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째 출구 없는 의정갈등…교수도, 정부도, 병원도 장기전 대비
교수 비대위 "증원 확정되면 1주 집단휴진"…오는 10일 휴진
정부 비상진료 '건강보험 지원' 연장…해결 난망, 환자 우려 커져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대증원을 둘러싸고 3개월째 출구 없는 의정 갈등이 계속되면서 의료계와 정부가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병원들은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고 환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5월 8일은 정부의 2000명 의대증원 발표 92일째, 전공의들이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이탈한 지는 78일째가 되는 날이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를 정상적으로 치르려면 이달 말까지는 모집요강을 확정지어야 하는데, 잇단 악재가 켭치면서 이 또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당장 부산대학교에서 의대 증원에 제동이 걸렸다. 7일 열린 부산대 교무회의에서 내년도 의대 선발 인원을 163명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부산대 학칙 일부개정규정안'이 부결되면서다. 163명은 기존 정원 125명에 교육부로부터 배정받은 증원 인원 75명의 50%인 38명을 더한 수치다.
이날 교무회의에는 차정인 부산대 총장을 비롯해 단과대학 학장, 보직교수 등 교무위원 33명이 참석해 의대 증원을 위한 학칙개정 협의에 나섰으나, 최종 불발됐다.
앞서 지난 3일 '부산대 의대 정원 조정에 관한 학칙 개정'이 만장일치 부결된 대학평의원회 및 교수회평의회 심의 결과와 달리 이번 교무회의에서는 차정인 총장과 학내 각 부처 담당자가 참석한 만큼 수월하게 의결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부산대는 당장 2025학년도 의대 모집에 큰 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대 사례는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을 앞둔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재판부의 판단도 또다른 변수다. 법원은 정부에 '2000명 의대증원'의 근거가 된 주요 회의체의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는데, 회의록 존재 여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전날(7일) 정부는 "법적으로 작성 의무가 있는 각종 회의체 회의록은 모두 작성 의무를 준수했다"며 "정부는 의대증원 논의 과정을 숨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와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같은날 오후 의대 증원 과정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등 5명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10일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받은 뒤 이달 중순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했다. 의대증원 집행정지가 기각되면 정부의 의대증원이 탄력을 받겠지만, 인용될 경우 반대로 의대증원 계획은 중단되고 동력을 잃게 된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과 휴진으로 정부에 맞서고 있다. 지난 3월 25일부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던 교수들은 한달이 지난 4월 25일부터 사직 효력이 발생할 걸로 전망했지만, 병원이나 대학이 사직서를 수리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교수 개인의 사정에 따라 사직서가 수리된 사례는 있지만 이번 갈등으로 병원 현장까지 떠난 교수들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그 대신 교수들은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점에 공감대를 모아 주 1회 휴진을 결의했다.
일부 교수는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결정에 따라 지난달 30일과 이달 3일 자체 휴진에 들어갔다. 다만 지난주 하루 휴진 때는 대다수 교수가 현장에 남아 큰 차질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일 88개 병원 중 87군데가 정상 운영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원점 재검토에 상응할 조치를 내지 않고 있고, 사태 장기화도 예상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과중한 업무 등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10일 하루 휴진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을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은 뉴스1에 "(교수·대학 비대위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휴진이다. (정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6월 당직 표를 짜며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서울고등법원의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과를 지켜본 뒤 오는 15일 전의비 총회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 단체들은 우선 세미나 등으로 의대증원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오는 10일 연세대의대 교수 비대위가, 14일 서울대의대-병원 비대위가 각각 세미나·공청회를 연다.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와 가톨릭대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자체 세미나 진행을 검토 중이다.
제3기 서울대의대-병원 비대위가 4개 병원 전체 교수를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467명)의 96.5%가 환자를 지키고 싶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0.9%는 현재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고 밝혔으나 사직을 강행할 생각인 교수는 3.5%에 그쳤다.
강희경 제3기 서울대의대-병원 비대위 위원장은 뉴스1에 "3기 비대위의 목표는 올바른 정책 제안"이라면서 "(오는 10일로 예상된) 휴진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서울대의대-병원 비대위는 국민과 환자가 원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원고를 이날까지 접수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비상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한 달 더 연장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응급·중증 환자 가산 확대,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인상 등에 매달 약 1900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의료공백 장기화로 병원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빅5 병원은 지난 3월부터 일찌감치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고 전국의 상급종합병원은 경영난으로 보직수당 반납, 무급휴직 등 특단의 예산절감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공포의 5월을 보내고 있다. 암은 계속 판정되고 있는데 항암, 외래 지연을 흔한 일이 됐고 정신적 충격에 쌓인 '신규환자'는 진료 자체가 거부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협의회는 한국췌장암환우회가 30대부터 80대까지 현재 치료를 진행 중인 췌장암 환자와 보호자 등 189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분석해 "환자 10명 중 6~7명은 이번 의정 갈등으로 정상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증, 응급 환자들은 차질이 없다는 정부와 병원 발표와는 달리 피해사례 중 가장 많은 것은 신규 환자 거부와 응급 사례 거절이다. 이달 내 어떤 형태로든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를 소망한다"며 정부와 의료계에 환자치료 대책을 우선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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