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알부자' 모녀 납치, 성폭행·살해…"한탕하자" 동네 청년의 음모

고등학생 딸 인질, 은행에서 1억 찾아오게 해 [사건속 오늘]
얼굴 알아봤다며 살해 후 갈대밭에 팽개쳐…이복여동생까지

강화 모녀 납치 살해 용의자 수배전단. (JTBC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8년 6월 17일 오전 11시쯤 A 씨(당시 47세)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 모 여고 1학년인 딸 B 양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 조퇴하고 교문 앞으로 나와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B 양은 "지금 수행평가 시험 중인데 못 나가요"라고 했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선생님께 이를 알린 뒤 가방을 정리해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이후 A 씨 모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았다.

◇ 강화도 알부자 집…남편 교통사고사 보험금 5억원이 비극의 씨앗

A 씨 집은 강화군에서 알부자로 소문나 있었다.

강화도와 경기 화성 발안의 인삼밭, 인천의 아파트, 집과 전답 등 수십억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2018년 4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 앞으로 5억 원에 이르는 보험금이 나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했다.

A 씨의 재력을 탐내 접근했던 여목사 C 씨가 확인한 A 씨의 통장 잔고만 4억 7000만여 원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짜 돈이 많긴 많더라'는 C 씨의 말은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 "우리 동네 아줌마 돈 많다더라, 한탕 하자" 손잡은 중학교 선후배

A 씨가 거금을 갖고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동네 청년 안 모 씨(당시 26세)는 학창 시절부터 거칠었던 중학교 선배 하 모 씨(27세)에게 "A 아줌마는 내가 잘 안다. 한탕해 돈을 나눠 갖자"고 제의했다.

이어 동창 연 모 씨(26세)와 후배 이 모 씨(24세)도 끌어들였다.

이들은 하 씨의 지시대로 △ 사전 탐색조 △ 납치조 △ 현금인출조 △ 도주로 확보 등의 계획을 짰다.

하 씨와 안 씨는 A 씨로부터 돈을 갈취하려면 가장 약한 고리인 자식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A 씨의 아들은 군에 가 있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딸 B 양이 그들의 목표가 됐다.

◇ 딸 학교에 데려다주고 온 엄마 납치, 성폭행하는 등 공포감 조성

하 씨 일당은 6월 17일 아침 A 씨 집 부근에 쏘나타 차량을 세워둔 채 동정을 살폈다.

오전 8시 50분쯤 A 씨가 SUV 무쏘로 딸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안 씨가 "아주머니…"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 A 씨를 불러냈다.

A 씨가 아는 동네 청년 목소리에 밖으로 나오자 하 씨와 안 씨는 흉기를 들이대며 A 씨를 무쏘 차량 뒷좌석 쪽으로 밀어 넣었다.

하 씨와 안 씨는 A 씨 양옆에 바짝 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딸이 다니는 학교를 알고 있다. 딸에게 전화해 조퇴시켜라"고 윽박질렀다.

이어 안 씨는 무쏘 차 안에서 겁에 질린 A 씨를 성폭행, 몸과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강화도 모녀 실종 수배전단. 경찰은 2008년 7월 1일 모녀의 시신이 발견되자 살인사건으로 전환, 실종 전단을 용의자 수배전단으로 대체했다. (경찰제공) ⓒ 뉴스1

◇ 조퇴한 딸까지 납치, 은행에서 현금 1억원 찾도록 해

하 씨가 무쏘 운전대를, 안 씨는 뒷좌석에서 A 씨를 감시해 B 양 학교로 갔다. 이 씨는 연 모 씨가 운전하는 쏘나타를 타고 뒤를 따랐다.

하 씨 일당은 엄마 전화를 받고 낮 12시쯤 급히 교문 밖으로 나온 B 양을 쏘나타 차량에 태운 뒤 A 씨에게 "은행으로 가 1억 원을 인출하라"고 지시했다.

딸이 소나타 차량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본 A 씨는 판단력을 상실해 안 씨, 하 씨와 함께 은행으로 가 1억 원이나 되는 현금을 찾았다.

은행 직원은 엄청난 돈, 그것도 현금으로 찾아가는 A 씨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따라 나왔다.

이때 안 씨가 출입문 쪽에서 "이모 여기~"라며 손을 흔들었고 A 씨는 서둘러 안 씨와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직원도 더 이상 의심하지 못했다.

◇ 1억원 손에 넣은 일당 엄마 살해, 딸도 성폭행 후 살해

하 씨와 안 씨는 "000제방 앞에서 만나자"며 쏘나타의 이 씨에게 말한 뒤 무쏘를 몰고 000제방으로 가는 도중 A 씨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 씨는 B 양이 자신들을 알아보자 '가만있어라'고 겁박, 성폭행한 뒤 000제방 부근에서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때가 오후 7시 20분 무렵으로 해가 막 서쪽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 무렵이었다.

하 씨 일당은 모녀의 시신을 갈대숲 깊숙한 쪽으로 끌고 가 버리고 달아났다.

인천 강화경찰서 경력이 모녀 시신 수색을 하고 있는 모습. (JTBC 갈무리) ⓒ 뉴스1

◇ 며느리와 손녀 소식이 끊겼다…시어머니가 직접 경찰서에

며느리와 손녀가 없어지고 전화도 받지 않자 시어머니 D 씨는 2008년 6월 18일 아침, 강화 경찰서를 찾아가 "제발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실종신고를 접한 경찰은 학교 관계자, 은행 관계자 등으로부터 전날 행적을 캐는 한편 평소 A 씨와 접촉이 많았던 C 목사를 상대로 수상한 점이 없는지 살폈다. 하지만 C 목사에게 별다른 용의점을 발견하지 못하던 순간 이웃 동네에서 A 씨의 무쏘 승용차가 세워져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 "1억 원을 찾을 때 젊은 남자 2명이 함께 있더라"는 은행 직원 진술에 따라 경찰은 강력 사건으로 전환,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 수배 전단 배포…시신 발견 후 살인사건 용의자 수배 전단으로 변경

경찰은 A 씨, B 양 사진과 함께 "미귀가자(실종) 수배" 전단을 만들어 강화군 요소요소에 뿌리는 한편 모녀가 이미 숨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산과 바다 주변에 대한 수색도 병행했다.

그러던 중 7월 1일 낮 000제방 부근 갈대밭에서 심하게 부패한 모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엄마는 누운 채, 딸은 엎드린 채 숨져 있었고 딸의 부패 상태가 더 심했다.

국과수 부검 결과 모녀 모두 성폭행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실종 전단을 살인사건 용의자 수배 전단으로 변경,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용의자 몽타주는 은행직원이 본 안 씨와 하 씨의 얼굴 형태를 토대로 만들었다.

◇ A 씨 주변을 맴돈 쏘나타, 동네 주민이 번호 기억…동네 청년의 차

모녀 살인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은 탐문 도중 한동네 주민으로부터 "A 씨 집 주변을 맴돌고 있는 쏘나타 차량이 이상해 번호를 적어 놓았다"며 '인천 00...' 번호가 적힌 쪽지를 확보했다.

차적조회 결과 안 씨의 차로 밝혀졌고 은행 직원도 '그때 은행에 함께 온 이가 안 씨와 닮았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안 씨의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사건 당일 안 씨가 114에 B 양 학교전화 번호를 문의한 녹취록을 확보, 안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이 경기 시흥시 시화호 일대에거 강화 모녀 납치 살해범들이 2년전 살해한 이복 여동생 시신을 수색하는 모습. (E채널 갈무리) ⓒ 뉴스1

◇ 1억 나눠 가진 뒤 숨어 있던 범인들, 안산에서 붙잡혀…2년 전에도 살인

안 씨의 행적을 쫓은 경찰은 7월 11일 경기도 안산 일대에 흩어져 숨어 있던 일당 4명을 모두 검거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1억 원을 나눠 가진 이들은 중형 세단 구입, 유흥비 등으로 대부분의 돈을 탕진한 상태였다.

하 씨와 안 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2년 전 실종 처리된 하 씨의 이복여동생을 살해해 시화호 매립지에 버렸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경찰은 즉시 시화호 매립지로 형사대를 급파, 3시간여 만에 백골 상태의 시신을 수급했다.

◇ 1심 1명 사형, 2명 무기징역, 1명 징역 5년 형…2심, 사형만 무기징역 형으로 감형

2009년 1월 23일 인천지법은 주범 하 씨 사형, 안 씨와 이 씨 무기징역형, 차량만 몬 연 씨에게 징역 5년형을 각각 선고했다.

2심인 서울고법은 2009년 4월 23일, 하 씨의 형량만 무기징역형으로 감형했을 뿐 나머지 3명에 대해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2009년 7월 9일 대법원은 이들의 형량을 확정, 하 씨와 안 씨, 이 씨는 지금도 죗값을 치르고 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