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3자녀 있는데, 계속 임신…갓 낳은 아이 2명 살해

형편 어려워 키울 수 없다 판단, 시신 냉동실 보관[사건속 오늘]
남편 피임 협조 안 해, 재판장 이례적 꾸중…구치소서 넷째 출산

영아 2명을 살해하고 냉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친모 A 씨가 지난해 6월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이를 출산해 살해한 뒤, 이를 검은봉지에 담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소재 자신의 거주지 아파트 냉장고에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3.6.3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년 전인 2023년 9월 11일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황인성) 심리로 열린 30대 여성 A 씨의 2차 공판에서 변호인은 증인을 향해 "너무 무책임해 화가 난다"고 했다.

이 말에 증인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판사와 검사는 이 모습을 말없이 쳐다봤다.

증인석에 앉은 이는 살인 및 시체은닉 혐의 등으로 기소된 A 씨의 남편 B 씨.

변호인이 너무 기가 막혀 화가 난다고 한 건 B 씨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미 남편과 사이에 1남 2녀를 둔 A 씨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B 씨가 피임에 협조하지 않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급기야 갓 낳은 아이 2명을 살해해 냉동고에 보관까지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여기에 아내가 임신 15주 차라는 사실을 "교도소 접견을 통해 들었다"는 B 씨의 말에 변호인도 분노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 제왕절개 비용 부담에 위험 무릅쓰고 V백…남편 "몰랐다"

이날 변호인은 B 씨에게 "아내가 3차례나 제왕절개를 통해 1남 2녀(2011년생 딸, 2013년생 아들, 2015년생 딸)을 낳았다. 세 번이나 제왕절개를 해 자연분만이 위험하다고 산부인과에서도 말렸지만 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으로 2018년과 2019년 아이를 낳았다"며 "이 사실을 아냐"고 물었다.

B 씨는 "몰랐다"고 했다.

또 변호인은 "왜 그랬겠는가, 제왕절개 비용이 많이 들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 남편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아냐"고 했다.

B 씨는 "몰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어떻게 남편 되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피임도 신경 쓰지 않았나 싶어 변호인으로서 화가 난다. 책임감은 느끼냐"고 떨리는 목소리를 묻자 B 씨는 "제가 똑바로 행동했으면 아내가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1심 재판장 "세 아이가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울먹이며 선고

지난 2월 8일 1심 재판장인 황 부장판사는 주문을 읽기 전 "피고인은 세 아이가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이라며 울먹거렸다.

2~3초간 말을 잇지 못하던 재판장은 "세 아이의 동생이 됐을 생명을 사라지게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두 자녀 모두 태어난 지 29시간 만에 분만 직후 비정상적 심리 상태 등으로 살해한 건 살인죄가 맞다"라면서도 "무능력한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었던 점, 세 자녀마저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정이 있는 점,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태도를 참작했다"며 참작 동기 살인으로 판단, 나름 선처한 형량임을 알렸다.

◇ 재판장 "수감생활 잘해 아이 잘 키울 수 있도록 준비하시라" 이례적 당부

재판장은 "한창 크는 세 아이와 (피고인이) 반성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숨진) 두 아이, 앞으로 새롭게 기회를 부여받아 책임감을 느껴야 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을 잘 돌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감 생활을 잘해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준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수원 구치소 측이 2024년 2월말 출산을 앞두고 있는 A 씨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구치소 보호 아래 연계된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산을 위해 일시 풀어줄 경우 넉넉하지 못한 가정 상태 등을 볼 때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힘들 것으로 보여 차라리 법무부 도움이 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지난 6월 19일, 항소심인 수원고법 형사3-2부(고법판사 김동규 김종기 원익선)는 1심과 같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 News1 DB

◇ 2018년 11월 여자아이, 2019년 11월 남자아이 살해 후 냉동고에

A 씨는 2018년 11월 병원에서 여자아이를 출산한 다음 날 아이를 수원시 장안구 자기 아파트로 데려와 목 졸라 살해,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싼 뒤 냉장고 냉동실에 유기했다.

이어 2019년 11월엔 남자아이를 병원에서 낳은 후 주거지 인근 골목에서 살해 후 같은 방법으로 냉동실에 넣었다.

A 씨 범행은 지난해 5월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들통났다.

◇ 복지부, 수원시에 조사 의뢰…A 씨 조사 거부, 경찰 수사로 이어져

감사원은 병원 등에서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 사례(2015~2022년 사이 2000여 명)를 발견, 복지부에 이를 통보했다.

감사원 지적을 받은 복지부는 수원시에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했다.

당시 A 씨가 협조를 거부하자 수원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2023년 6월 21일 A 씨 집 냉동실에서 영아 시신 2구를 발견, 친모 A 씨를 긴급체포했다.

갓낳은 아이 2명을 살해 후 냉동실에 보관했던 친모가 '남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자수하지 못했다'며 변호인 앞으로 보낸 편지. (SBS 갈무리) ⓒ 뉴스1

◇ 친모 '아이 유치원비도 못 내· 낙태 비용 250만원 부담· 남은 아이 생각에 자수 못해'

A 씨 범행 동기는 지난해 6월 말 자신을 담당한 변호인에게 보낸 자필 편지와 경찰 진술을 통해 읽을 수 있다.

A 씨는 편지에서 △ 여러 번 자수하고 싶었지만, 남은 세 아이가 아직 어리고 걱정돼 그러지 못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수하려고 생각했다 △ 평생 먼저 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며 살겠다 △ 제가 조사를 받으면 남은 아이들이 걱정됐다 △ 씻는 법, 밥하는 법, 계란프라이 하는 법, 빨래 접는 법 등을 알려주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 첫 조사 때 거짓말해 시간을 벌려고 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 조사에선 △ 넷째 아기를 출산하기 전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비용이 250만 원이나 됐다 △ 8살 셋째 아이의 어린이집 원비 500만 원 이상을 아직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 뒤늦은 지원, 출생통보제, 영아살해 유기도 최대 사형…친모 넷째 출산 후 구치소에서 양육

A 씨 사건이 알려지자 수원시 등 행정당국은 남편 B 씨가 아이들과 지낼 수 있도록 여러 지원책을 마련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을 마련, 지난 7월 1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난 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출생 정보로 시·구·읍·면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출생등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보호출산제는 신원을 밝히고 출산하기 어려운 임산부에게 가명과 주민등록번호 대체 번호를 발급해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진료·출산하게 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경우 출생 1개월 이내에 아동보호 신청을 하면 지역상담 기관이 생모의 가명과 관리 번호 등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가 가정법원의 성·본 창설 허가를 받아 출생 등록을 한다.

국회는 지난해 7월 영아 살해·유기범도 일반 살인·유기범처럼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한 형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영아 살해·유기 규정이 개정된 건 1953년 9월 형법 제정 후 70년 만이다.

한편 A 씨는 지난 2월 말 넷째 아이를 출산, 구치소 내 양육 시설 등을 통해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