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주겠다" 만취녀 강제 키스했다가 혀 잘리자 '상해죄' 신고
만취 女 차 태워 호젓한 황령산으로 데려가 범행[사건속 오늘]
똑같은 사건…1964년 피해자 '유죄' 2020년엔 정당방위 무죄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0년 7월 19일 오전 부산 황령산 산길에서 벌어진 '혀 절단 사건'은 56년 전인 1964년 '김해 혀 절단 사건'과 대비 돼 큰 주목을 끌었다.
사건은 '강제 성범죄 시도' '그에 따른 여성의 방어 행위'라는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었지만 2020년엔 정당방위, 1964년엔 중상해죄로 징역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 만취한 여성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 차에 태워 엉뚱한 산으로
20대 여성 A 씨는 2020년 7월 19일 새벽, 술에 취해 부산 서면 번화가 길거리에 앉아 있었다.
이 모습을 본 30대 남성 B 씨는 "집이 어디냐, 태워 주겠다"며 A 씨에게 접근했다.
택시 기사로 착각한 A 씨가 "000동"이라며 차에 올라타자 B는 차를 000동이 아닌 6㎞가량 떨어진 연제구 황령산으로 돌렸다.
◇ 출근 시간 지나 인적 뜸한 산길 도로에서
B가 몬 차가 황령산 산길에 도착한 오전 9시 25분쯤은 새벽 운동시간, 출근 시간이 지난 관계로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차량도 뜸했다.
B는 조수석에 잠들어 있는 A 씨를 두고 인근 편의점으로 가 청 테이프와 소주, 콘돔을 구매해 돌아왔다.
이어 A 씨 몸을 청 테이프로 묶은 뒤 강제 키스를 시도했다.
◇ 깜짝 놀란 피해자, 남성 혀 물어 3㎝가량 절단
이상한 느낌에 깜짝 놀란 A 씨는 B의 혀를 물어 버렸다.
방어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된 것이다.
혀끝 3㎝가량이 떨어져 나간 B는 피를 흘리면서 인근 경찰 지구대를 찾아 "저 X가 내 혀를 잘랐다"며 중상해죄로 신고했다.
얼마 뒤 A 씨도 B를 '강간 치상' 혐의로 맞고소했다.
◇ 가해자 "콘돔 산 적 없다" 발뺌…경찰, 블랙박스 CCTV 통해 강간 치상 및 감금 확인
B는 경찰 조사 때 "편의점에서 음료수, 소주, 청 테이프 외 다른 물건을 구입한 적 없다"며 발뺌했으나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서면에서 황령산까지 설치된 CCTV, 편의점 CCTV 등을 살핀 결과 A 씨가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 B의 콘돔 구매 사실, B의 혀를 문 A 씨가 놀라 황급히 차량 밖으로 달아나는 장면 등을 토대로 B가 A 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 경찰 '과잉방위'지만 불기소 의견 송치…檢 '정당방위 맞다' 무혐의
경찰은 2020년 11월 2일 정당방위 심사위원회를 열고 A 씨의 행위가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방어'이지만 형법 제21조 제3항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당황해 이뤄진 행위는 벌할 수 없다"를 적용해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부산 동부지검은 "A 씨가 혀를 깨문 것은 자기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2021년 2월 4일 A 씨에 대해 무혐의(중상해죄) 처분을 내리는 한편 B를 강간치상 및 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 法 "반성 없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 징역 3년형
2021년 8월 3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제1형사부(부장 염경호)는 검찰 기소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B에게 징역 3년형과 함께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에 3년간 취업 제한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 B는 피해자가 혀를 깨물어 저항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 피해자와 몸싸움하면서 손으로 피해자의 입 부위를 때리는 등 상해를 입혔다 △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질타했다.
◇ 1964년 18세 소녀 최말자, 강제 키스 시도한 마을 청년 혀 깨물어
A 씨가 정당방위 무혐의, B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자 1964년 5월 6일 경남 김해에서 일어난 '혀 절단 사건'이 새삼 주목받았다.
당시 18살이던 최말자 씨는 동네 청년인 C 씨(당시 21세)가 덮친 뒤 강제 키스를 시도하자 본능적으로 혀를 깨물었다.
혀가 1.5㎝가량 잘린 C는 친구들을 몰고 최 씨의 집으로 가 집안 살림을 박살 냈다.
이 일로 최 씨는 중상해죄로 기소됐지만 C는 단순히 주거침입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 法 "소리 지르지 않았다"며 피해자 징역형, 가해자는 다른 죄로 솜방망이 처벌
1965년 1월 법원은 "최 씨의 집이 범행 장소와 불과 100m 떨어졌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은 점, 언어 구사가 힘들 정도로 상해를 입은 것으로 봐 방어의 정도를 넘어섰다"며 피해자 최 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가해자 C에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후 C는 병역의무를 마친 뒤 결혼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억울함을 묻고 살아왔던 최 씨는 우리 사회에 '미투'(나도 당했다) 흐름이 불던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1, 2심 모두 기각당했다.
최 씨는 2023년 5월 31일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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