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아버지 살해…'징역 20년, 집행유예' 다른 응징 왜?

"아버지한테 맞은 기억밖에 없다"…불질러 질식사 [사건속 오늘]
"아빠 미안" 흉기 휘둘러…아버지 "아들 치료받게 해달라" 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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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3년 전인 2021년 8월 22일 대구고법 제1-1형사부(손병원 부장판사)는 아버지를 죽인 혐의(존속 살해)로 기소된 A 씨(26)에 대해 1심과 같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같은 날 대구고법 형사2부(재판장 양영희)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B 씨(29)에게 징역 3년 6월형과 치료감호를 내린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행이었음에도 형량에서 큰 차이가 난 건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느냐, 아니냐도 있었지만 B 씨의 경우 정신질환에 따른 심신미약을 인정받았고 부친이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 불 질러 아버지 살해…"내가 죽으려 한 것" 변명

A는 2020년 7월 13일 새벽 아버지가 잠든 틈을 이용해 거주지인 대구의 한 아파트에 불을 빌러 부친(57)을 질식사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A는 "오랜 기간 심한 우울증을 앓아 온 상태여서 아버지가 심하게 야단쳐 우울증, 불안감이 도졌다"며 "내가 죽을 생각으로 불을 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며 심신미약과 고의성이 없음을 주장했다.

◇ 기름 구입, 불 지른 후 빠져나가…계획범행

A의 주장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경찰은 A가 △ 인터넷으로 플라스틱 기름통 구입 △집 주변 주유소에서 휘발유 구입 △ 아파트 복도에 감춰둔 사실을 밝혀냈다.

재판부는 이러한 수사 결과와 함께 불이 나자 A가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CCTV 장면을 들어 계획범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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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로부터 맞은 기억뿐…부친 옥살이로 8살~15살 위탁 가정에서 자라

A는 검찰 조사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엄마와 저를 닥치는 대로 때렸다. 위탁가정에 보내지기 전 아버지로부터 맞은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교도소 수감으로 8살부터 15살까지 위탁가정에서 자랐던 A는 아버지가 출소한 뒤 다시 살게 되자 "아버지와 정말 살기 싫었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고 했다.

◇ 휴대폰만 본다, 밥 안 차린다, 눈을 부라린다 야단맞자…휘발유 구입

조사결과 A는 범행 전날인 2020년 7월 12일 아버지로부터 '밥 차릴 생각 않고 휴대폰만 본다'고 야단맞았다.

이에 싫은 기색을 나타내자 아버지가 '어른에게 눈을 부라린다'며 욕설과 함께 폭행을 행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직후 집을 나가 휘발유를 구입했다.

◇ 法 "아버지 살해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지 못할 범죄…일부 정상 참작 여지"

1심인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정일)는 "아버지를 범행 대상으로 한 점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지 못할 범죄로 죄질이 나쁘다"며 "반사회적 반인륜적·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의 폭행 등으로 인해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사건 무렵에도 폭행당하는 등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징역 20년형도 선처한 것임을 알렸다.

항소심 역시 1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형량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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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게임 그만하라는 말에 욱…"아버지 죽이면 내 마음대로"

B는 2020년 1월 6일 경북 포항의 자기 집에서 부친(67)을 흉기로 3차례 찌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친은 아들이 이틀이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러다 뭐가 되려고 하냐"며 심하게 야단쳤다.

이에 앙심을 품은 B는 부친이 식사 준비를 위해 싱크대에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죽이면 내 마음대로 게임을 하는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며 흉기를 집어 들고 아버지를 찔렀다.

◇ "아빠 미안해요"라며 흉기로…정상참작 원인 중 하나

흉기를 든 B는 "아빠 미안해요"라며 등과 어깨, 목 부위를 찔렀다.

부친은 아들을 제지, 흉기를 빼앗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B의 "미안해요" 발언은 정상을 참작받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2021년 2월 1심은 징역 3년6월형을 선고하면서 "B가 정신질환으로 인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 범행과정에서 '미안해요'라고 말한 점을 참작했다"며 봐준 형량이라고 했다.

1심은 "B가 약물치료를 스스로 중단한 것을 볼 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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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소심서 누나 "동생이 정상적 삶을 살도록 돕겠다" 父 "아들에게 치료받을 기회 달라" 읍소

수사 때 "아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던 부친은 항소심 때 증인으로 나와 "아들이 정신과 치료를 통해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재판부가 도와 달라"며 실형을 면해 줄 것을 읍소했다.

누나도 "동생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꾸준히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선처를 부탁했다.

B의 주치의는 "입원 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돼 현재로선 특이한 정신병리가 없다"며 현 단계로선 위험요소가 없다는 소견서를 제출했다.

대구고법은 "죄질이 나쁘지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가족들이 탄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며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B를 석방했다.

아울러 "가족의 도움과 치료를 받으면 재범의 위험성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치료감호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