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서 엄마 죽인 아빠" 누명 못벗고 19년 옥살이 끝 저세상으로

'보험금 9억 노려 아내 추락사' 직접 증거 없이 구속[사건속 오늘]
결백 자신한 경관, 진술 번복한 3남매 덕 재심 결정…지병으로 사망

(그것이 알고싶다)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우리나라 법원은 재판 과정이 잘못됐거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새 증거가 발견될 경우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다. 재심 절차는 까다롭고 받아들여지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여기 1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끝에 재심이 인용됐으나 형 집행 정지 당일 숨진 무기징역수가 있다.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가 "누명을 벗겨주겠다"고 발 벗고 나선 주인공은 '송정저수지 아내 살해 사건'의 용의자 고(故) 장 모 씨(66)다.

◇"졸음 운전했는데 아내가 없다"…저수지에 빠진 부부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39분쯤 전남 진도군 의신면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를 향해 달리던 1톤 트럭이 사라졌다. 경고 표지판을 들이받은 장 씨가 조수석에서 잠든 아내 A 씨(당시 45세)와 함께 물속으로 빠진 것이다.

온몸이 홀딱 젖은 채 저수지에서 걸어 나온 장 씨는 "아내가 없다"며 횡설수설했다. 간신히 차를 발견해 아내를 찾은 건 20분이 지난 후였다. 아내를 구출하자마자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아내는 이미 물속에서 사망한 뒤였다.

사고 직후 장 씨는 경찰에 "졸음운전을 했고 저수지에 추락한 순간에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장 씨가 사고 발생 1년 전부터 여러 건의 보험에 새로 가입하거나 보험금액을 늘리고 있던 점을 확인하고선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고 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장 씨의 자녀들이 돌연 아빠를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경찰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삼 남매는 "저는 아빠가 엄마를 살해했다고 100%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며 "아빠는 누가 돈만 준다고 하면 청부살인이라도 할 사람이다. 그 사람(아빠)은 돈에 미쳐서 여러 개의 보험을 들어놓고 자기 마누라를 계획성 있게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장 씨의 고의 살인 증거를 끝내 찾지 못해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자 검찰은 장 씨를 처음 불러 조사한 날 곧바로 그를 긴급 체포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보험금을 노린 고의 범행으로 판단,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당시 장 씨 부부가 가입한 보험은 총 9개로, 장 씨 아내가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정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액수는 9억 3000만 원이었다. 이에 대해 장 씨는 일부 보험은 아내가 직접 지인과 상담해 가입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법원은 검찰 구형을 받아들여 장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 씨는 곧바로 항소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2005년 9월 28일 장 씨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무기징역'에 재심 청구만 3번…퇴임 경찰, 재수사 국민청원 올리다

장 씨는 아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직후부터 계속해서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복역 중에는 2009년과 2010년, 2013년 등 총 세 번이나 재심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그가 쓴 자필 재심청구서와 탄원서는 A4 용지 900여 쪽에 달했다.

장 씨가 옥살이를 한 지 16년 만에 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는 이가 나타났다. 바로 충남 서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었던 전우상 전 경감이다.

전 경감은 처음 이 사건을 접한 2017년부터 경찰에서 퇴임한 2020년까지 3년에 걸쳐 직접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장 씨의 무죄를 믿어줬다.

전 경감은 2020년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사기관이 가혹행위를 하며 사건을 조작해 16년째 옥살이를 하는 무기수가 있어 현직 경찰관이 수사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청원에서 그는 "장 씨 동생으로부터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을 들었고 조사를 위해 저수지 현장을 약 15차례, 장 씨 면회를 20차례 이상했으며 증인을 찾기 위해 진도와 해남 등을 여러 차례 다녔다"며 "당시 판결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사건 담당 기관인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을 방문해 그동안 조사한 자료 등이 담긴 재수사 요청 서류를 제출했다.

박 변호사는 장 씨를 대리해 2021년 12월 31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장 씨의 네 번째 재심청구였다.

장 씨가 졸음운전한 경로. (그것이 알고싶다)

◇"아내에게 수면제 먹이고 앞유리창으로 빠져나갔다" 경찰 주장

장 씨에 대한 유죄 확정 판단의 근거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확인한 '간접 증거'뿐이었다. 직접 증거는 없었다.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고, 경찰이 제출한 간접증거는 무엇일까.

장 씨는 "사고 전날 처형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오후 해남에서 장사하는 여동생 부부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날 오후 7시쯤 진도 집을 향해 출발했다"며 "진도에 들어서자 아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해서 집 가는 방향에 있던 약수터에 잠깐 들렀다"고 설명했다.

장 씨에 따르면 당시 아내는 감기 기운이 있다며 장 씨가 먹는 약을 나눠 먹자고 했고, 장 씨는 봉투째 약을 건넸다. 그 속에는 불면증이 있던 장 씨가 먹던 수면제가 있었다. 장 씨는 약수터에서 세수하느라 아내가 약을 먹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경찰은 뜯어진 수면제 봉투가 발견된 만큼, 장 씨가 사건 당일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였고 자신은 졸음운전이라는 변명을 만들기 위해 감기약을 먹었다고 진술했다고 추정했다.

아내의 부검 결과, 감기약은 검출됐지만 수면제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과수 측은 "수면제가 소량이라서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아내의 몸에는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처가 있었다. 당시 아내를 구조한 인명구조 팀은 "(A 씨) 등이 새우처럼 위로 올라가 있었다. 다리가 떠 있어서 안전벨트를 안 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양된 차의 안전벨트는 잠겨 있었고, 앞유리창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재판부는 이것이 바로 장 씨가 아내를 살해한 범행 흔적이라고 판단했다.

장 씨가 사고 전 앞유리창이 잘 빠지게 미리 조작해 놓고, 당일 약수터에서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 차를 몰고 저수지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물속에서 정신 차리고 탈출하려는 아내를 막아 익사시키고 보험금을 더 받기 위해 조수석 안전벨트를 다시 채운 뒤 앞유리창으로 탈출했다는 게 재판부의 이야기다. 또 시신에 남은 상처가 바로 장 씨가 아내를 압박한 흔적이라고 봤다.

◇타살 흔적 없고 수면제 검출 안 돼…'간접 증거'로 살인 누명?

수사기관의 간접 증거를 하나씩 뒤집을 의견이 속속 나왔다.

한국 법의학 대부로 통하는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부검의의 의견에 오류가 있다며 "(A 씨) 사체에서 타살 흔적은 없다. 단순 익사"라고 밝혔다. 특히 가슴 부위 압박흔은 긴급하게 이뤄진 심폐소생술의 흔적이라고 했다.

또 부검 과정에서 감기약 성분의 캡슐 형태 알약 외에 다른 약이 발견되지 않은 점, 수면제를 먹었다고 해도 복용한 지 30분 이상 지난 후 사고가 발생했는데 관련 약물이 모든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애초에 수면제를 먹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장 씨 부부가 가입한 보험들은 교통사고 보장보다 만기에 환급받는 저축성 보험에 집중돼 있었다. 아울러 최고액의 보험료를 내야 했던 보험의 경우, 보험설계사가 "장 씨 부부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고 과거 여러 차례 밝혔으나 이 진술은 법적 판단에 반영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아울러 검찰과 법원은 장 씨가 저수지 추락 직전 고의로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장 씨의 '졸음운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성지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는 "졸음 상태로 있다고 할 때, 도로를 따라 직진으로 오면 여기까지 충분히 올 수 있다"며 핸들을 왼쪽으로 꺾지 않아도 추락 지점에 도착한다고 봤다. 동시에 현장과 경찰의 약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당시 A 씨 시신을 수습했던 해병대 이용범 회장은 202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저수지에 들어가 시야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임에도 수면에서 30㎝ 밑으로 내려가자 저수지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했다. 바로 앞 시야는 5~10㎝ 수준이었다. 이 물속에서 아내를 압박해 익사시키고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의심되는 대목이다.

전 경감은 "이건 졸음운전 아니면 벌어질 수 없는 사고다. 근데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다 엉터리로 해놓고 살인이라는 혐의에 대한 답은 다른 데서 찾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장 씨의 막내딸. (그것이 알고싶다)

◇아빠가 범인이라던 세 남매, "외가에 압력받았다" 위증 고백

이 사건에서 경찰과 법원이 장 씨를 의심하게 만든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자녀들의 증언이었다. 경찰은 경찰서가 아닌 사건 현장과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진술을 받아 갔다.

당시 목포에서 유명한 무속인이었던 큰이모는 아는 무당을 불러 죽은 A 씨의 넋을 달래는 '넋걷이' 의식을 하자고 했다. 당시 무당은 갑자기 A 씨에 빙의한 듯 장 "아빠가 나(엄마)를 죽였어. 내 가슴을 눌러 죽였어"라고 말했다. 결국 이는 장 씨가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막내딸은 2014년 가을, 10년 만에 처음 아빠를 찾아갔다. 장 씨는 딸에게도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했고, 딸은 이를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딸은 전 경감을 만나 아빠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오해를 풀게 됐다.

막내딸은 전 경감과 함께 증거를 수집했고, 언니와 오빠를 설득했다. 그 결과, 장 씨의 큰딸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탄원서 작성 당시 외가의 압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삼 남매는 법원에 낸 탄원서를 비롯한 증언 모두 "과장되거나 거짓이었다"며 위증이라고 밝혔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남매가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대개 '~한 것 같습니다'와 같은 전언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 임의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며 "더군다나 경찰서가 아닌 사건 현장이나 장례식장 등에서 쓰인 진술서는 증인 진술서로 효과를 가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재심을 진행 중인 '진도 저수지 아내 살인사건'의 현장 검증이 3일 오후 2시 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정저수지(당시 명금저수지)에서 열리고 있다. 2024.6.3/뉴스1 ⓒ News1

◇19년 만에 재심 열려…형 집행정지 날 세상 떠났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2022년 9월 "영장 없이 사고 트럭을 압수한 뒤 뒤늦게 압수 조서를 꾸며 수사의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은 원심 격인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리 과정에서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다가 재심을 개시해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오자 뒤늦게 "적법한 절차였다"며 항고했다.

2심 법원은 검찰의 항고를 기각, "송정저수지 추락 사건에 제시된 검찰의 증거 등에 수사 위법성 정황이 있다"며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후 검찰은 재항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지난 1월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재심이 확정됐다.

그렇게 19년 만에 재심이 열리게 됐다. 홀로 장 씨의 무죄를 주장하던 전 경감이 사건 재조사를 시작한 후로 6년 7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장 씨는 지난 4월 중순 예정된 재심 첫 재판을 앞두고 군산교도소에서 해남교도소로 이감 직후인 4월 2일 백혈병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 도중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일은 형 집행정지일이었다.

지난달 3일에는 재심 관련 현장 검증이 21년 만에 열리기도 했다. 박 변호사가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열린 것으로, 사고 직전 구간에서 차량 운전대를 조작했을 경우 차량의 방향이 얼마나 틀어지는지 확인했다.

장 씨의 변호인을 맡은 박 변호사는 "장 선생님은 '진실은 언제고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으로 긴 시간을 버텼다"며 "무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아닌 가족을 금전적 목적으로 죽였다는 이 억울한 누명과 세상의 오해를 풀어드리겠다"고 말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