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에 마약까지…범죄 수단된 텔레그램 10년째 속수무책[리뷰1]
성범죄·마약· 저작권 침해 수단 악용…번번이 수사 막혀
"메신저 보안 필수인 나라도 있어…국가간 규제 논의 필요"
- 유민주 기자,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박동해 기자 = 최근 발생한 '서울대판 N번방' 사건에서 범인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공유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텔레그램은 뛰어난 보안성을 자랑하지만 마약거래와 불법복제물 공유 통로가 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텔레그램 본사와 서버가 해외에 있어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0년째 검경 수사가 텔레그램 앞에서 좌절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대판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부작용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찰은 지난 2021년 사건을 확인했지만 텔레그램 벽에 막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결국 수사가 중지됐다. 이후 국가수사본부 차원에서 재수사를 지시했고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이 수사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은 수사에 협조해 주는 곳이 아니어서 전 세계 경찰이 같은 상황"이라며 "서울청은 여러 수사기법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특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10년간 범죄자 '영업 수단'된 텔레그램
2013년 출시된 '텔레그램'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였다.
지난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성착취물이 유포 및 거래됐다.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은 여성들에게 해킹 링크를 보내 여성들의 신상정보를 얻어 그들을 협박, 수치스러운 동영상이나 음란 영상을 강제로 찍게 했다. 대다수 일탈 청소년이었던 피해자들은 본인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 범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생각에 신고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닉네임 '박사' 조주빈은 N번방을 모방해 텔레그램 안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결제로만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범행을 진화시켰다. 그는 일반인 여성들에게 고액 알바를 권하며 접근했고 이에 응한 여성들을 협박하기 위해 신분증 인증을 지시해 이를 빌미로 알몸 사진을 얻어냈다. 갓갓과 다르게 박사는 영상 판매가 목적이었다. N번방은 미성년자가 주 타깃이었다면 박사방은 이삼십 대 여성들도 포함돼 피해자 나이대가 더 다양해졌다.
확인된 박사방 피해자는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방은 영상을 볼 수 있는 '맛보기 대화방'과 일정 금액의 가상화폐를 지급하면 입장 가능한 3단계 유료 대화방으로 운영됐으며, 입장료는 1단계 20만~25만 원, 2단계 70만 원, 3단계 150만 원 수준이었다.
아동·청소년 온라인 성 착취 사건으로 악명 높았던 '엘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20년 말부터 2022년 8월까지 닉네임 '엘' 이성일은 자신을 '추적단불꽃(디지털 성범죄 심층 취재 단체)'이라고 사칭해 도와주겠다며 아동·청소년 9명에게 접근했다.
이후 그는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 장면을 촬영하고 1200여개 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착취물 유포 방을 반복적으로 개설하고 폐쇄하며 대화방 30여곳을 옮겨 다니면서 치밀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기존의 다른 성 착취 방과는 다르게 금전적 이익을 얻지 않아 장기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닐 수 있었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텔레그램은 마약류 유통 창구로도 널리 알려졌다. 마약 판매상들은 추적이 어렵다는 텔레그램 특성을 활용해 수사관들이 텔레그램 방에 잠입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당당히 활동한다. 구매는 운영자와 1대1 채팅에서 암호화폐 거래로 진행되며 개별로 마약이 숨겨진 장소를 안내받는다.
문제는 운영자가 체포돼 중형을 선고받아도 해당 채팅방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물림돼 이들은 결코 '고객'을 잃지 않는다. 또 텔레그램의 '추천 채널' 기능 탓에 마약 판매방 한곳에만 들어가면 비슷한 판매방 수십여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저작권 이슈도 있다. 지난해 7월 대형 입시학원 A사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텔레그램 채널 '핑프방' 관계자 B 씨를 고소했다. 현재 폐쇄된 핑프방은 네티즌들이 모여 수능 및 고등학교 내신과 관련된 인터넷 강의, 시험지 등 수험자료를 공유하는 텔레그램 채널이다.
교재 불법 공유 텔레그램방 '유빈 아카이브'에는 지금도 매일 수십 건의 수능 대비 문제집은 물론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 대비 문제집도 공유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중국 해커가 우리나라 IP 카메라를 해킹해 사생활 영상 4500개 이상이 텔레그램에 그대로 노출된 사건도 있었다. 아기·반려동물 관찰을 위해 가정 내에 설치한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들인데, 일부엔 신체가 노출됐거나 욕실·화장실 등이 담긴 민감한 장면도 있다. 해커들은 해당 영상들을 판매하겠다고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홍보했으며, 텔레그램에 판매 채널을 열고 구매자를 찾은 사건이다.
◇ "텔레그램 규제 어느 선까지 필요한지 논의가 우선"
전문가들은 텔레그램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느 정도의 규제가 적절하고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라고 조언했다.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 텔레그램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형사 공조 협정을 맺을 수도 있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가 없어서 동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미국의 '틱톡 금지법'처럼 앱을 법으로 금지하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지만 그게 사이버 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이제라도 이런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찰과 공공기관이 국제적으로 수사력이 높은 수준이지만 민간기관과 개인과의 공조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성의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지난 2월 조훈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텔레그램에 대한 사법적 대응' 논문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소셜네트워크법으로 부작용을 사전 차단하려 했지만 효과가 불분명한 상태다.
브라질은 텔레그램이라는 앱 자체를 차단하려는 사법부의 명령이 2회에 걸쳐 있었으나 법원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벌금 납부에 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으며 텔레그램 대표는 개인의 비밀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브라질 시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며 브라질 사법 당국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0년 열린 인도 델리 고등법원 재판에서는 "피의자 정보를 제출하라"는 법원 명령이 내려진 후 텔레그램 측이 1주일 만에 밀봉 서류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다른 나라들도 저작권 침해 사건은 물론 형사 사건에 있어서 단순하게 텔레그램 방 및 채널 폐쇄 요구에 그치지 않고, 법원을 통한 텔레그램 방 및 채널 운영자 및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한편 텔레그램 본사에서는 사용자의 그 어떤 데이터도 축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주장한다. 아울러 텔레그램의 클라우드 대화 데이터는 분산 인프라를 사용해 전 세계 여러 데이터센터에 저장돼 지역별로 다른 법인이 관리한다. 따라서 암호 해독키도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장소에 보관돼 데이터를 받으려면 여러 관할 법원의 명령을 받아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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