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토막 살해한 동생 이해한다" 형도, 성당도 구명운동

"넌 서울대 못간 바보" 부모 학대, 왕따된 명문대생[사건속 오늘]
폭언·학대 사연 밝혀지자 동정여론…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 News1 DB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지…아버지가 나를 때리고 구박하고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때리고 나서라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어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왕에 대한 반역 다음으로 가장 중대한 범죄로 '불효'를 꼽았다. 유교 문화가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존속 살해'를 인륜에 어긋나는 범죄로 보고 일반살해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 더 악하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존속살해죄'에 가중 처벌을 두고 있다.

2000년 5월 21일 부모를 토막 살인한 이은석 씨(당시 24)는 달랐다. 패륜적 살인의 이면에는 '아동 학대' 사연이 깊게 드리웠고, 그의 형마저 "동생을 이해한다"며 선처를 요구했다. 그렇게 이 씨는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사형에서 감형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KBS '표리부동' 갈무리)

◇쓰레기봉투서 발견된 토막 난 부부 시신…작은아들 지문 나왔다

2000년 5월 24일 오전 7시 30분쯤, 과천의 한 공원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20L짜리 쓰레기봉투 3개가 발견됐다. 비릿한 냄새가 나고 핏물이 배어있었다. 당시 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은 쓰레기봉투에서 사람의 발목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미화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쓰레기봉투에서 성인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 손, 허벅지, 오른쪽 발과 팔뚝 등 5토막을 발견했다. 뒤이어 성인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오른쪽 발과 몸통, 대퇴부 등 3토막이 나왔다.

처참하게 토막 난 시신은 인적 없는 개천변과 쓰레기장 등 총 11곳에 나뉘어서 유기됐다. 지문 감식 결과, 토막 시신은 공원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년 부부 이 모 씨(60·남)와 황 모 씨(50·여)였다.

앞서 부부에 대한 실종 신고는 없었다. 경찰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고 열쇠공을 불러 집을 연 순간, 제대 후 복학하지 않은 명문대생 작은아들 이은석 씨가 문을 벌컥 열었다.

당시 경찰이 "부모님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알렸지만, 이 씨는 크게 놀라지 않는 표정으로 "3일 전에 성당 간다고 나가셨는데 연락이 안 된다. 형이 따로 살고 있어서 오늘쯤 형에게 얘기하고 실종 신고를 할 예정이었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어 이 씨는 '경찰서로 함께 가자'는 형사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곤 집을 나섰다. 그 사이 거실과 화장실에서는 사망한 이 씨 부부의 혈흔이 발견됐고, 결정적으로 시신을 담았던 쓰레기봉투에서 이 씨의 지문이 나왔다.

(KBS '표리부동' 갈무리)

◇망치로 부모 살해한 명문대생 "내가 그랬다…못살게 굴길래"

당초 이 씨는 "난 모른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에 경찰은 이 씨가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점, 시신 발견 소식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은 점 등을 언급하며 추궁했다. 결국 이 씨는 횡설수설 진술을 번복하다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내가 그랬다"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 씨는 사건 당일인 5월 21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부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이날 새벽 3시쯤 양주를 꺼내 마시고선 컴퓨터 책상 밑에 있던 망치로 자고 있던 어머니 황 씨를 살해했다. 이 씨는 4시간 동안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서성이다가 이 광경을 본 아버지가 자신을 혼낼까 봐 똑같은 방법으로 아버지를 죽였다.

시신 처리를 고민하던 이 씨는 토막 내기로 결심한 뒤 화장실로 시신을 옮겨 부엌칼과 쇠톱을 이용해 시신을 절단했다. 토막 낸 시신은 비닐봉지로 여러 겹 싸고 나누어 담았으며, 일부는 쇼핑백에 넣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역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이 씨는 할인 매장에서 세제를 사 방과 화장실 등 집안 곳곳에 밴 핏자국을 닦았다. 피 묻은 옷은 세탁해 쓰레기장에 버리고 집 안을 청소했다.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과학 수사에서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부모를 살해했냐'는 질문에 "평소 아버지는 나를 무시했고, 어머니는 나를 구박했다. 부모님이란 생각이 안 들었고 제 인생을 해코지하고 저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KBS '표리부동' 갈무리)

◇엘리트 집안 부모는 '쇼윈도'…"네가 죽는 게 낫다" 학대·폭언

이 씨의 범행 내막에는 가정폭력과 학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 이 씨는 해사 장교 출신이었고, 어머니 황 씨는 명문 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맞선을 보고 결혼했다. 이 씨는 이러한 유복한 가정에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황 씨는 장교였던 남편이 자신을 영부인으로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과 달리 남편이 대령 진급에 실패하고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부부 사이가 틀어졌다. '쇼윈도 부부'가 된 황 씨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아들들에게 향했다.

부부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은 외향적이고 반항적이었던 큰아들과 달리 내성적이고 순종적이었던 이 씨에게 쏠렸다. 유치원부터 시작된 학대는 이 씨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부부는 신발 끈을 못 묶는다고 때리고,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졌다. "싹수가 노랗다", "차라리 나가버려", "네가 죽는 게 낫다"는 폭언도 쏟았다.

이에 이 씨는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고, 학교에서도 따돌림에 시달려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등 성격이 극도로 폐쇄적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이 씨가 뛰어난 학업 성적을 자랑하며 고려대 공대에 진학했으나, 돌아온 건 "서울대에 못 간 실패한 자식, 멍청한 자식은 필요 없다"는 부부의 냉대였다.

이후 공군으로 입대한 이 씨는 또다시 왕따당했다. 무사히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모의 폭언과 멸시는 계속됐다.

사건 발생 열흘 전, 두 살 위 형이 집을 얻어서 나갔다. 부모가 형에게 아파트를 장만해 줬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느끼던 이 씨는 당시 형의 이사를 도와줬음에도 성의 없이 대답했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꾸중을 듣자 생애 첫 반항을 했다.

과거 자신에게 행해진 학대를 회상하며 서러움을 토하자, 엄마는 "난 그런 적 없다. 왜 그때는 말 안 하고 지난 일을 지금 얘기하냐. 이게 자식 도리냐. 정신 병원에나 가라"면서 이 씨를 몰아붙였다. 이 씨와 모친의 언쟁을 전해 들은 부친도 이 씨를 나무랐다.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 씨는 그 뒤로 방안에 틀어박혀 부모와 남남처럼 지냈다. 이 기간에 부모는 이 씨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6일째 되는 날, 이 씨가 방에서 나와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KBS '표리부동' 갈무리)

◇친형 "동생 이해한다" 공감…'아동학대' 동정여론에 무기징역 감형

이 씨의 형은 경찰 조사에서 "나는 내 동생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발언에 깜짝 놀란 형사들은 형을 공범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씨 부부가 큰아들을 편애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형 역시 "넌 왜 동생처럼 말을 안 듣냐"면서 구박과 학대, 대화 단절 등을 똑같이 경험했다고.

검찰은 이 씨를 존속살해 및 시체 유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씨의 형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씨 측 변호인들은 주된 범행의 원인이 '가정폭력과 학대'라면서 참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이 씨는 항소와 동시에 안양교도소 교목 담당이던 엘제 수녀를 만나 울면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놨다. 엘제 수녀는 눈물을 쏟았고, 이 씨가 오랫동안 부모의 학대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주교계가 적극 나서 이 씨 구명운동을 펼쳤다. 이후 존속살해 가해자이자 아동학대 피해자였던 이 씨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됐다.

이 씨가 다닌 성당의 신자들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원심을 뒤집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 씨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24년째 복역 중이다.

이 씨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것에 대해 "보복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무서워서 그랬다. 없던 일로 만들고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시체만 없어진다면 무서움이 사라지리라 믿었다. 시체에 칼을 대니 정해진 듯 자동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보고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때 제정신이 아닌 짐승이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신이 처음 반항하며 어머니께 사과를 요구한 날,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들었어도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조리 다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