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애 건드려"…맘보파 살육한 목포파, 룸살롱을 피바다로
강남 서진 룸살롱 주도권 놓고 칼부림, 4명 살해[사건속 오늘]
범죄와의 전쟁, 한국판 누아르 태동의 계기…최악의 조폭 사건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86년 8월엔 홍콩과 한국 서울에서 나란히 누아르(Noir· 프랑스어로 검은색· 어둠의 세계, 암흑가를 말함)가 펼쳐졌다.
8월 2일 홍콩 영화관에는 저우룬파 주연의 영웅본색이 내걸려 홍콩 누아르(암흑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장르) 황금시대 개막을 알렸다.
지금은 흘러간 화양연화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1997년 7월 1일)되기 몇 년 전까지 홍콩에서 만들어진 누아르는 한국 등 아시아 전역을 열광시켰다.
서울 누아르는 영웅본색 개봉 12일 뒤인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일어난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을 말한다.
◇ 광복절 전날의 칼부림…피로 물든 룸살롱
지금의 서울 지하철 9호선 언주역과 신논현 사이는 강남 최고 유흥가 중 한 곳으로 대형 룸살롱, 호텔 나이트클럽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중 서진회관은 광복절 전날인 관계로 넘쳐나는 술손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장사가 너무 잘된 것도 비극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동료의 출소를 축하하기 위해 룸 17호에 자리 잡은 폭력조직 범서방파 방계조직인 맘보파 7명은 술이 취하자 종업원을 불러 "넓은 방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종업원이 '빈방도 없고 움직일 손님들도 없다"며 난색을 보이자 맘보파는 "형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주먹질했다.
겁에 질린 종업원이 퉁퉁 부은 얼굴로 룸을 빠져나갔고 이때 16호실에 놀던 8명의 목포파 조직원 중 한 명이 종업원을 불러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물었다.
그 일대 몇몇 업소를 자신들의 구역이라며 관리하면서 관리비를 뜯어온 목포파는 "남의 구역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며 이른바 연장질(흉기, 야구방망이 등을 사용한 폭력행사)을 해 서진 룸살롱 17호실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 흉기 난자로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싸움꾼이라던 조원섭 등 4명 사망
맘보파는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의 행동대장 출신인 A가 전남 목포 출신 주먹들을 중심으로 이끌던 조직이었다.
그들 중 헤비급 복서 출신인 조원섭(당시 25세)은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싸움꾼으로 호남 주먹세계에서 유명했다.
목포파는 모 대학 경호학과 유도학과를 나온 목포 출신들로 서방파, 양은이파 등 유명 폭력조직처럼 조직을 키워보겠다며 움직이고 있었다.
맘보파와 목포파는 동향으로 서로 얼굴 정도는 아는 사이였고 주먹 세계에선 서방파와 연결된 맘보파의 위세가 더 셌다.
목포파는 자신들이 뒤를 봐주던 룸살롬의 종업원을 팬 맘보파를 이번 기회에 손을 봐주겠다며 그날 밤 10시 30분, 밖으로 나가 평소 차에 싣고 다니던 흉기와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어 곧장 17호실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때리고 찌르고 했다.
맘보파는 목포파가 흉기를 들고 기습한 데다 싸움꾼 조현섭이 집중 공격당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이 일로 맘보파 행동대장 고용수(29)와 조원섭, 송재익(24), 장경식(24) 등 4명이 숨졌다.
목포파는 이미 숨진 이들 4명을 병원 앞에 던져놓고 도망쳤다.
◇ 86아시안게임 개막 37일 전 터진 초대형 사고…전두환 정권 벌집 쑤셔 놓은 듯
전두환 정권은 국제사회에 자리 잡은 독재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88 서울올림픽을 유치(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IOC 총회)했다.
88올림픽 리허설 성격으로 86 서울아시안게임까지 유치한 전두환 정권은 군병력까지 동원하는 등 대회 준비에 총력전을 펼쳤다.
그런데 서진 룸살롱 사건이 아시안게임 개막(9월 20일)을 불과 37일 앞두고 터졌다.
그것도 아시안게임 장소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서울이 안전한 곳이 아니다'라는 소식이 퍼져나갈까 전긍긍한 정부는 경찰력, 정보력을 모두 쏟아부어 룸살롱을 피바다로 만든 목포파 조직원을 잡아들였다.
◇ 부두목 장진석, 행동대장 김동술 낚시터 은신했다가 잡혀
목포파 조직원 8명 중 김승길(27세), 박영진(28세), 고금석(22세) 등은 경찰에 자수했지만 주범격인 부두목 장진석(26세), 행동대장 김동술(23세)은 잡히면 사형을 면치 못한다고 판단하고 도망쳤다.
장진석과 김동술은 전북 임실의 저수지에서 낚시꾼으로 가장해 은신했지만 정권차원에서 추적한 경찰을 따돌리지 못하고 붙잡혔다.
◇ 4명 사형, 1명 무기징역…사형수 2명 무기징역으로 감형
재판도 신속하게 이뤄져 1986년 12월 26일 1심은 장진석, 고금석, 김동술, 김승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또 박진영에겐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1987년 5월 2일 항소심에서 김승길은 무기징역, 박영진은 징역 20년형으로 각각 감형받았다.
장진석은 1987년 10월 13일 대법원에 의해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받았다.
김동술, 고금석은 1989년 8월 4일 사형이 집행됐으며 박영진은 2006년 만기출소했다.
장진석은 31년 4개월여 옥살이를 한 끝에 2017년 12월 22일 특사로 풀려났다.
◇ 엄청난 여파…대학교 이름 바꾸고 '범죄와의 전쟁' 선포
서진 룸살롬 사건이 몰고 온 여파는 대단했다.
목포파 조직원 대부분이 모 대학 출신인 탓에 대학 측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아예 학교 이름을 바꿔 버렸다. 이후 대학은 4년제 종합대학으로 거듭났다.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 2인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대권을 잡았지만 민주적 정통성 논란, 보안사 민간인 사찰 논란 등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자 1990년 10월 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위기 탈출을 꾀했다.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참모는 서진 룸살롱이 사회와 국민들에게 던진 충격파가 엄청났다는 점을 이용, 이러한 꾀를 냈다.
◇ 영화의 소재, 한국 누아르를 태동시켜
서진 룸살롬 사건은 홍콩 누아르와 함께 한국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한국 누아르'를 탄생시켰다.
1994년 '게임의 법칙'을 시작으로 '초록 물고기' '넘버 3' '친구'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해바라기' '내부자' '비열한 거리' '범죄 도시' 등 숱한 범죄와 조폭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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