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집 침입, 부인 살해…'태완이법' 덕 공소시효 1년전 검거
교도소 동기, 새벽 '부촌' 용인 전원주택 털이 범행[사건속 오늘]
공범은 자백 후 극단 선택…집념의 형사 재수사 끝 쾌거, 특진도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3년 전 경기도 용인의 한 전원주택에서 새 보금자리를 꾸민 부부가 변을 당했다. 괴한의 침입에 50대 의대 교수는 중상을 입었고,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이른바 '태완이법' 덕분에 15년 만에 법정에 범인을 세울 수 있었다.
◇손에 흉기 쥐고 강도 계획한 '2인조 괴한'…교수 아내는 숨졌다
사건은 2001년 6월 27일 의문의 남성 두 명이 범행 대상을 물색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전원주택이 모여 있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당시 구성면 동백리)을 범행 장소로 정했다.
두 사람은 대포 차를 타고 이 일대를 서성였고, 이튿날인 28일 오전 4시쯤 한 주택의 창문을 열고 침입한 뒤 훔칠 만한 물건을 찾아다녔다. 당시 이들은 집 안에 사람이 있을 경우, 반항을 억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각자의 손에 흉기를 쥔 상태였다.
1층에서 훔칠 물건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2층 거실로 올라간 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에는 심 모 씨(당시 55·의대 교수)와 그의 아내 이 모 씨(당시 54)가 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부부가 인기척을 느끼고 깨자, 괴한들은 "죽여버려"라고 말하며 흉기를 휘둘러 부부의 다리 쪽을 공격한 뒤 2층 창문을 뛰어넘어 도주했다. 심 씨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집 밖으로 나왔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어 1시간 뒤인 오전 5시, 신문 배달부가 부부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심 씨는 중태에 빠졌으나 목숨을 건졌고, 아내는 과다 출혈로 결국 숨을 거뒀다.
◇원한에 의한 청부살인 의심…5000명 조사했지만 결국 '미제'
부부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웃 주민과 감정싸움이 있었다는 점 외에는 특이점이 없었다. 괴한 두 명이 금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사라진 금품도 없었다.
잠에서 깬 부부에게 곧장 흉기를 휘두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원한에 의한 청부살인'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경찰은 강력팀 형사 27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 시간대 인근 기지국에 통화 기록이 남은 사람과 피해자 주변인, 동일 수법 전과자 등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나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중 의심되는 용의자 두 명을 추려내기도 했다. 사건 발생 현장 주변에서 통화한 기록이 있던 A 씨(당시 52)였다. B 씨(당시 52)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던 A 씨는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한다. B 씨가 고객이어서 통화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A 씨와 B 씨는 경찰의 수사망에서 벗어났다. CCTV도, 목격자도 없는 이 사건을 6년간 수사했으나, 결국 2007년 2월 미제로 분류돼 사실상 수사가 종료됐다.
◇'태완이법' 14년 만에 재수사…"흉기로 사람 찔렀다" 감방 동기의 고백
사건이 재조명된 건 2015년 7월 '태완이법'(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이후였다.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14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하게 됐다.
사건 발생 당시 용인동부경찰서 강력반 막내였던 경장이 경위가 돼 재수사를 지휘했다. 재수사팀은 과거 수사 대상자를 하나하나 다시 살펴봤다.
특히 피해자인 이 씨가 둔기에 여러 번 가격당한 것이 아닌데 사망한 것으로 보아 범인이 남성일 가능성이 크고, 피해자 몸에 남아 있는 상흔의 형태를 보면 범인은 왼손잡이일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때 경찰은 뇌리에 스친 A 씨에게 연락해 "그때 통화한 B 씨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A 씨는 "기억이 안 난다. B 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은 A 씨와 B 씨의 과거 행적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이 1999년 1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1년 3개월간 같은 교도소에 수용된 감방 동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서둘러 두 사람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공범으로 지목된 B 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어 B 씨는 2차 경찰 출석을 앞두고 아내에게 "15년 전 A 씨와 남의 집에 들어가 흉기로 사람을 찔렀다"고 털어놓은 뒤 극단 선택했다.
또 다른 범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A 씨는 B 씨가 숨지기 전 자백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자기 혐의 일부를 인정했다.
◇"'죽여버려' 남자 목소리 들었다"…무기징역 선고
알고 보니 특수 강도, 강도 상해 전과가 있던 A 씨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B 씨와 만나 빈집 털이를 하며 지냈다. 당시 이들은 "경기도 용인시에 부잣집 동네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범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A 씨 측은 "범행 당시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검찰의 공소사실이 입증되려면 공범 B 씨와 범행을 어떻게 분담하고 기여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며 "강도살인 고의를 확정할 수 없다면 A 씨에겐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도치사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이기 때문에 법원이 A 씨의 강도살인죄를 유죄로 판단하지 않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피해자 심 씨는 노구를 이끌고 법정에 직접 출석해 15년 전 부인이 사망했을 때를 회상했다. 심 씨는 "아내의 외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죽여버려'라고 말했다. (이들이) 우리 부부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 역시 두 사람이 흉기를 미리 준비한 사실 등으로 볼 때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고 여의찮으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한 점 등을 언급하며 강도살인죄로 인정,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자 A 씨는 항소했고, 2심은 이를 기각하면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결국 A 씨가 2017년 대법원에서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사건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뿐만 아니라 A 씨는 수사 도중 서울에서 두 번의 주거침입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실도 드러나 징역 5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한편 이번 사건은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이후 경기 지역에서 최초로 미제사건을 해결한 사례다. 아울러 범인을 붙잡은 박장호 경감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11월 당시 경위에서 경감으로 특별 승진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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