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눈 감고 즐긴다?…'어둠 속에, 풍경'이 보여주는 세계

시각장애인·비장애인 짝 이뤄 입장…서로 교감하며 감동 더해져
배요섭 연출가 "장애와 비장애 경계 무너뜨리고 질문 던지는 예술"

모두예술극장 제공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앞이 보이지 않아도, 눈을 감아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있다면 어떨까.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짝을 이룬 관객들은 서로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상대에게 전하고 상상하면서 '보는' 재미를 더 극대화한다.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어둠 속에, 풍경'은 시각에 의존해 온 공연 관람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창작된 공연이다.

먼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관객뿐 아니라 퍼포머(예술가)들도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다섯 쌍으로 이뤄져 어둠 속을 탐험한다. 시각이 없는 세계 속에서 몸을 일깨우며 새로운 차원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 공연의 핵심이다.

배요섭 연출가는 '보는 감각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2020년부터 안무가, 배우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연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하륵 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릿', '휴먼 푸가' 등 여러 실험적인 연극을 만들고 연출했지만 그 역시 장애와 비장애를 다룬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둠 속에, 풍경' 연출을 맡은 배요섭 연출가 (모두예술극장 제공)

배 연출가는 "처음에는 되게 막막해서 꿈에서부터 시작했다"며 "꿈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에 대해 접근하기 쉽겠다고 생각해서 꿈 나눔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배 연출가는 "한 분은 태어날 때부터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인데 이분 꿈에는 대화가 많이 나온다. 꿈 얘기만 하면 거의 대본을 쓸 정도"라며 "그분의 영향으로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대화체로 꿈을 꾸더라"고 웃었다.

'꿈'은 이번 공연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공연장 한가운데 늘어서 있는 3개의 큰 원기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꿈 주석'이다. 기둥 전체는 여러 감각을 묵자(한글)와 점자로 설명해 놓은 글로 덮여있다. 서로 적혀 있는 내용이 달라 짝이 읽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공연 중간에는 퍼포머들의 꿈 얘기가 장면으로 연결된다. 배 연출가는 "3년 동안 기록한 꿈을 들여다보면 초반에는 단편적이었던 꿈이 시간이 지날수록 섬세해지고 드라마틱해졌다"며 "마지막으로 꿈을 나눈 것이 지난달이었는데 그때 꿈이 제일 재밌어서 공연에 선택된 꿈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예술극장 제공

그림을 소리로 치환한 '소리그림'은 공연의 또 다른 축이다. 그림을 만지면 색연필이 캔버스 위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퍼포머들의 움직임도 언어로 전달된다. 공연 관계자는 "작년 쇼케이스 때는 일부러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하는 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몇 년 새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막이나 수어, 음성 해설을 넣는, 일명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공연이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처음부터 '배리어'(장벽)를 무너뜨릴 필요가 없이 장애인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배 연출가의 목표다.

배 연출가는 "전 지구적으로 보면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한국에서는 남성 중심적, 비장애 중심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본다"며 "인간 안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이라는 경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문제의 틈을 파고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덧붙였다.

20일 첫 공연을 선보인 '어둠 속에, 풍경'은 23일까지 총 다섯 차례 공연한다. 자세한 정보는 모두예술극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