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 속 토막 시신…'유력 용의자' 남편은 "그럴 수도"

포항 40대 주부 노래방 간 후 행적 묘연, 주검으로[사건속 오늘]
남편 "아내 가출 밥 먹듯이, 내 삶 망가졌다"…증거 없어 미제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08년 7월 8일 오후 2시 20분쯤.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칠포해수욕장 2차로 주변 갈대숲에서 잘린 오른쪽 다리 한쪽이 발견됐다. 최초 목격자는 70대 부부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갈대밭에서 또 다른 신체 부위를 발견했다. 2시간 만에 오른쪽 팔을 찾은 데 이어 몇 시간 뒤 왼팔과 왼쪽 다리를 찾아냈다.

감식 결과 양팔과 두 다리는 모두 한 사람의 것이었다. 머리와 몸통은 보름 뒤인 7월 22일 이웃 마을 도로변에서 조경 작업을 하던 인부가 발견했다.

포대 밖으로 흘러나온 손은 백골화가 진행됐고 손끝은 동물의 공격을 받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40~50대 여성으로 추정됐지만 얼굴은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부검 결과 사인은 설골 골절로 누군가에게 목 졸림을 당한 뒤 참혹하게 훼손돼 버려진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톱을 이용해 시신을 절단해 다른 장소에 유기했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오른손 손가락 끝마디를 고의로 절단한 흔적이 포착됐다. 왼쪽 손은 그대로 있고 우측 손가락이 조금 절단돼 나간 상태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다행히 손가락 끝이 남아있던 왼손 지문을 통해 피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피해자의 고향은 제주도이고 포항에 정착해서 사는 당시 49세 가정주부 A 씨였다.

◇새벽 2시 30분쯤 친구와 통화…아파트 반경 1.5㎞ 지점서 신호 꺼져

A 씨는 6월 24일 남편 B 씨에 의해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와 6월 11일 함께 낮술을 마셨고 본인이 잠이 들었다. 아내는 오후 10시쯤 외출했다가 새벽 4시쯤 귀가한 그가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잠결에 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씨가 6월 11일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 택시를 타고 한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를 태웠던 택시 기사는 "정신은 맨정신이었다. 술은 한두 잔 마신 것 같았다"라고 진술했다. 택시 기사는 A 씨가 잠깐 기다려 달라면서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고 결국 돈을 받지 못했기에 그날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A 씨의 행적이 다시 파악된 건 다음 날인 12일 오전 2시 30분경이었다. A 씨는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며 "사는 게 힘들다, 술 한 잔 마시러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 씨의 휴대전화는 거주하는 아파트 반경 1.5㎞ 지점 어딘가에서 신호가 꺼졌다.

◇현장엔 유류품·지문·DNA 없어…장기간 쏟아진 비로 인해 증거 유실

경찰은 포항 인근 지역 미귀가자의 가족을 상태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또 실종 후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유기 장소를 지나간 차량 수만 대를 모두 확인했지만 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특정하지 못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시신 발견 현장에는 A 씨의 유류품도 없었다. 범인의 지문은 물론 DNA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포항 지역에 지속적으로 비가 내려 증거들이 유실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전문가들은 범인이 해당 장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제 갈대밭 옆 좁은 차량 진입로는 밤에는 가까이 있어도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누군가 숨어서 들어간다고 해도 들킬 염려가 없어 보였다.

범인은 피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여러 번 나눠서 유기했다. 머리와 몸통이 발견된 곳은 갈대밭에서 1.2㎞ 떨어진 한적한 도로변이었다.

전문가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시신을 훼손해 각각 다른 장소에 유기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범죄의 흔적을 드러낼 때가 있다고 분석했다.

◇12일 만에 실종 신고한 남편…세면대 교체 등 미심쩍은 행동에 의문

경찰은 아내가 실종된 지 12일이나 지나 실종신고를 한 남편 B 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어떠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B 씨를 용의선상에서 아예 배제하기에는 미심쩍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B 씨는 아내 실종 후 뜬금없이 세면대를 교체하거나 처가 식구들과 지인들에게 수상쩍은 말과 행동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제주도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비행기나 여객선 출입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처가에 연락해서는 "아내가 집에 안 들어오고 있다. 다른 남자 집에 있으니 장모님이 올라와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며 상반된 이야기를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B 씨는 지인에게 "대구에 가야 한다", "렌터카 빌려야 한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 의문을 자아낸 건 B 씨가 1개월간 혼자 쓴 수도사용량이 1인 가구 평균 사용량인 5톤을 훨씬 웃돌았다는 점이다. A 씨 부부는 한 달 평균 15톤가량의 물을 사용했다. 아내가 집을 나간 2008년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B 씨는 9톤을 사용했다. 경찰이 추궁하자 B 씨는 "너무 더워 샤워를 자주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B 씨를 향한 주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웃들은 A 씨의 팔에 항상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에도 종종 있었다고 기억했다. B 씨의 친구도 그가 아내를 때렸던 걸 알고 있었다. 인근 병원 관계자도 A 씨가 자주 방문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B 씨는 아내를 때린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람 손찌검한다고 해도 따귀는 몇 차례 정도 있지 그 외에는 없다"고 말하면서 아내의 죽음 때문에 오히려 자기 삶이 망가졌다고 호소했다.

그는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술 취해서 인사불성 돼서 집에 안 들어오고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당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정밀 감식에도 증거 無…미제수사팀 원점 수사했음에도 16년째 미제

경찰은 B 씨를 포함해 주변 인물 300여 명을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실패했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현상금을 걸고 공개수사로 전환했지만 유의미한 제보는 없었다.

국과수 정밀 감식 결과 아파트 욕실에서도 별다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 세면대가 교체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건을 맡고 있는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2018년 원점으로 돌아가 방대한 양의 사건 기록과 증거 물품들을 꼼꼼하게 살피며 재분석했지만, 현재까지 검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r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