한 가정 상태 등을 볼 때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힘들 것으로 보여 차라리 법무부 도움이 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지난 6월 19일, 항소심인 수원고법 형사3-2부(고법판사 김동규 김종기 원익선)는 1심과 같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 2018년 11월 여자아이, 2019년 11월 남자아이 살해 후 냉동고에
A 씨는 2018년 11월 병원에서 여자아이를 출산한 다음 날 아이를 수원시 장안구 자기 아파트로 데려와 목 졸라 살해,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싼 뒤 냉장고 냉동실에 유기했다.
이어 2019년 11월엔 남자아이를 병원에서 낳은 후 주거지 인근 골목에서 살해 후 같은 방법으로 냉동실에 넣었다.
A 씨 범행은 지난해 5월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들통났다.
◇ 복지부, 수원시에 조사 의뢰…A 씨 조사 거부, 경찰 수사로 이어져
감사원은 병원 등에서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 사례(2015~2022년 사이 2000여 명)를 발견, 복지부에 이를 통보했다.
감사원 지적을 받은 복지부는 수원시에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했다.
당시 A 씨가 협조를 거부하자 수원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2023년 6월 21일 A 씨 집 냉동실에서 영아 시신 2구를 발견, 친모 A 씨를 긴급체포했다.
◇ 친모 '아이 유치원비도 못 내· 낙태 비용 250만원 부담· 남은 아이 생각에 자수 못해'
A 씨 범행 동기는 지난해 6월 말 자신을 담당한 변호인에게 보낸 자필 편지와 경찰 진술을 통해 읽을 수 있다.
A 씨는 편지에서 △ 여러 번 자수하고 싶었지만, 남은 세 아이가 아직 어리고 걱정돼 그러지 못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수하려고 생각했다 △ 평생 먼저 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며 살겠다 △ 제가 조사를 받으면 남은 아이들이 걱정됐다 △ 씻는 법, 밥하는 법, 계란프라이 하는 법, 빨래 접는 법 등을 알려주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 첫 조사 때 거짓말해 시간을 벌려고 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 조사에선 △ 넷째 아기를 출산하기 전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비용이 250만 원이나 됐다 △ 8살 셋째 아이의 어린이집 원비 500만 원 이상을 아직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 뒤늦은 지원, 출생통보제, 영아살해 유기도 최대 사형…친모 넷째 출산 후 구치소에서 양육
A 씨 사건이 알려지자 수원시 등 행정당국은 남편 B 씨가 아이들과 지낼 수 있도록 여러 지원책을 마련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을 마련, 지난 7월 1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난 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출생 정보로 시·구·읍·면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출생등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보호출산제는 신원을 밝히고 출산하기 어려운 임산부에게 가명과 주민등록번호 대체 번호를 발급해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진료·출산하게 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경우 출생 1개월 이내에 아동보호 신청을 하면 지역상담 기관이 생모의 가명과 관리 번호 등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가 가정법원의 성·본 창설 허가를 받아 출생 등록을 한다.
국회는 지난해 7월 영아 살해·유기범도 일반 살인·유기범처럼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한 형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영아 살해·유기 규정이 개정된 건 1953년 9월 형법 제정 후 70년 만이다.
한편 A 씨는 지난 2월 말 넷째 아이를 출산, 구치소 내 양육 시설 등을 통해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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