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무통 안에 스카프로 목 졸린 백골…그 밑엔 또 다른 백골 시신

돈 내놓으라 하자 내연남 살해, 남편은 자연사 주장[사건속 오늘]
두 사람 모두 수면제 성분 나와 …남편 살해는 증거 불충분 무죄

포천 빌라 고무통 변사 사건 피의자 이모 씨가 2014년 8월 7일 오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자신의 집에서 현장검증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News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4년 7월 30일 아침부터 경기 포천경찰서 관내 모든 수사 인력과 경기 경찰청 광역 수사대는 달아난 용의자 50세 여성 이 모 씨를 찾아 나섰다.

관내 모든 CCTV를 살피는 한편 인근 경찰서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던 중 이 씨가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A 씨와 사귄다는 정보를 입수한 형사대는 8월 1일 오전 A 씨가 머무는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의 한 섬유공장으로 달려갔다.

이 씨는 경찰이 출동하자 방에서 빠져나와 공장 기숙사 부엌으로 피했지만 오전 11시 20분쯤 체포 돼 포천경찰서로 압송됐다.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 사건'으로 불리게 된 이 사건은 엽기적인 만큼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 여름밤 보채는 듯한 어린이 울음소리…집안은 쓰레기 더미, 영양실조 아이, 썩는 냄새

2014년 7월 29일 밤 9시 40분쯤 경기 포천시 신북면의 한 빌라 주민은 "2층에서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신북 파출소 경찰관은 서둘러 출동, 집안을 살피려 했지만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자 119를 불러 사다리차를 이용해 빌라 2층 창문을 통해 진입했다.

집안은 쓰레기 더미로 쌓여 있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안방에 쪼그려 앉은 채 울다가 말다가 하면서 TV를 보고 있는 아이는 한 눈에도 며칠을 굶은 듯했다. 이에 경찰은 아동 보호 관계자에게 전화, 아이를 맡겼다.

2014년 7월 29일 밤, "어린이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구석에 있던 빨간 고무통에서 썩는 냄새가 나 살핀 결과 백골 시신을 발견했다. (YTN 갈무리)

◇ 썩는 냄새는 작은 방에 있던 지름 84㎝의 빨간 고무통에서…뚜껑 열자 백골 시신이

생선 썩는 듯한 냄새가 안방 맞은 편 작은 방에서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냄새의 진원지가 작은 방구석에 있던 빨간 고무통임을 알아챘다.

10kg짜리 소금포대로 눌려 놓은 높이 80㎝, 지름 84㎝의 빨간 고무통 뚜껑을 치운 경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굴에 랩이 둘러져 있고 목에 스카프가 감긴 채 이불로 둘둘 말린, 백골화가 진행된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내연남의 시신이 담긴 빨간 고무통. (YTN 갈무리) ⓒ 뉴스1

◇ 고무통 쏟자 또 다른 백골 시신…위쪽 백골은 내연남, 아래쪽 백골은 남편

강력사건으로 전환한 경찰은 인근 병원 영안실로 가 고무통을 거꾸로 들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끈적한 액체에 이어 또 다른 두개골과 뼈만 남은 손이 툭 튀어나왔다.

2명의 시신이 고무통 안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경기 경찰청 광역 수사대까지 새벽에 소집돼 포천으로 달려갔다.

광수대, 포천서 강력팀은 물론 지능수사팀, 교통사고 조사팀까지 투입하는 등 68명으로 수사 전담팀을 꾸린 경찰이 사건의 조각을 찾아 나서는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는 시신 신원 작업에 착수했다.

고무통 위 시신은 1965년생 B 씨로 밝혀졌지만 뼈까지 삭아 버린 아래쪽 시신 신원 작업은 난항을 거듭했다.

국과수는 그나마 상태가 조금 온전한 손가락 하나를 파고들었다. 공기를 불어넣어 건조시킨 뒤 따뜻한 물에 담근 끝에 희미하게나마 피부 조각을 찾아 지문 채취에 성공했다.

시신의 주인공은 이 씨의 남편 C 씨(1964년생)였다.

엽기적인 빌라 내 고무통 백골시신 사건의 살해 용의자 현상 수배 전단. ⓒ News1 DB

◇ 용의자 통화내역 조회 통해 또 다른 내연남 찾아내

수사팀은 이 씨를 용의자로 특정, 지명수배 전단을 배포하는 등 행방을 찾는데 총력전을 펼쳤다.

통화내역 조회 결과 이 씨가 새벽 시간대에 특정한 번호로 잦은 통화를 한 사실을 확보했다.

해당 전화번호 주인이 바로 A 씨임을 확인한 경찰은 A 씨 기숙사로 형사대를 보내 이 씨를 검거했다.

◇ 범인, 내연남은 내가 죽였지만 남편은 자연사…부검 결과 2명 모두 똑같은 수면제 성분

이 씨는 체포 첫날 "내연남 B 씨는 내가 죽였지만 남편은 자연사했다"며 2명 살해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 씨는 "남편 C 씨가 2004년 갑자기 죽자 겁이 나 큰아들과 함께 시신을 고무통에 넣었을 뿐이다"고 했다.

큰아들도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자연사한 것이 맞다'고 했다. 이후 큰아들은 사체유기 공소시효(7년)가 넘어선 관계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2014년 8월 1일 경찰에 검거된 '포천 빌라 고무통 변사 사건 용의자. ⓒ News1 DB

이 씨는 2010년부터 사귀던 B 씨가 2013년 5월 초 말다툼 끝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모두 토해 내라'고 조르는 바람에 수면제를 먹인 뒤 목을 졸랐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남편 C 씨의 몸에서도 수면제 성분인 '독시라민'이 검출됐다는 국과수 부검 결과를 내세워 이 씨를 내연남과 남편 살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 혼자 남은 아이 아버지는 내연남 남편 아닌 방글라데시 외노자…이미 출국

이 씨는 경찰이 아동 보호기관에 위탁을 의뢰한 아이의 아버지가 내연남도 남편도 아닌 제3의 인물이라고 실토했다.

남편이 숨진 뒤 만난 방글라데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 이 남성은 오래전 한국을 떠나 자신의 아이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포천 빌라 고무통 변사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이 2014년 8월 7일 오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피의자 이모 씨 집에서 현장검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내연남을 스카프로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고무통 안에 넣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무통에는 2004년 행방불명 된 남편의 시신도 들어 있었다. ⓒ News1 DB

◇ 法, 내연남 살해는 인정 남편 살해는 증거 불충분…징역 18년 확정

검찰은 △ 시신에서 동일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 △ 동일한 수법으로 고무통에 유기한 점 △ 이 씨가 150㎝의 작은 키지만 완력이 웬만한 남성 못지않은 점 △ 남편 사망 사실을 숨긴 점 등을 들어 2명을 살해했다며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방법원 형사12부(한정훈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11일 징역 24년형을 선고했다.

검찰과 이 씨 모두 이에 불복 항소했다.

2015년 9월 17일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3부(강영수 부장판사)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남편 살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 징역 18년으로 감형했다.

같은 해 12월 27일 대법원 3부(김신 대법관)는 2심 판단을 받아들여 18년형을 확정했다.

이 씨의 만기출소 예정일은 2032년 7월 31이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